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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린 북> 불합리한 사회에서 품위를 지키며 사는 법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린 북> 불합리한 사회에서 품위를 지키며 사는 법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19.03.11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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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미국의 남부 아직 인종차별이 남아있던 시절,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 셜리(마허샬라 알리)와 그의 순회공연을 무사히 마치게 해줄 로드매니저 토니(비고 모텐슨)의 남부 투어를 그린 영화이다. 당시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숙소를 정리한 책자 ‘그린 북’을 들고 떠나는 로드무비이다.

차별이나 이해 부족으로 인한 폭력,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혐오감, 인종과 성별, 직업과 세대에 걸쳐 나타나는 배타적인 태도들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기에 영화는 배타적인 삶의 불합리한 면을 영화에 담아내려고 부단히 애쓴다. 하지만 배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방식은 영화마다 상당한 온도 차이를 보인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흑인 인종 차별’에 관한 영화만 해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흑인 노예들의 힘든 폭력적인 삶을 그려낸 <뿌리>(1977)와 <노예12년>(2013), 그리고 <겟 아웃>(2017), <문라이트>(2016), <히든 피겨스>(2016)처럼 인종차별에 관한 극적인 서사를 펼치는 방식의 영화도 있다.

 

<그린 북>은 전자처럼 부당한 폭력의 재현이 중심이 있지도, 극적인 서사가 중심이 되는 영화도 아니다. 그저 1962년 미국 남부의 일상 속에 차별이 늘 존재하는 것으로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동시에 인종 ‘차별’은 그렇게 일상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토니조차 자신을 고용한 셜리에 대한 직접적인 인종 차별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집에 일하러 왔던 흑인 인부들이 먹던 컵을 더럽다고 생각하고 그냥 버린다. 이런 ‘단순한 생각’이 정말 바꾸기 힘든 것이라는 것을 영화는 시작 부분에 설정해 놓고 있다. 1960년대 남부는 배타적이며 편견에 가득한 지역이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일상화되어 있다.

인종차별은 남부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 셜리가 북부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상류층 호텔에 묵었는데 남부로 내려갈수록 점차 허름한 숙소로 변한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흑인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러한 참혹한 현실을 담담하고 일상적으로 그려낸다. 당시의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훌륭한 공연을 펼치고 관객들이 서로 박수를 치고 관계자들은 기뻐하지만 화장실을 찾는 셜리에게 건물 밖에 있는 흑인 전용의 허름한 화장실로 가라고 말하는 남부인의 표정은 당연함이 묻어있는 말투야말로 이 영화가 그려내고자 하는 부분이다. 그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 흑인을 차별했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흑인 남성과의 공감

예민한 셜리는 고통을 겪고, 흑인들에게도 오해받는다. 흑인들에게는 흑인답지 못하다고 비판을 받고 백인들에게는 흑인이라고 차별을 받는 상황이다. 그래서 셜리는 외롭다. 영화 내내 누구보다 차분함과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셜리박사가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나는 충분히 백인답지도 않고

나는 충분히 흑인답지도 않고

나는 충분히 남자답지도 않고

나는 누구입니까

상황은 다르지만 이것이 우리의 사는 모습이 아닐까. ‘여자이면서 아내이기도 하고 일을 해야 하기도 하고 동시에 엄마이기도 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때가 있다. 세상에 처음부터 명확하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자신과 세상을 맞춰나가는 과정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애쓰며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삶이란 자신이 태어난 존재의 이유임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이전까지 말이 많던 떠버리 토니는 셜리의 이런 진솔한 감정을 듣고 나서 아무 말도 못한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공감하면 함부로 말을 못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난 너를 이해하고 공감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한 순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진심으로 상대를 공감한다면 상대의 고통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는 순간 먹먹함으로 어떤 말도 쉽게 꺼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린 북>은 인물 설정만 놓고 보면 1989년에 나온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와 2011년에 나온 <언터처블 : 1% 우정>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들이 백인 할머니와 문맹의 흑인 운전기사, 부유한 백인 장애인과 흑인 운전기사의 개인적인 우정에 머물러 있는 영화라면 <그린 북>은 사회 속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흑인의 처우 개선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가를 그린 영화도 아니고 차별과 모멸을 있는 그대로 당하는 당시 일반적인 흑인을 그린 영화도 아니다. 흑인들 중에서 아마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상류층 엘리트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렇기에 당시의 처절한 인종의 문제에서 조금은 비켜서 있다. 그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자 차별점이다. 일상 속에 스며들어 뿌리박힌 차별과 불합리함을 보여준다. 아직도 세상에는 차별과 편견이 가득하다. 영화는 셜리의 방식대로 말한다. 그러한 불합리한 편견과 부당한 차별에 맞서는 것은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글 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이자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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