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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신간<영화와 관계>, 당신에게 들려주는 은밀한 관계
르몽드 신간<영화와 관계>, 당신에게 들려주는 은밀한 관계
  • 윤상민 | 본지 편집장
  • 승인 2018.12.3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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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신간 <영화와 관계>
르몽드 신간 <영화와 관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부? 명예? 권력? 지식? 질문을 받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답변이 나오겠지만, 한 현자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가족·친구·연인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타인과 맺는 조화로운 관계와 오해 없는 소통에 인간의 행복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세상을 살아가며 누구나 많은 관계를 맺는다. 관계가 그토록 중요한데도 우리는 학교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은 배웠지만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서로 어떻게 소통하는지 가르쳐주는 수업을 받지는 못했다. 그냥 분위기에 맞춰 눈치껏, 관례에 맞춰 관계를 맺어오다 보니 연인 관계, 부부 관계, 가족 관계, 사제 관계, 상사와 부하 관계, 노사 관계, 친구 관계, 심지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까지 어느 것 하나에서도 온전한 친밀감이나 충족감을 얻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관계를 심화시키고, 지속시키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상대방과의 오해가 커지고, 관계는 틀어지고 멀어지고 만다. 자크 데리다, 폴 리쾨르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왜 이렇게 ‘타자’에 골몰하며 이들을 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타자는 아무리 환대를 해도 타자다. 타자이기에 환대를 하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은 13명의 영화평론가가 생각하는 ‘영화와 관계’에 관한 글이다.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관계들을 그려낸 영화들 중에서, 영화평론가들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영화와 등장인물들의 관계에 주목했다. 관계에 관한 영화 평론의 향연인 셈이다.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의 주제는 ‘사람과 사람 관계’다. 다양한 사람과의 인연과 관계, 변하고 연대하는 모녀관계, 나비처럼 변화하고 성장하는 사제관계, 그리고 외로운 소년과 소녀의 관계를 통해 사람 간의 관계를 흥미롭고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2부 ‘관계 맺기’에서는 가족 간의 균열과 간극이 극복되지 않는 관계 맺기, 관계 맺음이 어려운 사람들 간의 관계 맺기, 그리고 공생 관계 맺기라는 독특한 여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3부 ‘관계와 환경’에서는 관계 맺기를 규정하고 통제하는 공간과 사회, 관계 맺기에 상이한 계급과 세대, 그리고 관계의 적절한 거리와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관계가 존재하는 환경에 집중한다. 마지막 4부 ‘메타 관계’에서는 영화 속 관계를 넘어 영화와 관객의 관계, 영화와 다른 예술과의 관계, 그리고 영화가 현실과 맺는 관계를 통해 영화가 외부 요인이나 다른 매체와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폭넓고 다채롭게 풀어낸다.

천만 관객을 넘는 영화가 한 해에 두 편이 넘게 나올 정도로 양적 성장을 이뤄낸 한국 영화시장에서 영화에 대한 제대로 된 지적담론을 찾아보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각종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인상비평 수준의 영화평과 다분한 감정의 배설에 그치고 마는 짧은 영화감상들이 진중한 영화비평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한국 영화평론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평론가들의 진중한 글쓰기를 모은 이 책은, 그 출간 자체만으로도 반가운 존재다.

모처럼 출간된 정제된 이번 평론집은, 미래의 영화평론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평론가들의 글쓰기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교본으로 기능할 것이며,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영화를 이해하는 시각과 폭을 더욱 넓고 깊게 확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 대한 제대로 된 지적담론의 이정표가 되어 줄 <영화와 관계>를 통해 영화에 담긴 인문학적, 사회과학적인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글·윤상민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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