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3월호 구매하기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부다페스트 느와르>― 죽음의 도시, 빛의 도시 부다페스트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부다페스트 느와르>― 죽음의 도시, 빛의 도시 부다페스트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9.01.07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필름느와르와 부다페스트 느와르

<부다페스트 느와르>(Budapest Noir, 2017)는 1936년 신문기자 지그몬드 고돈(크리스티안 콜로브라트닉)이 옛애인 크리츠티나(레카 텐키)와 함께 파니(프란치스카 토로칙)의 의문사를 조사하는 내용의 범죄 스릴러영화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에바 가도스(Éva Gárdos) 감독은 1950년 부다페스트에서 출생한 여류 감독 겸 필름 에디터이다. 할리우드에서 프란시스 코폴라의 작품을 제작, 편집한 경력에서 출발한 에바 가도스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헝가리로 귀향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헝가리의 거장 여류 감독 마르타 메자로스 (86세)를 잇는 감독으로, <부다페스트 느와르>는 세 번째 단독 연출한 장편이다.

<부다페스트 느와르>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30년대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1940년대 필름느와르를 소환한다. 필름 느와르(film noir)는 범죄와 폭력을 다루면서, 도덕적 모호함이나 성적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일군의 영화를 가리킨다. 이는 프랑스어로 '검은 영화'를 가리키는 말이며, 1946년 프랑스의 비평가 니노 프랑크(Nino Frank)가 처음 사용하였다.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필름 느와르 시기는 일반적으로 1940년대 초에서 1950년대 말에 걸쳐있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사조에 뿌리를 둔 우울한 흑백풍 스타일과 관련이 깊은데, 많은 스토리들이 대공황시기의 범죄소설인 하드보일드파로부터 뻗어 나왔다. 이 영화는 필름 느와르 형식으로 1936년 부다페스트를 소환하고 있다.

 

2. ‘글루미 선데이’와 곰버스 총리의 관

1930년대 헝가리는 죽음을 부르는 노래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시대이다. 헝가리 자살 노래로 알려진 '글루미 선데이‘는 1933년 헝가리 피아니스트 레조 세레쉬가 작곡한 곡이다. 거기에 시인이었던 라즐로 야보르가 가사를 썼다. 이 노래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게 되었다. 이 곡의 작곡가인 세레쉬마저 1968년 부다페스트의 한 빌딩 창 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하였고 작사가 야보르의 연인도 자살하여 이 곡의 스산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이 곡과 관련된 자살 사건은 헝가리의 1930년대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 시기는 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있으면서 경제공황 이후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 최악의 혼란기이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헝가리에게 있어서도 최악의 시기였다.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의 패전으로 끝나게 된다. 역시 패전국이 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엄청난 책임을 지게 된다. 특히 헝가리 왕국 아래에서 오래 전부터 독립을 요구하던 소수민족들의 바람이 반영되면서 나라가 산산이 쪼개지게 된다.

헝가리는 민주공화국에서 공산주의국가로, 다시 1920년에 헝가리 왕국이 재건되면서 정치적인 혼란이 따랐다. 1929년 전세계에 악몽같던 경제공항의 카오스가 헝가리에도 불어 닥친다. 헝가리는 1933년 부다페스트 시민의 18%가 기아상태에 빠졌고, 실업률이 36%까지 오른다. ‘글루미 선데이’가 작곡된 1933년은 헝가리는 이런 지옥같은 경제상황이었다. 이후 헝가리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우경화로 치달으면서 2차 세계대전에 말려들게 된다.

1936년의 헝가리를 배경으로 하는 <부다페스트 느와르>는 이러한 격변기를 다루고 있다. 공산주의국가에서 헝가리 왕국이 재건되면서 러시아 공산주의에 대해 견제하는 한편, 귤라 곰버스 총리의 주도 하에 독일의 나치정권과 연대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배척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부다페스트 느와르>는 곰버스 총리의 시체가 담긴 고급스러운 관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국가적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경찰이 총력 배치되는 상황에서, 주인공인 지그몬드 고돈은 ‘나라를 개조한 독재자’인 곰버스 총리가 범죄가 아니라 암으로 죽었기 때문에 범죄 담당기자인 자신은 관심이 없다고 밝힌다. 대신 고돈은 니기디오파 거리의 길바닥에서 죽은 창녀의 시체에 주목한다. 곰버스 총리의 고급스러운 관과 차가운 길바닥에서 죽은 창녀의 시체는 ‘글루미 선데이’로 대표되는 1930년대 우울한 헝가리의 극과 극의 대비를 보여준다.

