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한진칼 주총서 다시 논의될 듯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칼 주총에서는 완승을 거뒀다. 조 회장을 겨냥한 국민연금의 정관변경안은 부결됐고, 그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은 재선임에 성공했다. 내년 주총에서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지만 당장의 위기는 넘겼다는 평가다.
한진그룹의 지주사격인 한진칼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빌딩 26층 대강당에서 제6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이날의 심의 안건은 △제6기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사외이사 선임의 건 △사내이사 선임의 건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 △이사 보수 한도 승인의 건 △감사 보수 한도 승인의 건 등 총 8개가 상정됐다.
이 중 관심이 모아진 것은 국민연금이 이사 자격 강화를 제안한 정관 변경의 건과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었다. 앞서 국민연금은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가 이 회사 또는 자회사와 관련해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에는 즉시 이사직을 상실한다'는 조항을 정관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이 안건이 통과될 경우 현재 270억원 규모의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조 회장의 향후 거취가 결정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석 대표의 연임안건에도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등이 반대 의사를 표하면서 표대결 여부에 시선이 모아졌다. 석 대표가 조 회장의 최측근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가 찬성 의견을 권고하고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사전 공지해 예상보다 싱거운 결과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한진칼은 조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자가 28.93%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2대 주주인 KCGI가 10.71%, 3대 주주 국민연금이 7.34%를 보유 중이다.
모든 안건 표결 진행…국민연금안 '부결'·석태수안 '가결'
이틀 전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불발되며 경영권에 제한을 받은 탓에 이날의 한진칼 주총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주요 주주들이 사전 제출한 위임장의 확인이 길어진 탓에 이날 주총은 예정된 시간보다 약 40분 늦게 개회했다. 참석 주주는 위임장을 제출한 주주를 포함 총 498명으로 이들의 보유한 주식 수는 전체의 77.18%에 해당했다.
안건 심의는 제1호 의안인 2018년도 재무제표 승인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신민석 KCGI 부대표가 차입금 증가 사유 등의 문제 제기를 하며 반대 의견을 낸 것. 한진칼 재무담당 임원은 "운영자금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었다"며 "이사회도 거친 정상적 경영 활동"이라고 설명했지만, 일부 주주들은 "투표를 통해 주주들의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좋겠다"며 표결을 요구했다. 해당 안건은 찬성 77.88%, 반대 및 기권 22.12%로 원안대로 가결됐다.
이어진 현금배당 등의 안건에도 반대 의견이 제기되자 주총 의장을 맡은 석 대표는 "신속하고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앞으로 매 안건마다 찬·반 토론 후 표결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표결로 주총 진행 시간이 길어지자 일부 주주들은 "굳이 모든 안건에 표결을 할 필요가 있느냐"며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에 석 대표는 "공정한 진행을 위해서는 단 몇 명이라도 반대하면 표결에 나서야 한다"며 "조금만 참아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현금 배당안과 내부거래위원회·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감사위원회 설치 등의 정관 변경 안건은 78~99%의 높은 찬성률로 승인됐다.
국민연금의 주주제안 안건도 신속하게 표결에 들어갔다. 앞선 안건들이 반대 의사가 있는 주주들이 손을 들어 의견을 표했던 것과 반대로 이 안건은 찬성 의견이 있는 주주들이 거수로 의사를 표시했다. 사전 위임장 집계 결과 찬성표가 소수라는 이유에서였다. 표결 결과는 찬성 48.66%, 반대 49.29%, 기권 2.04%로 집계됐다. 해당 안건은 특별 결의 사항으로 주총 참석자의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부결됐다.
뒤이어 주인기 국제회계사연맹 회장, 신성환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 주순식 법무법인 율촌 고문을 신규 선임하는 안건도 표결을 통해 원안대로 가결시켰다. 후보자들에 대한 찬성률은 각각 78.13%, 77.41%, 58.63%였다.
석 대표의 재선임 안건 역시 찬성 65.46%, 반대 34.54%로 승인됐다. 표결에 앞서 석 대표는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면 보다 투명한 책임경영을 통해 회사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주주 중에서는 신민석 KCGI 부대표가 "석 대표가 과거 한진해운 사태 때 회사를 살리려고 노력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2016년 한진칼 사내이사로 재직 당시 해운을 지원하기 위해 상표권을 700억원에 인수한 것은 한진칼 주주들의 가치를 훼손한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에 한 개인주주는 "석 대표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전문 경영인으로서 투명하고 안정적 경영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석 대표가 지속적으로 회사를 맡아준다면 회사의 발전은 물론 주주 권익도 보호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이 외에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감사 보수한도 승인 모두 표결을 통해 원안대로 가결됐다. 주주총회는 개회한 지 약 2시간20분만인 오전 11시56분 종료됐다.
조 회장 거취, 내년 주총이 분수령
이날의 주총이 원만히 마무리되면서 경영권 수성 기로에 놓였던 조 회장은 한 숨 돌리게 됐다. 대한항공의 사내이사직은 박탈됐지만 한진칼을 통한 그룹 지배는 기존대로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재계 일각에서는 내년이 조 회장의 거취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봤다. 조 회장과 그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모두 내년 3월로 한진칼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까닭이다. 특히 향후 1년간 KGCI가 추가 지분 매입 등으로 세력을 늘리고, 국민연금도 조 회장의 연임을 부정적으로 판단한다면 결과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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