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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달러’로 문화예술을 꽃피울 수 있을까? - ‘문화예술국가’로 변신하는 UAE
‘석유달러’로 문화예술을 꽃피울 수 있을까? - ‘문화예술국가’로 변신하는 UAE
  • 양윤정 l 디자인 컨설턴트
  • 승인 2019.03.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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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시작돼 올해로 14회를 맞이한 아부다비 페스티벌은 명실상부 아랍에미리트(이하 UAE)의 가장 큰 공연예술 이벤트다. 매년 3월 한 달간 열리는 이 행사는 평소 현지에서 접하기 어려운 해외공연들을 초청해 자국민의 문화적 경험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것 외에도 해마다 ‘귀빈국’을 선정해 해당 국가의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외교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이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귀빈국으로 선정돼 국립발레단과 코리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UAE 무대가 성사됐다. 또한 파리 오페라 발레단, 세계 3대 베이스 바리톤으로 꼽히는 영국 오페라 가수 브린 터펠과 웨일즈의 오케스트라 신포니아 캄루, 이탈리아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 등이 지난 3월 이번 페스티벌에 초대받아 무대에 올랐다. 국제무대 경험이 풍부한 강수진 예술감독과 정치용 지휘자, 조재혁 피아니스트도 이번이 첫 번째 아부다비 방문이라고 밝혔듯 아부다비 페스티벌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UAE를 알아가는 시작점으로 통한다. 고작 인구 90만 명의 작은 도시에서 이런 거대한 스케일의 공연이 어떻게 기획된 것일까? 페스티벌 창립자 후다 알카미스-카누 여사는 문화예술의 항구적 가치를 강조한다. 

 

지난 3월 8일 아부다비에서 선보인 한국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 Ⓒ Abu Dhabi Festival

 

석유 비축 한계의 두려움이 국가비전 원동력

“석유가 UAE를 지속시키는 유일한 자산이 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바닥을 보이는 게 석유산업이에요. 우리는 그다음을 준비해야 하죠. ‘문화’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 나라의 미래가치라고 봅니다. ‘문화강국’으로 불릴 미래를 위해 어떤 투자라도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UAE는 1971년 영국이 걸프만에서 철수하면서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등 7개 자치왕국이 합쳐져 형성된 연방국이다. 현재는 세계최대 높이의 건물과 200개의 인공섬을 보유한 나라지만, 과거에는 가난하고 불행했던 나라다. 포르투갈과 영국의 공격으로 선조들은 유목민 활동에만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까지도 현재 아부다비와 두바이 통치가문의 선조들은 기껏 노예무역을 통해 생활했다. UAE의 운명에 반전을 선사한 것은 1962년 아부다비에서 시작된 석유수출이다. 7개 자치왕국 중 가장 가난했던 아부다비가 가장 부유한 곳으로 탈바꿈했고, 두바이는 무역항으로 변신했다. 이렇게 한순간에 석유수출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석유비축분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이것이 UAE의 고민이다. 

그러니 역사가 50년도 채 되지 않은 이 작은 나라에서, 더욱이 불모지 곳곳에서 여전히 초고층 건물을 짓는 건설현장의 땅에 미래가치로 불릴 문화자산이 무엇일지 궁금증이 생긴다. 인구의 90%가 외국인인 곳에서 문화적 독창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현재까지 UAE의 문화사업 방향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투자로 주목받았다. 샤디야트 섬을 문화 관광특구로 지정하고 루브르 구겐하임의 분관, 뉴욕대 아부다비 캠퍼스, 해양박물관과 오페라 하우드 등이 들어서는 큰 청사진을 바탕으로 국가 차원에서 180억 달러(약 20조 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그런데 엄청난 투자로 세계 유명 대학의 캠퍼스를 유치하고, 유명 뮤지엄의 이름을 빌려 개관하는 방식이 독창적인 문화 형성에 과연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2017년 11월 프랑스의 미술, 건축, 디자인 관련 기자들이 대거 아부다비로 향한 적이 있다. 루브르 아부다비 개관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자국의 상징인 루브르가 해외에 문을 연 점에 대해선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 언론인들은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만큼, 루브르의 명예가 실추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프랑스는 30년간 ‘루브르’의 이름을 빌려주고, 소장품 대여와 미술관 운영 노하우를 알려주는 대가로 9억 7,400만 유로(1조 2,584억원)를 받았다. 이와 관련, UAE 인들은 “문화는 인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향유해야 하는데, 우리의 투자 덕분에 훌륭한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됐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실제 개관 1년을 넘긴 루브르 아부다비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루브르 아부다비가 도시의 랜드마크로 떠오르자, UAE를 찾는 관광객이 6.5%나 늘었다. 이와 함께 3월에 열리는, 중동에서 가장 큰 아트페어 아트두바이, 샤르자 비엔날레와 같은 행사를 함께 관람하는 문화여행상품도 계속 개발돼 미술애호가들에게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근사한 하드웨어 준비를 마쳤다면, 그것을 유지할 소프트웨어, 즉 매력적인 컬렉션과 멋진 큐레이션이 중요하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소프트웨어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법이다. 2018년 11월 두바이 디자인 위크(이하 DDW)에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함께 있었던 프랑스 이탈리아 기자들은 행사 전반에 대해 “요란하기만 할 뿐, 장인정신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기자들에게는 4회를 맞이한 DDW의 규모와 성장은 알맹이 없는 껍질뿐인 쇼 같았다. 자국의 독립적인 콘텐츠가 아니라, 유럽과 미국 등 디자인 강국에서 가져온 콘텐츠로 채워지는 것이 몰개성적이라는 느낌을 줬을 것이다.  