 

3. 죽은 창녀의 사진과 상류층의 세 얼굴

죽은 창녀 파니의 사진은 격변기 헝가리의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혼란을 드러낸다. 파니는 포르노 사진사가 찍은 유곽의 카탈로그 사진, 살인 현장에서의 죽은 시체 사진, 부검 보고서에서의 시체 그림 등으로 재현된다.

포르노 사진사가 찍은 유곽의 카탈로그 사진은 헝가리의 정치적 혼란을 드러낸다. 레스토랑에서 미모의 여인이 나타나 고돈에게 담뱃불을 빌리고는 식사값을 그에게 달아놓고 사라진다. 고돈은 서장의 서랍 속에서 상류층 유곽에 제공하기 위해 찍은 그녀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면서 범죄의 냄새를 맡는다. 고돈이 단서를 찾기 위해서 사진을 찍은 포르노 사진사 스쿠블리치(사볼치 투록지)의 약점을 캐기 시작한다. 옛애인 크리츠티나가 사진을 찍기 위해 터트린 불빛 아래 밝혀진 것은 12년간 잠적한 러시아 비밀경찰 게로 에르노와 함께 있는 스쿠블리치의 모습이다.

헝가리 왕국의 통치 하에서 러시아 공산주의와 연관된 포르노 사진사는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 자신의 모델이 두고 간 붉은 모자를 쓴 채 칼로 목이 그어져 붉은 피를 흘리면서 죽은 스쿠블리치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냄으로써 헝가리의 정치적 격변기를 대변해 보여준다. 이때 고돈도 폭행을 당해 마네킹 인형 속에서 쓰러진다. 영화는 붉은 입술의 마네킹 인형을 계속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성적 유희의 대상이 된 파니의 죽음을 암시한다.

상류층 유곽에서 상원의원들아 카탈로그 사진을 보고 창녀들을 고른다는 스쿠블리치의 말을 근거로 고돈은 마고의 유곽을 찾아간다. 고돈은 유곽에서 죽은 창녀 파니의 편지를 찾아낸다. 이후 매춘굴을 방문한 상류층의 사진을 찍으려던 크리스티나는 필름을 뺏기고 고돈은 폭행을 당한다. 상류층 유곽은 집에서 쫓겨나 생계의 어려움을 겪던 파니와 도덕적으로 문란한 정치인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헝가리의 상층과 하층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급하게 처리된 부검과 사라진 시체 뒤에 유일하게 남은 증거인 부검 보고서에 그려진 파니의 시체 그림은 임신 2개월인 파니가 폭행으로 인해 사망한 사실을 드러낸다. 대대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며 죽음을 의례화하는 총리의 장례식에 가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창녀의 죽음은 은폐되어 보고서의 그림으로만 남는다는 점에서 극과 극의 대비를 보여준다. 또한 살인 현장에서의 시체 사진은 계속해서 나타나 고돈에게 의문스러운 범죄를 추적하도록 종용한다. 비참하게 죽은 파니의 시체 흑백 사진은 레스토랑에서 만난 붉은 입술의 매혹적이고 생기 있는 파니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안타까운 죽음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4. 크리츠티나의 사진과 세 갈래 길

크리츠티나가 독일에 가서 찍어온 사진은 유대인 수용소 사진이다. 1930년대 헝가리는 독일과 연대하여 나치즘을 받아들임으로써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시작한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세 인물들은 세 갈래 길로 걸어간다. 졸로시 남작과 겔러트 서장(졸트 앙거)은 순응의 길로, 크리츠티나는 저항의 길로, 담뱃가게 유대인은 망명의 길로 간다.

결국 마지막에 영화의 전모가 드러난다. 졸로시 남작의 딸 파니는 유대인 랍비의 아들과 사랑을 빠지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집을 나오게 된다. 파니는 나중에 임신한 상태에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유곽에서 몸을 팔게 된다. 졸라시 남작의 부탁으로 서장이 파니를 찾기 위해 고용된 권투선수 포예바가 파니를 강간하려다가 저항하자 폭행하여 죽이게 된다. 결국 졸로시 남작 부인은 딸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는 “딸이 길거리 여자가 된 것도, 몸을 판 것도, 죽은 것도 모두 당신 탓이야.”라며 남작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졸로시 남작은 헝가리의 격변하는 시대 상황에 누구보다도 발빠르게 적응하고자 했지만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상황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는 권투클럽을 통해 권력층의 인맥을 쌓고, 내무부 장관에게 돈을 주어 커피수입 배급권을 타낸다. 유대인이지만 개종한 남작은 유대인을 탄압하는 시기에 유대인을 사랑하는 딸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로 인해 딸을 잃게 된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상류층 귀족과 사업가로서 풍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딸의 사랑보다는 정치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겔러트 서장도 마찬가지로 순응의 길을 걸어간다. 그는 3년 전 고돈과 협력하여 부패한 전임자를 쫓아내고 신임 서장이 된 인물이다. 졸로시 남작의 청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포르노 사진사 옆에 놓여진 고돈의 라이터로 고돈에게 압박을 가한다. 이에 속물이 되었다며 고돈이 비판하자, 서장은 자신은 현실주의자라며 변명한다. 서장은 권력과 돈 앞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진실을 은폐하는 인물이다.

