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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불륜의 심리학 ― <완벽한 타인>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불륜의 심리학 ― <완벽한 타인>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19.01.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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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은 잘 만든 코미디 영화이자,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한 특히 부부 관계의 예의와 불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이다.

입소문을 타고 520만 명이 본 이 새롭고 독특한 형식의 영화는 2016년에 나온 이탈리아 영화 <Perfect Strangers>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일단 각본이 탁월한데,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와 주고받는 대사들은 코미디와 아슬아슬한 서스펜스를 넘나든다. 이순재, 조정석, 라미란 등의 목소리 연기와 석호 부부의 딸을 제외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은 일곱 명이 전부다. 잘 짜인 각본에 배우들의 명품연기가 더해지며 완성도가 한층 높아진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유해진이다. 기존의 유쾌한 캐릭터가 아닌, 신경질적이고 가부장적인 인물을 묘사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서진 역시 기존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경박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고, 김지수는 시종일관 우아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염정아는 작품을 잘 이끌어 가고 조진웅의 절제된 연기와 송하윤의 순진하지만 당돌함을 잃지 않는 연기도 좋다. 가장 어려운 역할을 소화한 윤경훈은 후반부에 빛을 내는 인물이다.

 

 

일곱 명의 배우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게, 아무리 원작이 있다고 해도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현실감 있게 잘한다. 한정된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넓게는 집 안, 좁게는 식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보여주는 매우 경제적인 선택을 했다. 그래서 관객들도 오히려 이 작고, 소품 같은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순수하게 이야기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방식인 셈이다.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하다. 등장인물들이 고향 친구들이고 또 오래 봐왔으니까, 그리고 부부니까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니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다들 갖고 있다. 영화는 소년 시절의 석호, 태수, 준모, 영배를 먼저 보여준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각각의 개성을 다 드러낸다. 월식이 있었던 날, 호수에서 얼음낚시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34년이 지나 다시 월식이 있는 날, 친구들은 석호와 예진의 집들이에서 한 가지 게임을 한다.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놓고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걸려오는 전화, 메시지, 이메일을 모두 공유하기로 한다. 사생활을 전부 드러내자는 건데, 이 진실게임에 등장인물들이 동참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집들이에 모인 친구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공개하기로 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의 시작은 그리 특별한 것이 없다. 석호와 예진 부부는 의사 부부인데, 예진의 집에서는 사위 석호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긴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준모와 수의사인 아내 세경은 남들 보기엔 죽고 못 사는 닭살 부부이다. 또 태수는 변호사이자 가부장적인 남편이고, 아내 수현은 전업주부이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남모를 스트레스를 갖고 있다. 그리고 영배는 지금 솔로인데, 친구들에겐 아직 공개하지 않은 애인이 있다. 다들 한두 가지 문제를 갖고 살지만, 겉으로 보면 평범한 모습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공개하는 순간, 그들이 갖고 있던 비밀이 드러난다. 이 영화는 친구도 부부도 하다못해 부모와 자식 간에도 결코 솔직해질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고 말을 건넨다.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건 진실이 아니라 비밀로 덮어두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완벽한 타인>이 좋은 작품인 건, 완벽에 가까운 인간관계, 그 허망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래 봐 온 친구도 옛 추억, 딱 그 정도로만 공유하는 사이이기 쉽다. 죽고 못 살게 사랑하던 사이도 헤어지면 남보다 못할 때도 많다. 이 영화는 인간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트집, 친구관계에 대한 발칙한 질문을 던지며 인간관계의 얇음을 웃음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완벽한 친구, 완벽한 부부가 바로 완벽한 타인인, 바로 이것이 <완벽한 타인>의 정체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나라면 스마트폰을 공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부부에 대한 예의로 서로의 스마트폰을 보여주어야 하나, 아니면 보려고 하지 않아야 하나? 스마트폰은 너무나 많은 것을 쌓아두고 있다.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은 철저하게 사적 영역이자,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담아둔 저장고이자,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간직한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그곳에선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때 얼마나 부도덕할 수 있는지 냉소적으로 영화는 바라보기도 한다.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때 누군가는 바람을 피우고, 누군가를 헐뜯고, 누군가는 외간 여자의 사진을 몰래 받아본다. 그것이 드러났을 때 혹은 드러날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섬뜩해진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서스펜스를 가득 담은 또 다른 의미의 공포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스마트폰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다소 과장되게 보여주면서 한 편의 코미디를 완성한다. 인간관계라는 게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 ‘속내의 순화’야말로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내가 쓴 가면이 내가 보여주는 예의고, 약간의 허세와 위선이 관계의 생명이다. 그것이 사회성의 본질임을 이 영화는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완벽한 바람’을 피우는 사람은 딱 두 사람뿐이다. 비밀은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준다. 남몰래 하는 밀애, 은밀한 장소에서의 랑데부, 깨어진 금기. 금지된 사랑을 비밀로 공유하면서 강력한 연대감과 구속력이 생긴다. 비밀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처럼 사랑하는 두 사람을 외부 세계와 구분 짓는다. 모든 것을 극비에 부쳐야 하는 두 사람은 독특한 마력과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밀월 관계를 유지할 수 없기에 두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은밀한 랑데부에 대해 생동감과 충만감을 느끼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 생동감이라니! 그 열정적인 키스, 포옹, 한숨. 그리고 달콤한 말들은 또 어떻고!

