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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디플로 1월호 읽기] ‘노란 조끼’의 모든 것 그리고 감시자본주의
[르디플로 1월호 읽기] ‘노란 조끼’의 모든 것 그리고 감시자본주의
  • 윤상민 편집장
  • 승인 2019.01.07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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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해가 밝았다. 독자님들 가내 평안과 행운이 가득하시길 기원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의 2019년은 전년 대비 330명의 정기구독자가 줄어든 상황에서 첫 발을 내딛었다. 안타깝지만 부수인증기관 ABC 협회가 최근 실시한 실사조사에 따르면 그렇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우수콘텐츠잡지에서 탈락한 것이 독자감소의 주원인인 것 같다. ‘라이센스 잡지’는 우수콘텐츠잡지에서 제외한다는 새 선정기준이 생겼기에. <르디플로> 1면에 비록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 콘텐츠 잡지’ 마크는 없지만, 2019년에도 <르디플로>는 독자님들의 우수콘텐츠잡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각설하고, 편집장이 추천하는 [르디플로 1월호 읽기] 시작한다.

‘포켓몬고’가 점령해버린 우리 일상은 누가 보상해줄까?

이번 Focus에서 주목할 만한 기사는 단연 1면 톱기사로 실린 「감시자본주의, 당신의 칫솔이 당신을 염탐한다」이다. 저자인 쇼샤나 주보프 교수는 유행이 지난 애니메이션 캐릭터 피카츄를 일약 전 세계적으로 알린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가 점령해버린 우리의 집과 주변 세상의 모습을 묘사하며, 이익을 위해 빈 공간을 어떻게든 활용하겠다는 자본의 이 상업적인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질문한다.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무슨 권리로? 이 상황을 중단하려면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가?” 

쇼샤나 주보프 교수는 현재의 상황을 ‘감시자본주의’라고 명명하며, 사용자들의 ‘행동데이터’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구글의 광고 시스템을 분석한다. 본래 검색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고안된 구글의 광고 프로그램은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자들이 페이지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평가할 수 있었다. 구글이 특허를 등록한 방법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관심 기반 타깃 광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애드센스다. 2004년 구글의 계열사는 1일 매출 100만 달러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이 수치가 25배 이상 증가했다. 개발자들은 “시스템 내에 아무런 명시적 정보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사용자 프로필은 생성(또는 업데이트, 또는 확장)될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우리가 사는 집도 감시자본주의의 조준선 안에 있다는 사실 또한 섬뜩하다. 2017년 스마트 가전제품 분야에서 경쟁한 기업들의 시장 규모는 147억 달러에 달했다. 2016년 시장규모가 68억 달러에 불과했었는데 말이다. 스마트 칫솔, 스마트 전구, 스마트 커피잔, 스마트 오븐, 스마트 착즙기 안면인식 가정용 감시카메라, 불법침입 전에 나타나는 비정상적 진동 탐지 경보 시스템, 소리를 탐지하는 사이보그 바퀴벌레까지, 감시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에 대한 경쟁은 격화되고 있다. 새로운 행동변환 기술은 자율적 자본과 타율적 개인을 양산했다. 인간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이 경제의 영향력은 인간을 어디까지 변환시킬까? 이어지는 기사 「착한 중국인, 나쁜 중국인」은 감시자본주의가 사회주의 국가에 도달했을 때 벌어지는 양상을 ‘사회신용제도’라는 감시체계로 날카롭게 포착해내 위 기사와 겹쳐 읽기를 권한다.

