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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브라함과 셀마의 공통점, 차이점 영화평 <어둠 속의 댄서>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브라함과 셀마의 공통점, 차이점 영화평 <어둠 속의 댄서>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19.03.13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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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계의 이단아라고 부르기까지는 어렵겠지만(왜냐하면 ‘그럼에도’ 그는 주류적이다), 문제아라고 하기엔 충분한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 그의 문제적 행태나 성향은 조금만 찾아보면 확인할 수 있기에 이 자리에서 거론하지는 않는다. 현재 국내에는 그의 두 작품이 상영중이다. <살인마 잭의 집>은 따끈따끈한 최근작이고, <어둠 속의 댄서>는 재개봉작이다.

두 작품 가운데 <어둠 속의 댄서>는 트리에 감독에게 2000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것으로,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호감과 비호감으로 갈려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맞서는 편인데 먼저 <어둠 속의 댄서>가 아마도 예외에 속한다는 점을 지적하여야겠다. 물론 <어둠 속의 댄서>에 대해서도 비판이 존재하지만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는 않지 싶다. 다음으로는 무엇보다 이 작품이 뮤지컬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뮤지컬이란 형식이 영화의 내용을 비롯하여 많은 것을 결정했다. 전반적인 호의적 반응 또한 뮤지컬이란 영화적 형식과 관련된다.

 

‘어둠 속의 댄서’는 잔 다르크?

“나는 뮤지컬을 좋아한다. 이번 작품 속의 뮤지컬은 〈사운드 오브 뮤직〉과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을 차용했지만, 동시에 전형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있다. 여주인공 비요크의 존재가 너무 강해 그의 뮤지컬이 아니라, 주인공인 셀마의 뮤지컬이 되도록 연출했다. 이 영화는 ‘잔 다르크’란 제목을 붙여도 좋을 것이다.”(라스 폰 트리에 감독)

그의 말마따나 이 영화는 전형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있다. 어떻게 벗어나 있을까. 수입배급사는 “<어둠 속의 댄서>는 정통 멜로의 스토리 형식과 디테일에 있어선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해 만들었”으며 “예쁘게 보이려고 하거나 가식적인 표현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디테일의 리얼리티와 가식적인 표현의 배제가, 전형적인 방법에서 벗어났음을 대표하는 듯하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앞 못 보는 여인이, 자식을 위해 스스로 희생됨을 자처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플롯을 짜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일감으론 불가불 신파를 벗어나기 힘들어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나 이 ‘신파’는 우화로 읽혀야 한다. 무고한 자의 자발적 희생됨은 그것이 흔한 모성의 형식을 취한다 하여도 다소 초월적이고 또한 항상 종교적이다.

트리에 감독이 잔 다르크를 언급했을 때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 셀마를 통해 그려지는 종교성을 자신도 모르게 지적한 것이다. ‘희생됨’은 폭력을 근간으로 한 ‘사회’의 문법이다. 자식을 위하여 생명을 포함한 자신의 몫을 내어놓는, 모성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희생됨은 폭력의 현상이며 사회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반면 ‘자발적인 희생됨’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수식어 없는 ‘희생됨’이나 ‘희생됨을 그저 받아들임’보다는 높은 수준의 희생됨이겠지만 ‘희생함’에는 못 미친다. 그렇지만 분류하자면 ‘자발적인 희생됨’은 ‘희생함’과 같은 범주에 묶어야 한다. 신적인 영역에 닿아 있기에 인간사에서 희생함은 드물고 귀하다. 하여 ‘자발적 희생됨’이나 ‘희생함’은 종교의 문법에 속한다.

성경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예를 들어 간단히 설명하면, 아브라함은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 이삭을 애지중지 키우다가 어느 날 외아들을 죽여서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순종한다. 이 순종함을 아브라함의 희생함이라고 등치시킬 수 있다. 반면 이 사건에서 이삭은 희생됨이다. 알다시피 이 사건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이기 직전에 천사가 개입함으로써 이삭이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희생함은, 이삭의 희생됨과 무관하게 실현되었다. 반면 이삭의 희생됨은 실현되지 않았다.

 

<어둠 속의 댄서>의 셀마는 희생됨의 캐릭터로 그려질 수 있었지만 희생함의 캐릭터로 승격된다. 셀마와 아브라함에게 아들의 의미가 달라졌다는 차이가 목격되는데, 그로 인하여 셀마는 ‘희생함’이 아니라 ‘자발적 희생됨’이 된다.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성경의 사건에서는 이삭이 희생물이 되지만, 영화에서는 셀마 자신이 희생물이 된다. ‘자발적 희생됨’은 그러므로 어느 정도는 ‘희생함’의 성격을 갖는다.