크리츠티나는 유대인 탄압에 대해서 저항하는 인물이며, 이러한 저항의 대가로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다. 그녀는 6개월 전에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 사진을 찍기 위해 고돈을 떠났고, 세상에 알리기 위한 런던 사진 전시회를 위해서 다시 고돈을 떠난다. 클럽에서 “헝가리인 앞에서 유대 쓰레기 노래를 부른다”며 유대인 가수를 폭행하는 젊은이들의 사진을 찍다가 혼이 나고, 상류층 유곽에서 창녀들을 데리고 노는 정치인들의 사진을 찍다가 필름을 빼앗긴다. 그녀는 이러한 수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며, 장미꽃을 들고 나타난 고돈을 뒤로 하고 떠나간다. 무채색의 풍경과 의상 속에서 새빨간 장미꽃은 그 선명한 붉은색으로 오히려 처연한 슬픔을 나타낸다.

담뱃가게 주인은 유대인을 탄압하는 헝가리를 떠나가고자 한다. 늦은 밤 담배를 파는 것이 위험하지 않은가라고 고돈이 질문하자, 그는 자신은 외팔이 늙은이여서 더 나쁠 일이 없다고 대답한다. 고돈이 똑똑하니까 정치를 해야겠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이 똑똑하기 때문에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하지만,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참전용사인 그의 가게 유리창을 벽돌로 깨는 사건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고돈은 이러한 세 갈래 길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는 크리츠티나처럼 진실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서장처럼 현실주의자도 되지 못한 채 계속 고뇌하고 방황한다. 범죄의 박동소리를 본능적으로 안다고 자부하는 그는 사건의 진실을 캐기 위해서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사건을 은폐한다. 유대인인 졸라시 남작, 유대인을 사랑한 딸 파니, 딸의 죽음으로 남편을 살해한 남작 부인의 이야기를 은폐하지만, 이는 서장처럼 자신의 직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작 가문의 비극을 덮기 위해서이다.

파니 졸로시는 이러한 의미에서 가장 이상화된 인물로 표현된다. 크리츠티나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사랑을 버렸다면, 파니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가문을 버렸다. “당신을 위해서 열심히 돈 벌게”라는 유대인 연인의 편지와 “돈을 빌리려고 했어요. 죄송해요.”라고 적힌 파니의 쪽지가 뒤늦게 고돈의 손에 오게 되면서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하게 만든다.

 

5. 범죄의 박동과 죽음의 공정함

<부다페스트 느와르> (2017)는 전세계적으로 번역되어 나온 빌모스 콘더의 소설이 원작이며, 범죄 담당 기자가 한 젊은 여인의 미스테리한 죽음을 취재하면서 부다페스트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어두운 구석을 찾아 밝히는 스토리이다. 이 영화는 정치문제에서 출발해 가족문제, 성범죄 문제로 끝이 난다. 하지만, 결국 정부의 파시즘화, 유대인 탄압과 관련하여 고난을 겪은 여성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결국 다시 정치 문제로 돌아간다. 이 영화는 정치권, 포르노 사진사, 상류층 유곽, 공산당, 러시아 비밀경찰 등을 통해 1936년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여러 가지 지형도를 복합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의 내레이션은 부다페스트의 이중적 모습을 표현한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고돈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죽음의 도시. 누군가에는 빛의 도시. 범죄의 박동 속에서 죽음의 공정함을 본다. 가정부들은 성냥을 씹어 자살하고 이발사들은 애인의 목을 긋고.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슬프도록 비슷하고 결말은 언제나 같다.” 나중에 중요한 순간에 이 내레이션은 계속 반복된다. 떠나가려는 유대인에게 “두려워할 것 없소. 여긴 부다페스트니까.”라며 안심시키며 밤거리를 혼자 걸어가는 주인공 고돈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필름느와르의 장르적 공식, 컨벤션, 도상을 차용해 온다. 범죄를 파헤칠수록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난다. 어두운 조명, 바바리코트와 중절모, 퍼져가는 담배연기 등 스타적 특색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필름느와르 영화와는 달리 여성이 남성을 파멸시키는 팜프파탈적 인물로 나오는 대신 혼탁한 사회에서 신념과 사랑을 위해 저항하는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유대인 박해 직전의 음침한 풍경의 1936년 부다페스트와 필름 느와르의 우울한 스타일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 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정기구독자님이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