세계사적으로뿐만 아니라 국내사적으로도 중요한 해인 1919년. 100년 전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면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토만 제국(오스만 제국)의 와해 문제를 처리하는 평화회의가 개최됐다. 이 전쟁으로 주요 강국으로 부상한 일본은, 1919년 1월 18일 베르사유에서 개최된 열린 평화회의에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계 5대 열강이자 승전국 중 하나로 참석했다. 「1919년 파리 평화회의가 뿌린 일본 제국주의의 불씨」 기사는 1차 대전 종전에 백인계 유럽제국이 세계 곳곳에서 식민지를 최대로 확대하고 강항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 5대 열강 중 유일한 아시아계였던 일본이 겪은 ‘차별’을 다뤄 흥미롭다. 일본은 영국, 미국과 협상하며 ‘종파의 평등’을 이뤄내고자 했지만, 정작 일본의 목표는 모든 인종의 평등 실현이 아니었다. 중국인, 조선인 차별정책을 펼쳤던 일본의 속내를 역사학자 마츠누아 미호는 일본 제국주의의 출발점으로 본다. 

프랑스 뒤흔든 ‘노란 조끼’의 모든 것

1월호 ‘Dossier·도시에’는 온전히 ‘노란 조끼’ 기사들로만 구성됐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 세르주 알리미의 「그들이 노란 조끼를 입은 이유」를 포함해 무려 7개의 알찬 기사가 ‘Dossier·노란조끼, 제2의 68혁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1월호를 풍성하게 채웠다. 지난해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노란 조끼. 국내 보도를 보면 마크롱의 사과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노란 조끼들은 점거한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이 운동은,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노란 조끼’들은 과연 그들의 요구사항을 쟁취해낼 수 있을까? 알리미 발행인은 이렇게 답한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문화적으로도 생소한 시위의 향방을 점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하지만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될 수도 있다. 이는 ‘노란 조끼’들의 요구사항이 불평등, 임금, 세금, 공공기관의 쇠퇴, 위협받는 자연환경, 미디어와 정치 분야에서 과하게 대표성을 갖는 고학력 부르주아들로 작동하는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제 혼자서는 싸울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

한편, 언론인 피에르 수숑은 그동안 ‘노란 조끼’의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조직화’의 문제를 짚었다. ‘노란 조끼’ 운동은 어떤 형태의 조직도 거부한다고들 말한다. 사실 여러 차례 조직화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를 확산시킬 활동가가 부족한 탓에 조직화의 노하우는 대부분 사라져버린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노란 조끼’가 정말 조직을 싫어할까? 수숑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위 초기 고립되었던 ‘노란 조끼’들은 대규모 노조들이 오기를 오히려 기다렸다고 말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수숑의 「조직화에는 노하우가 필요하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후변화와 여성의 노동 조건도 이슈로

‘노란 조끼’ 운동이 이뤄낸 또 하나의 업적은 바로 기후문제에서 확인된다. 필립 데스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는 「인간 생태계를 위한 약진」에서, 정부가 구매력과 기후변화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문제로 대치시키는 위험한 조세정책을 단행했지만, 시민들은 집단지성을 발휘해 함정을 피해나갔다고 분석했다. 그 집단지성은 바로 두말할 필요 없는 ‘노란 조끼’ 운동이다. ‘노란 조끼’ 운동이 표면으로 드러낸 또 하나의 이슈는 ‘여성의 노동 조건’이다. 20세기 들어 가사, 종교, 자선 분야에서 유급 노동 분야로 넘어온 직업군들, 이를테면 호텔의 메이드, 기차역의 청소부, 간병인, 요양시설 직원들, 보육교사 등에서 여성 노동자의 수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노동계의 대대적인 여성화 현상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차별의 역사, 그리고 이를 타파할 해법을 모색하기 원한다면, 피에르 랑베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의 「여성 노동자들이 가진 뜻밖의 권력」을 꼼꼼히 읽어 보시길 권한다.