결속, 친밀함, 또는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적거나, 지나치게 강해지면, 그 즉시 정절에 적신호가 온다. 그런 상황에서는 충동 조절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충동 조절력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부부나 연인 관계가 덤덤해지면 유혹에 더 빨리 빠져든다. 거기에 정력마저 강한 체질이라면 제 삼자를 향한 문이란 문은 다 열려 있는 셈이 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인 욕구를 제어하거나 포기하는 법을 배운다. 누구든 기분 내키는 대로 다 할 수는 없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도 없다. 갖고 싶다고 해서 그 즉시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포기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욕구 충동을 점차 조절해나가야 한다. 즉 욕구불만의 내성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본능적인 욕구가 강한 사람의 경우 이러한 조절능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으면, 이 관계가 끝나면 저 관계를 맺으며 계속 삼각관계에 휘말리게 된다.

 

사랑을 가볍게 여기는 시대. 그러나 사랑이 지금처럼 중요하게 여겨진 적도 없었다. 사랑은 이상화되고 완벽한 어떤 것이라는 판타지가 더해졌다. 그런데도 외도가 벌어지고 내연관계가 성립된다. 그 원인이 생물학의 영역에 있든, 습관에 의한 것이든, 심리에 의한 것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배신’이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성공적인 진화 원칙은 ‘은밀한 외도와 함께하는 일부일처제’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은밀한 외도의 ‘원초적 욕망’과 일부일처제라는 ‘견고한 문화’ 사이의 루비콘 강을 건넌다. 열애 중일 때 인간의 결정능력은 저하된다. 말 그대로 이성을 잃게 되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쉽다. 열애 중에 생성되는 도파민의 영향이다. 도파민이 과다하게 배출되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미래를 고려하는 태도를 방해한다. 그러나 이를 보완하는 반작용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은 불륜의 루비콘 강을 건너는 순간, 거짓과 양심에 대한 심각한 심리적 갈등을 겪게 된다.

아, 이 간지럽고도 완벽한 흥분의 순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상처가 얼마나 깊을지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놓아주어야 한다. 놓아주면, 두 사람은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다. 이 경우 놓아준다는 것은 상대방이 자기 본연의 모습대로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삶은 변화와 성장, 그리고 계속되는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을 위한 전제는 ‘놓아주기’이다. 쥐고 있는 것을 용감하게 놓아줌으로써 빈손이 되어야, 당신 자신의 권한에 속하는 것, 그리고 삶이 당신에게 주는 것들을 붙잡을 수 있다. 사람의 지각을 마비시키고 헛된 희망을 꿈꾸게 하는 백일몽과 같은 허상의 세계로 도망치지 않아야만 삶은 우리 손안에 있게 된다.

행복은 의지와 성찰의 결과이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욕구불만을 견딜 수 있는 의지, 때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유보할 수 있는 결단, 행복은 결코 완벽하게 지속적인 상태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 인생에는 항상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면서 느껴지는 순간적인 행복만이 존재할 뿐이다. 행복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그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들 역시 그만큼 행복하다. 행복할 만큼만 욕망하고 살자.

 

 

1) 게르티 젱어 지음, 함미라 옮김, 『불륜의 심리학』, 소담출판사, 2009, 58쪽.

2) 게르티 젱어 지음, 앞의 책, 211쪽.

 

 

글 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이자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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