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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 둔갑한 민주주의, ‘광기’
의학이 둔갑한 민주주의, ‘광기’
  • 베로니크 포뱅상티
  • 승인 2010.10.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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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의사들, 민중의 정치적 요구에 병적 거부감
혁명 가담자들 조광증·정신착란 등으로 억지 분류

▲ <우둔한 사람>,2006-리카르 아미마르
“정치가 정신이상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인가?” “사람들이 광기에 사로잡히는 것은 정치적 흥분의 자극을 견딜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이는 1848년 3월 6일 프랑스 정신병리학회가 ‘정치·사회적 충격이 정신병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제기된 질문이다.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제2공화정이 선포된 지 며칠 후 일이었다.

몇 달 후 프랑스의 정신병리학자 알렉상드르 브리에르 드 부아몽은 1848년의 격변에서 임상적 결론을 도출했다. “보수주의 당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울증적인 편집증 증세를 보인 반면, 새로운 사상에 경도된 사람들은 조증(躁症) 혹은 조증 성향의 편집증 증세를 보였다. 고대 또는 중세 시대 광기의 재현과 다름 없는 유토피아 사상에 온몸으로 투신한 사람들은 광인이 아니라 자유분방한 혁신자로 인식된다. 그러나 의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의 표정·몸짓·말 등을 관찰해보면, 이들이 정신병원에 수용된 환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양쪽을 비교하면, 오히려 내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훨씬 적다.”(1)

이런 관점은 2년 후 카를 테오도르 그로덱 박사의 <민주주의 병, 새로운 광기>가 베를린에서 출판되고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제르메르바이에르 출판사, 파리, 1850)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이 저서에 대한 논평에서 브리에르 드 부아몽은 동료 의사가 혁명 가담자를 분류하는 데 사용한 5개 범주(선동가·조광증(躁狂症) 환자·편집광·정신착란자·백치)(2)를 인용한다.

1863년 루이 베르즈레 박사는 “1848년 2월의 정치·사회적 동요의 원인이 된” 광기를 10개의 예로 제시한 논문을 발표했다.(3) 그는 이 논문에서 “나쁜 신문들과 정치적 떠버리들, 모든 종류의 사회주의·공산주의·푸리에주의(‘팔랑주’라는 자급적·독립적 공동체로의 사회 전환을 주장했다-역자)가 야기한 몰상식”을 비판했다. 이 사상들은 “완벽한 행복의 꿈을 현세에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이단”이라는 것이다. 그가 표본으로 제시한 10명 중 9명이 여성이었다. 이처럼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당시 정신과 의사들이 여성의 육체와 신경이 남성보다 취약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열정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에 정신적 균형을 잃으면 광기에 사로잡힐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들 중 빅토린 U는 “운명적 상황이 순수하고 소박한 영혼을 뒤흔들어놓기 전까지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공화국의 어머니”를 자칭하며 바르베스, 블랑키, 루이 블랑, 라스파이, 레드뤼롤랭 같은 정치범을 구출하기 위해 파리로 가고 싶어했다. 그녀는 전제군주제를 종식시킬 수만 있다면 “자신의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고 선언했다. 예전에는 좋은 엄마, 능숙한 일꾼이던 루이즈 N은 ‘급진적인 정치 팸플릿’에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직업과 집안 살림을 완전히 내팽개친 경우다. 그녀는 광란적인 몸짓으로 분노에 사로잡혀 소리를 질러댔다. 그녀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면 이웃은 겁을 집어먹곤 했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저주를 퍼부었다. “비참함을 끝장내자.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를 끝장내자. 부자도 경찰도 없는 세상을 만들자. 인간은 스스로를 통치해야 한다.” 그 밖의 예로 제시된 여성 중에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며 어둡고 거칠며 성마른 성격의” 가브리엘, 라마르틴의 시를 읽고 “수개월 동안 호색증(好色症) 증상을 보인” 오귀스틴도 있었다.