세계를 들여다보는 다양한 프리즘을 확인할 수 있는 Mondial·지구촌에서는  압둘 살람 디알로 박사와 라파엘 고드쇼 기자가 공동집필한 「기니의 디아스포라, 귀향한 인재들의 꿈」이 눈에 띈다. 기니의 한 대학 강당에서 ‘고용시장의 도전과제와 채용에 적합한 인재상’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 현장. 600개가 넘는 눈이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입은 5명의 젊은 여성 강연자들에 쏠려 있다.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쓰는 이 여성들은 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해외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니로 귀향한 인재들의 강연에 형식적인 청중들의 박수 뒤 한 학생이 용기를 내 질문한다. “왜 유학생 얘기만 하나요? 국내에서 공부한 기니인들을 위한 자리는 없나요?” 유학길에 올라 고학력으로 무장한 귀향한 인재들과 국내파 인재들의 생존 경쟁. 아프리카 청년들의 오늘은 대한민국 청년들의 오늘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경제학은 과학인가?

2019년, <르디플로>가 야심차게 시작한 기획 연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새로 쓰는 ‘비판경제 교과서’’ 1편이 <르디플로> 1월호에 실렸다. 갈수록 더 높은 수준의 글을 원하는 독자님들의 요구에 맞춰, 프랑스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및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비판경제 교과서(Manuel d'Economie critique)』를 10회에 나눠 소개한 것이다. 과학을 표방하며 마치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학문으로서 인간 행위의 보편이론을 확립하려는 듯, 지식의 제국주의를 펼친 경제학의 진실과 허구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심도 깊은 기획이다. 

‘비판경제 교과서’의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다. (1)경제학은 과학인가? (2)생산 증대, 무조건 더 많이! (3)노사관계(다리와 버팀목의 관계) (4)부의 분배 희망과 난관 (5)고용,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나? (6)시장을 따를 것인가 명증된 법칙을 세울 것인가? (7)세계화 국민 간의 경쟁 (8)화폐, 금전과 현찰의 불가사의 (9)부채 협박 (10)금융 지속 가능하지 않은 약속.

최근의 금융위기가 주류 경제이론에 대한 신용도를 떨어뜨렸을 수는 있지만, 주류 학자들은 여전히 다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고, 정부 내각이나 대학가를 장악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경제학자들은 개별의 경제주체를 강조하는데, 이때의 개인은 다각적이고 효율적인 시장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이해타산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주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비판적 시각을 강조하는 학문적 전통에 근거해 신고전주의의 패권에 대항하는 학파들도 있다. 더 늦기 전에 비주류학문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을 방지하고 학문의 다양성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르디플로> 기획특집 ‘비판경제 교과서’ 1편을 정독하시길.

Culture·문화에서는 신은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의 「인간이 호모엠파티쿠스인 이유」에 눈이 간다.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인간 본성의 특징을 ‘공감하는 종(種)’으로 이해했듯이, 호모엠파티쿠스는 ‘공감적 인간’을 의미한다. 공감은 타자 속으로 들어가 자아를 느끼며, 근원적으로 자아와 타자가 둘이 아닌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성격을 지닌다. 신 교수는 최초의 호모엠파티쿠스로 ‘샤먼(Shaman)’을 소환한다. 무의식의 세계를 공감의 전체성으로 확장시킨 샤머니즘의 정신은 호모엠파티쿠스의 영성적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 교수는 호모엠파티쿠스의 네오샤머니즘 영성이 문명의 과정에서 상실한 원초적 공감을 회복해 자아와 타자, 동식물, 우주만물의 모든 존재들과 소통하며 공감하는 유기적인 통합의 공수를 전하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서로 안에 있는 내면의 신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편집장이 추천하는 기사는 언론인 한대호씨의 「청년 예술가들은 왜 사라졌을까?」이다. 청년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질 좋은 일자리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새로운 가족계획과 미래에 대한 상상이 우스워진 이 시대. 문화예술은 많은 이들에게 사치스럽고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 않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됐다. 필자는 진단한다. 문화예술 콘텐츠는 저렴한 ‘떨이 상품’으로 전락하거나, 반대로 표가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유명한 연주자나 무용가의 공연을 즐기는 고급문화로 자리하는 극단적 양극화로 나가고 있다고. 