트리에 감독은 무고하고 아름다운 주인공이 곤경에 처했다가 천사의 개입에 비견될 모종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에 이른다는 전형적 스토리를 원천 차단한 것에서 머물지 않고, ‘희생’의 플롯을 도입하고 거기서 자발적 희생됨의 구조를 만들어내었다. 마지막의 충격적 교수형 장면은, 해피엔딩의 유혹을 끝내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반(反)헐리우드적일 뿐 아니라, 희생됨의 육화를 영상화하였다는 측면에서 종교적이다. 잔 다르크의 본질 또한 종교이다.

디테일의 리얼리티 등 나머지 것들은 비본질적이다. 얼핏 신파로 보이지만 전형적이지 않고 종교적 기상을 물씬 풍기는 서사야말로 이 뮤지컬 영화가 다른 뮤지컬 영화와 차별되는 점이다. 관객의 영화감수성이 높아진 2000년에 선보인 뮤지컬 영화라면 당연히 전래의 뮤지컬 영화와 달라졌어야 하는데, <어둠 속의 댄서>가 그러했다. 칸 영화제 또한 인정했고.

 

 

분열된 세계

기존 뮤지컬과 다르다고 할 때 <어둠 속의 댄서>의 서사방식을 최우선적으로 거론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요소로는 뮤지컬을 서사와 접목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앞을 못 보는 여인에게 주어진 현실은, 마찬가지로 앞을 못 볼 운명인 아들의 개안(開眼)을 위한 희생됨이지만, 그녀에겐 뮤지컬이란 환상이 주어진다. 셀마의 환상을 표현하는 방법론으로 채택된 뮤지컬. 이미 환상임을 알고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뮤지컬로 표현되는, 극중 현실의 고통의 치유제로 주어지는 또 다른 환상이 주어진다. 기존 뮤지컬 영화가 영화라는 환상을 뮤지컬로 표현하는 평면 구조를 갖췄다면 <어둠 속의 댄서>는 영화라는 환상 속에 또 다른 환상을 뮤지컬로 투입하는 입체 구조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입체 구조에서는, “이건 환상이야.”라고 선언함으로써, 환상(뮤지컬)이 속해 있는 더 높은 차원의 환상(영화 전체)을 현실처럼 받아들일 가능성을 높이며, 동시에 영화 몰입도를 제고할 수 있다.

뮤지컬 영화는 현실을 음악과 춤으로 그려내기 때문에 재미를 주지만 그로 인한 리얼리티의 저감이 불가피했다. 반면 <어둠 속의 댄서>에서는 뮤지컬을 사용하는 부분을 셀마의 환상영역으로 구분함으로써 영화 전체로서 뮤지컬 영화임에도 리얼리티가 높아지게 된다. 영화 밖 우리가 꿈꾸는 환상에서도 다양한 장르가 혼재한다고 할 때 셀마의 환상을 뮤지컬로 처리한 감각은 적절했다.

 

 

이 영화는 비교적 단순한 플롯을 가동하면서도 정주민과 이민자, 눈뜬자와 눈먼자, 사랑하는자와 사랑받는자 등 많은 이분법과 분열을 중층적으로 엮어내어 선악의 문제, 삶의 문제를 간단하지 않게 형상화한다.

‘자발적 희생됨’의 캐릭터 셀마는 현실과 환상,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일반 극영화의 장면과 뮤지컬의 장면 등 영화 속에 존재하는 수다한 이분법을 만드는 사람이며 넘나드는 사람이다. 자신의 죽음과 아들의 삶, 자신의 영원한 실명과 아들의 개안 등 ‘자발적 희생됨’의 통로를 의연하게 통과하여, 충격적이지만 카타르시스에 근접한 무엇인가를 부여잡은 결말을 보여준다.

 

셀마 역은 가수 비요크가 맡았다. 비요크는 배우 데뷔작 <더 주니퍼 트리> 이후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중, 트리에 감독의 제안으로 10년 만에 <어둠 속의 댄서>로 카메라 앞에 섰다. 시력을 잃어가는 여인으로, 자신처럼 눈이 멀어 가는 아들을 위해, 그의 개안 수술비를 벌기 위해 악착같이 공장에서 일하는 미국사회의 이민자이다. 극중 현실은 암울하지만 환상 속에서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와 춤을 보여준, 새로운 유형의 뮤지컬 주인공으로서 많은 영화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이번 영화는 오래 전 기억을 즐겁게 되살려준다.

기억과 관련하여 캐시 역의 까뜨린느 드뇌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둠 속의 댄서>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준 듸뇌브는 <사운드 오브 뮤직> 등과 함께 뮤지컬 영화 대명사라고 할 <셰르부르의 우산>(1965)의 주인공이었다. <셰르부르의 우산>의 비련의 여주인공 듸뇌브는 1943년생이다. 그의 과거를 기억하는, 또는 <셰르부르의 우산>의 음악과 그 애잔한 로맨스를 기억하는 영화팬은 그의 변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흥미로운 캐스팅이었다.

 

2월21일 재개봉했다.

 

 

 

글·안치용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장으로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한다. 지속가능성과 CSR을 주제로 사회활동을 병행하며 같은 주제로 청소년/대학생들과 소통/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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