베르즈레는 이 여성들의 흥분과 정신이상이 정치적 열광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는 당시 ‘제2의 성(性)’이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것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이었다. 여성은 ‘마리안’(Marianne·프랑스 공화국의 가치를 상징하는 의인화된 여성상-역자)이라는 이름으로 이상화되거나 국가나 공화국의 알레고리적 형상으로 찬미되기도 했지만, 사실상 영원한 미성년자로 취급받았다. 콩도르세처럼 여성이 ‘열등한’ 이유가 단지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여성을 단순히 모성적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존재하는 해부학적 대상으로 보았다. 그들은 ‘공적 공간은 남성 차지며 여성은 가족으로 대표되는 사적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에서 일탈하는 것은 타락이며 위험한 일이었다. 이런 일탈은 성 구분에 기초한 사회적 균형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베르즈레는 표본 중 한 명인 “빅토린이 푸리에의 사상에 지나치게 심취해 머리가 돌아서 남장을 하고 외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의학 잡지 <라 크로니크 메디칼> 1897년 10월 15일자에 실린 글을 보면,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1762~1817, 프랑스의 여성 혁명가)는 이미 “공적 삶으로서의 첫 행동들” 속에서 광기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볼기짝을 얻어맞는 순간 반항적인 인물로 타락해버렸다”(1793년 지롱드당의 우두머리 브리소를 지지했다는 죄명으로 국회에서 알몸으로 채찍질을 당한 사건-역자). “그녀는 완전히 미치기 전 이미 반 정도 미친 상태였다. 예전에 신부들이 말했듯이 먼저 몸이 미친 후에 정신이 미치는 것이다.” ‘석유방화범’ 여성들(pétroleuses·파리코뮌 전투에 참가한 여성들-역자)의 예에서, 여성이 통제에서 벗어나면 고삐 풀린 성욕에 지배당하게 된다는 이론이 도출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혁명운동에 몸을 던진 여성은 결국 ‘제정신’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혁명적 메가이라(복수의 여신)이든 왕당파 하르피이아(새의 몸통에 여자의 머리를 한 괴물)이든 정치에 뛰어든 여자들은 모두 똑같다.”(4) 1906년 오귀스탱 카바네스 박사와 뤼시앙 나스 박사가 내린 결론이다.

1848년 프랑스 정신병리학회가 제기한 혁명과 광기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1871년 파리코뮌을 거치며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장밥티스트 라보르드 박사는 일정 상황 속에서 “특별한 양상”으로 드러나는 “유전적 성향”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5) 브리에르 드 부아몽은 1871년 “육체를 통제하기 위한 강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나치게 위험한 미친 선동가들”, 가령 파리코뮌 가담자들에게 “물리적 제약”을 가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사회를 파괴하려는 광신적 과격파들이며 이들이 우리 사회의 가족·소유·개인·자유·지성·헌법에 대해 갖고 있는 완전히 반자연적인 생각들은 오직 광기를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6)

공식적인 보고서- 특히 1875년 제출된 펠릭스 아페르 장군의 보고서-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가나 의사들의 글 속에 묘사된 파리코뮌의 인물들은 병들고 불완전한 몸에 마치 실성한 듯 뒤틀린 얼굴이다. 여성은 우리를 탈출한 짐승처럼 여기저기 떠돌며 악을 써대는 모습으로 그린다.

한편 프랑스인의 광기가 국경을 넘어 자국 국민에게 전염될 것을 염려한 영국과 독일의 의사들은, 유독 프랑스인이 혁명의 열기에 사로잡히는 이유에 대해 질문하는 저서를 출판해 프랑스 의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영국의 제임스 길레이나 조지 크룩샌드의 캐리커처를 통해 굶주리고 피의 광기에 사로잡힌 프랑스 과격 공화파의 이미지가 이미 널리 퍼졌다. 파리코뮌이 진압된 직후 런던의 한 신문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와 파리코뮌 가담자의 ‘신경질적인’ 성격을 비교하는 만평을 실었다. 같은 시기에 독일 의사 카를 스탁은 ‘프랑스인의 타락, 그들의 병적인 성격의 증상과 그 원인’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프랑스 민족의 선천적인 오만과 건방짐”을 원인으로 지목한 후 “프랑스인의 뇌는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을뿐더러 프랑스적인 특별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다”(7)고 주장했다.

‘시민-환자’의 형상이 등장하기 전까지 지배적이던 ‘극렬한 반란자’의 이미지는 놀랍게도 현대에 와서도 새로운 사회운동이 등장할 때마다 ‘병적인’, ‘열광하는’, ‘정신분열적인’ 심지어는 ‘자폐적인’ 프랑스에 대한 비난 속에 재등장한다.

글•베로니크 포뱅상티 Véronique Fau-Vincenti
역사학자, 몽트뢰이 수부아 역사박물관 학술 활동 책임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Alexandre Brierre de Boismont, ‘최근의 사건들이 광기의 발달에 미친 영향’, <L’Union médicale>, Paris, 1848년 7월 20일.
(2) <Annales mêdico-psychologiques>, 파리, n°2, 1850.
(3) <Annales d’hygiène publique et de médecine l?gale>, 파리, série 2, n°2, 1863.
(4) <혁명적 신경증>, Société française d‘imprimerie et de librairie, 파리, 1906.
(5) <파리 봉기 참가자들의 행동에 드러난 병적 심리>, Germer-Baillière, 파리, 1872.
(6) <Annales médico-psychologiques>, 파리, n°5-6, 1871.
(7)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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