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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신간, '영화와 관계', 영화가 당신에게 들려주는 관계에 대한 은밀한 해법
르몽드 신간, '영화와 관계', 영화가 당신에게 들려주는 관계에 대한 은밀한 해법
  • 윤상민
  • 승인 2018.12.17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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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와 관계' 표지 이미지.
▲ '영화와 관계' 표지 이미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관계의 그물망을 엮으며 살아가고 있다.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로 관계를 끊으면 오히려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가족이나 동료와 그렇게 간단하게 관계를 끊고 살 수는 없다. 상처를 주는 것도 인간관계지만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사무적인 관계든 관계를 잘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꼬인 관계를 잘 풀어내는 것 그리고 잘 잊고,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는 당신에게 그 은밀한 해법을 들려줄 것이다"
                                             - 서성희 영화평론가, 「총론」 중에서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부? 명예? 권력? 지식? 질문을 받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답변이 나오겠지만, 한 현자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족, 친구, 연인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타인과 맺는 조화로운 관계와 오해 없는 소통에 인간의 행복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세상을 살아가며 누구나 많은 관계를 맺는다. 관계가 그토록 중요한데도 우리는 학교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은 배웠지만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서로 어떻게 소통하는지 가르쳐주는 수업을 받지는 못했다. 그냥 분위기에 맞춰 눈치껏, 관례에 맞춰 관계를 맺어오다 보니, 연인 관계, 부부 관계, 가족 관계, 사제 관계, 상사와 부하 관계, 노사 관계, 친구 관계, 심지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까지 어느 것 하나에서도 온전한 친밀감이나 충족감을 얻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진정성을 갖고서 관계를 심화시키고, 지속시키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상대방과의 오해가 커지고, 관계는 틀어지고 멀어지고 만다. 자크 데리다, 폴 리쾨르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왜 이렇게 ‘타자’에 골몰하며 이들을 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타자는 아무리 환대를 해도 타자다. 타자이기에 환대를 하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영화가 늘 ‘관계’에 주목하는 것도 관계의 흥미진진한 예측불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관계가 영화로 재현되지만, 감히 현실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관계도 영화에서는 가능해진다. 

영화가 그려내는 13개의 관계지형도

이 책은 13명의 영화평론가가 생각하는 ‘영화와 관계’에 관한 글이다.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관계들을 그려낸 영화들 중에서, 영화평론가들의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영화와 등장인물들의 관계에 주목했다. 관계에 관한 영화 평론의 향연인 셈이다.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의 주제는 ‘사람과 사람 관계’다. 다양한 사람과의 인연과 관계, 변하고 연대하는 모녀관계, 나비처럼 변화하고 성장하는 사제관계, 그리고 외로운 소년과 소녀의 관계를 통해 사람 간의 관계를 흥미롭고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2부 ‘관계 맺기’에서는 가족 간의 균열과 간극이 극복되지 않는 관계 맺기, 관계 맺음이 어려운 사람들 간의 관계 맺기, 그리고 공생 관계 맺기라는 독특한 여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3부 ‘관계와 환경’에서는 관계 맺기를 규정하고 통제하는 공간과 사회, 관계 맺기에 상이한 계급과 세대, 그리고 관계의 적절한 거리와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관계가 존재하는 환경에 집중한다. 마지막 4부 ‘메타 관계’에서는 영화 속 관계를 넘어 영화와 관객의 관계, 영화와 다른 예술과의 관계, 그리고 영화가 현실과 맺는 관계를 통해 영화가 외부 요인이나 다른 매체와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폭넓고 다채롭게 풀어낸다.

천만 관객을 넘는 영화가 한 해에 두 편이 넘게 나올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뤄낸 한국 영화시장에서 영화에 대한 제대로 된 지적담론을 찾아보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각종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인상비평 수준의 영화평과 다분한 감정의 배설에 그치고 마는 짧은 영화감상들이 진중한 영화비평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한국 영화평론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평론가들의 진중한 글쓰기를 모은 이 책은 그 출간 자체만으로도 반갑다. 

13인 영화평론가의 사유가 담긴 글쓰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영화평론가들의 모임인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필진들과 함께 매년 주제를 정하고, 1년 동안 치열하게 고민해서 쓴 영화평들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본지와 온라인에 연재해 왔다. 이번에 출간된 <영화와 관계>는 안숭범 경희대 교수(국어국문학과), 정재형 동국대 교수(연극영화과), 서곡숙 세종대 겸임교수를 비롯한 출중한 필자들로 가득한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2기 필진들이 지난 1년간 하얀 밤을 지새우며 탄생시킨 비평문 중에서 대표적인 글들을 엄선해 묶은 결과물이다. 

모처럼 출간된 정제된 이번 평론집은, 미래의 영화평론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평론가들의 글쓰기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교본으로 기능할 것이며,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영화를 이해하는 시각과 폭을 더욱 넓고 깊게 확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 대한 제대로 된 지적담론의 이정표가 되어 줄 <영화와 관계>를 통해 영화에 담겨진 인문학적, 사회과학적인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목 차

서문  관계의 예측불가성    성일권
총론  영화와 관계            서성희
        
제1부 사람과 사람 관계
제1장 인생은 짧아 사랑을 해라 아가씨야-<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서곡숙
제2장 모녀 관계: 엄마와 딸에 관한 영화 보고서-<레이디 버드>를 시작으로, 서성희
제3장 패배한 선생님에게 바치는 송가-<마리포사>, 정동섭
제4장 산문의 바다에서 시를 길어 올리다-두 편의 <렛 미 인>, 최재훈

제2부 관계 맺기
제5장 모종의 가족들-<45년 후>와 <도쿄 소나타>, 손시내
제6장 정동의 현상학, ‘관계 맺음’의 형이상학-<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론, 안숭범
제7장 성스러운 이야기 혹은 이갈리아 예수의 길을 따라서-<소공녀>, 정재형

제3부 관계와 환경
제8장 관계의 본질, 개인의 욕망과 정치적인 것의 사이 공간을 떠돌다-<더 랍스터>론, 남병수
제9장  그녀와 그녀가 만나는 시간-<미씽: 사라진 여자>, <허스토리> , 이수향
제10장 가까움에 대한 열정과 멂에 대한 희원-<롤러코스터>, 이 호

제4부 메타 관계
제11장 ‘구겨진’ 영화를 ‘빳빳이’ 펴는 힘: ‘불한당원’이 증명한 영화 관객의 존재론-<불한당>, 송아름
제12장 발레를 수용한 기록영화-<댄싱 베토벤>, 장석용
제13장 영화와 현실의 새로운 관계를 위한 몇 가지 비평-<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인터스텔라> 사이, 지승학

윤상민 기자 cinemonde@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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