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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삶이 지옥이라도, 그럼에도 : <한공주>
[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삶이 지옥이라도, 그럼에도 : <한공주>
  • 최재훈(영화평론가)
  • 승인 2019.02.07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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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영화 <한공주>의 첫 장면에 주인공 한공주는 자신을 둘러싸고 서 있는 어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관객들은 주인공 공주의 이 첫 번째 대사를 우선 마음에 품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딸을 가진 부모들이 어린 시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딸아이를 ‘공주’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마음에 담아야 한다. 그것이 어느 누구도 편들어 주지 않는 한 소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영화 <한공주>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앞서 분노하거나 대신 싸우는 대신, 세상에서 가장 아픈 사람이 주인공 한공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묵묵히 응원해주는 선의가 필요하다는, 그것이 예의라는 속삭임 말이다.

 

이토록 비겁한 세상 속, 공주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처럼 살고 있는 한공주(천우희)는 전 학교 담임선생의 어머니 집에 위탁이 되어 새로운 학교에서 살아간다. 연락이 끊겼던 친 엄마를 수소문해 찾아냈지만 공주의 방문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공주를 보호해주지 않고, 피의자와의 합의를 통해 돈을 뜯어내고 공주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다. 날선 태도로 친구들을 거부하던 공주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것은 같은 반 은희(정인선)이다. 은희의 적극적이고 밝은 태도에 공주의 마음은 조금씩 열린다. 평소 노래를 좋아하던 공주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은희 덕분에 아카펠라 동호회에서 활동도 하고, 소소한 수다를 떨 친구들도 생긴다. 냉정하던 담임선생의 어머니도 공주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 위로가 된다. 수영도 배우면서 위탁가정에서의 삶에 적응하면서 웃음도 되찾으려는 순간, 피의자 부모가 학교로 찾아오면서 위태롭던 일상은 다시 지옥이 되어버린다.

<한공주>는 치유의 영화가 아니다. 관객들의 심장을 옭죄고, 칼날 같은 생채기를 낸다. 크게 심호흡하고 내내 숨 쉴 틈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지옥 속을 헤매는 여리고 작은 소녀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미성년 성폭행 피해자 가족의 사적 복수를 통해 소년범죄의 심각성과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방황하는 칼날>과 비교해 <한공주>는 잔잔하게 찰랑거리지만 훨씬 더 답답하다. 정의를 위해 싸워줄 젊은 형사도 목숨 바쳐 자신을 지켜줄 아비도 없이 홀로 버텨야하는 한 소녀의 삶 속 깊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한공주>는 에둘러 사회문제를 심각하게 짚어내기 보다는 이 지독한 불신의 사회 속에서 버티고 선 한 개인의 삶을 묵묵히 지켜본다.

 

영화의 시작,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공주를 둘러싼 어른들의 눈빛을 되짚어야 한다. 공주는 피해자였지만, 어른들은 모두 그녀를 비난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아마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를 미리 알지 못하고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교무실 한 구석에 그렇게 앉아있는 공주에게도 뭔가 잘못이 있겠지 함께 의심하게 만든다. 가해자의 범죄와 별개로 늘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시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중적 잣대 때문에 피해자는 숨어 다녀야 하고, 합의를 통해 무마될 수도 있는 사건이라 가해자 부모들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법적인 구속에서 풀어주기 위해 피해자를 구슬리고 협박한다. 이정향 감독은 앞선 영화 <오늘>을 통해서 피해자와 피의자간에 합의가 되면 범죄사실 조차 무마가 되는 ‘합의’라는 제도가 전 세계 유일하게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를 했다. 합의를 위해 피의자는 피해자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피의자들에게 그 정보가 고스란히 공개된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합의를 원치 않지만 때론 합의를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 가족도 있다. 영화 <한공주>에서 공주의 평온한 삶 속으로 다시 찾아오는 흉포한 방문은 그 ‘합의’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전학을 오자마자 공주는 수영강습을 받는다. 수영을 배우면서 공주는 험한 세상에서 숨 쉬는 법, 그리고 생존해가는 법을 상징적으로 배워나간다. 그렇게 이수진 감독은 공주를 응원하지만 공주를 둘러싼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공주가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실 이후에 냉정하게 태도를 바꾸는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그나마 공주에게 호의적인 담임선생도 이렇게 말한다. “그래. 너 잘못한 게 없는 것 알아. 그래도 그게 그런 게 아니야. 잘못을 안했다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니고, 잘못을 했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야”라고. 위탁 가정의 조여사도 공주가 성폭행 피해자이고, 그녀의 친구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고 떠나는 공주를 잡지 않는다. 공주의 친구 은희는 “공주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란 걸 다 알아.” 라고 문자를 보내지만 막상 성폭행 사건을 담은 동영상을 본 이후, 공주에게서 온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은희의 외면이 일시적인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영원한 건지 속 시원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선의를 가진 인물인 은희의 태도가 바로 지금 우리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한공주>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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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는 그 먹먹한 삶의 무게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공주라는 인물 그 자체가 되어 관객들의 마음을 흔든다.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공주라는 인물은 천우희를 통해 실존 인물이 되어 우리 앞에 섰다. 이수진 감독은 그 삶이 지옥이라도, 그럼에도 살아봐야겠다는 개인의 의지를 응원하자고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살아야 하는 한공주를 보면서, 앞서 분노하거나 맞서 싸워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기에 앞서 세상에서 가장 아픈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지켜보고 묵묵히 응원해주자고 말한다. 영화는 ‘누구의 딸도 아닌, 공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공주가 우리 모두의 딸이 되어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선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앞서 밝힌 것처럼 수영은 <한공주>의 중요한 키워드이다. 수영복 매장의 직원이 무심한 듯 내뱉는 한 마디는 영화의 주제와 이어진다.

 

물 위에 드러누우면 누구나 뜰 수는 있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지.

 

 

* 사진 출처 : 다음영화 – 한공주 - 사진

 

 

글·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2018년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텐아시아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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