그 많던 청년예술가들은 어디로 갔을까? 청년세대의 예술창작은 주로 각 도시의 광역단체 소속의 문화재단이나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등이 지원하는 사업에 의존해왔다. 딱히 여러 사람이 돈을 내고 문화 콘텐츠를 재화로 소비하는 분위기가 아니고, 학생이나 자신의 동료들이 주로 참석하는 일종의 학예회와 비슷한 결과발표회 형식인 경우가 많기에 콘텐츠 소비에 따른 자본의 선순환이 쉽지 않다.

이런 문화적 토양에서 90년대 전후 태생의 청년들을 자신들과 대등한 예술적 주체로 대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늘 청년예술가들은 프로도, 아마추어도 아닌 그 경계 어딘가에 존재한다. 처음부터 완숙한 작업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한데, 누구에게나 있는 올챙이 시절이 이렇듯 관변 아닌 관변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을 꿈꾸면서, 좀비처럼 생존을 위한 관변 사업 지원서를 작성하는 몰락의 길을 갈 것인지, 스스로 즐기며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예술가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지금 우리 시대가 기로에 서 있다고 선언한다.

<르디플로>1월호에는 위에 소개한 기사 외에도 알찬 기사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은 독자님들이 더 잘 아는 사실이다. 카페에서든, 도서관에서든, 사무실에서든 혹은 독자님들의 은밀한 장소에서든, <르디플로>는 올해도 변함없는 독자님들의 지적 자극제가 될 것이다. 2019년, 독자님들에게 행복이 가득하시길.


■Focus 초점
세르주 알리미 | <가디언>의 잃어버린 명예?
성일권 | ‘사라진’ 330부, 그리고 황금돼지
마츠누마 미호 | 1919년 파리 평화회의가 뿌린 일본 제국주의의 불씨
쇼샤나 주보프 | 감시자본주의, 당신의 칫솔이 당신을 염탐한다
르네 라파엘 외 | 착한 중국인, 나쁜 중국인

■Dossier 노란조끼, 제2의 68혁명?
로랑 보넬리 | 왜 지금인가?
필립 데스캉 | 인간 생태계를 위한 약진
세르주 알리미 | 그들이 노란 조끼를 입은 이유
다니엘 자모라 | 불평등을 비난하면서 원인을 외면한다면?
피에르 수숑 | 조직화에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피에르 랭베르 | 여성 노동자들이 지닌 뜻밖의 권력
아나벨 알루크 외 | 지방 고등학교들의 수난

■Mondial 지구촌
압둘 살람 디알로 외 | 기니의 디아스포라, 귀향한 인재들의 꿈
르노 랑베르 | 아르헨티나, ‘페론 유령’ 벗어날까
장 미쉘 뒤메 | 뉴칼레도니아의 실패한 ‘독립’ 시도
스테파노 팔롬바리니 | 유럽연합에 반항하는 이탈리아 연립정부

■[기획연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새로 쓰는 ‘비판경제 교과서’(1) -경제학은 과학인가?

■[특집연재]
대중서사와 로맨스(2)
이주라 | 포르노그래피 읽는 여자들, 19금 로맨스의 전성시대


■Culture 문화
정지혜 | 영화 <로마>, 비극 직시하는 시간의 얼굴들
김형근 | <삼.서.삼.색> 지금,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윤상민 | <영화와 관계>, 당신에게 들려주는 은밀한 관계
신은희 | 인간이 호모엠파티쿠스인 이유
김정은 | 관객 감성을 파고드는 대중성이 ‘춤의 본질’
도미니크 팽솔 | 록스타 게임스, 펑크 정신은 어디에?
안치용 | 기다려서 먹은 사과가 맛이 있을까?
한대호 | 청년 예술가들은 왜 사라졌을까?
[강의] 르몽드 시네마 아카데미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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