아트 시장의 경우, 디자인 시장에 비해 비교적 성숙했지만 외국 작가들의 작품들로 상당 부분 채워지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로 13회를 맞이한 아트 두바이는 41개국의 90개가 넘는 갤러리가 참여해, 중동에서 가장 큰 미술계 행사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반가운 것은 중동지역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데, 이는 UAE가 인근 아랍 국가들에게는 부족한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는 곳이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돼 뉴욕이나 런던, 파리에서 느껴볼 수 있는 예술적 에너지의 발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트 두바이가 시작된 2007년 이후 두바이의 갤러리 수가 급증했으며, 이 분야에서 일할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캠퍼스 아트 두바이’가 설립되기도 했다. 

비록 UAE가 작위적인 문화자본을 급조한다는 일부의 비판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실력 있는 디자이너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에 일단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두바이에서 기획한 글로벌 그래드 쇼(이하 GGS)는 세계 61개국 100개 디자인 대학의 졸업 예정자 150명의 작품을 선정 및 전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택된 학생들 모두에게 두바이행 왕복티켓과 숙박이 제공됐고, 최고 작품상 수상자에겐 1만 달러(1,100만 원)의 상금도 주어졌다. 미국의 하버드, MIT를 비롯한 각 국가 최고 디자인 학교의 인재들이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GGS 수상작과 전시 소식은 세계 메이저 디자인 매거진들이 해마다 앞 다퉈 다루는 주요 뉴스가 됐다.  
이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UAE의 내실은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행사는 정부 부처인 문화정보부의 후원으로 뒷받침된다. 민간기업이나 개인의 후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UAE의 문화예술을 빠르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UAE의 ‘압축적인’ 문화예술 창달이 ‘일반인’보다는 ‘엘리트’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진정한 문화강국은 모든 계층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이를 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20조 원이 투자된 사디야트 섬의 문화 관광 특구의 건설이 마무리되면 UAE는 세계에서 가장 가볼 만 한 ‘예술 유원지’가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랜드를 즐기기 위해 LA를 방문하는 것처럼, 섬 한 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쾌적하고 멋진 분위기 속에서 수준 높은 예술을 감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노예무역지에서 문화예술중심지 꿈꿔

UAE이 초고층 건물을 짓고, 거기에 서둘러 문화예술을 장식하는 것. 이는 해적들이 출몰하고, 노예무역을 벌이던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 욕망일 수 있다. 또는 줄어드는 석유매장량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자 미래 생존공간의 모색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은 UAE가 아랍국가들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국제 사업의 중심지가 돼,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싶은 기회의 땅으로 변신했다는 점이다. UAE에서 미술관을 이끌고, 행사를 주최하고, 디자인을 배우거나, 예술가로 활동하는 이들을 만나보면 각자의 국적을 넘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본인들의 활동지역인 UAE를 중동의 어느 한 나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글로벌무대로 여기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이곳 젊은 땅에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지리적으로도 유럽과 아시아 중간에 위치한 UAE는 접근성이 좋아 우리나라 문화예술인에게 국제적인 문화사업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문화 자본 축적을 위한 UAE의 대대적인 투자가 그저 도박으로 끝날지, 아니면 매력적인 문화예술을 꽃피울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아부다비 = 글·양윤정
Sadi(Samsung Art and Design Institute)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학사, 네덜란드 브레다 AKV St. Joost에서 그래픽 디자인 석사를 각각 마치고, 파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겸 디자인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국내 매체에 유럽 현지의 디자인과 문화를 알리는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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