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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중세의 성물과 수도사를 다룬 ‘필그리미지’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중세의 성물과 수도사를 다룬 ‘필그리미지’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19.04.0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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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사 액션 어드벤처'로 표현된 인간 존재론의 순례기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서기 55년 카파도키아, 누군가 줄에 묶여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끌려간다. 이윽고 적당한 자리를 찾았는지 사람들은 그를 더 이상 끌고 가지 않고, 둘러싸서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수다한 돌에 맞아 쓰러져 피 흘리는 그에게 최후의 일격이 가해진다. 주동자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맷돌과 어금버금한 크기의 돌을 들고 내려찍으면서 도입부의 장면은 끝난다.

화면은 1209년 아일랜드 바닷가로 빠르게 전환된다. 수도사 복장의 디아뮈드(톰 홀랜드 분) (나중에서야 벙어리가 아닌 것이 확인되는) ‘벙어리수도사(존 번탈 분)가 개펄에서 맛으로 추정되는 조개 같은 걸 잡는다. 아일랜드 바닷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던 평화로운 풍경은 갑작스럽게 말을 탄 외부인들이 등장하면서 긴장을 형성한다.

 

이 외부인은 교황의 명령을 받아 로마로부터 이 오지 수도원을 찾아온, 말하자면 제3의 수도사 제랄도(스탠리 웨버 분). 경호원을 대동하고 등장한 제랄도는 수도원장에게 교황의 칙서를 전한다. 칙서의 내용은 수도원이 보관하고 있던 성물을 로마로 보내라는 것. 극중에서는 제랄도를 통해 얼핏 그 이유가 십자군전쟁과 관련되었음이 전해진다. 또한 성물의 이송을 요청한 데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는 점이 분명히 그려진다. 교황의 명을 이행해야만 하는 수도원장은 보관중이던 성물을 꺼내 제랄도에게 주고 디아뮈드와 벙어리등의 수도사들에게 제랄도를 도와 성물을 무사히 로마로 운반하라고 명령한다. 이제 관객들은 영화 <필그리미지>의 전개과정을 얼추 파악하게 된다. 성물은 과연 로마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이해하기에 필요한 사전지식

이 영화를 사전 지식 없이 영화만으로 받아들여도 나름의 방식으로 충분히 감상할 수 있지만, 영화에서 제시된 몇 가지 힌트로 역사를 재구성한 다음에 감상하면 더 깊은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먼저 모두에 제시된 서기 55년 카파도키아 장면. 이 장면은 누가 봐도 기독교에서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진 스데반(혹은 스테파노)의 죽음을 그렸다. 신약성경에는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사도행전 757~59)라고 기록돼 있다. 극중 성물은 스데반을 내려찍어 수교케 한 그 돌이다.

그러나 스데반의 실제 순교지는 영화와 달리 예루살렘이다. 순교한 시기도 서기 55년보다 조금 앞설 가능성이 높다. 스데반을 모델로 했음에도 극중에서 이러한 착오가 생긴 이유가 제작진의 부주의나 무성의 때문이었을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극중 순교자가 스데반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스데반을 특정하지 않아 혹시 모를 종교적인 논란을 피하지 않았나 싶다. 예루살렘 대신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택한 이유도 동일하다. 스데반의 순교지가 아닌 곳을 죽음의 장소로 골랐지만, 카파도키아는 초기 기독교 교회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산 대표적인 성스러운장소의 하나이다. 영화 속 순교자는 스데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초기 기독교 교회의 순교자임이 분명히 선언된다.

연도와 장소를 살짝 어긋나게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의 이미지를 강하게 부여했다. 영화에서 다루는 성물의 성스러움을 극대화하되, 역사적 사건과 어긋나게 함으로써 종교영화가 아님을 확언하였다고나 할까. 어쨌든 극중에서 성물로 적시된 작은 돌덩이에 왜 그리 난리법석을 피웠는지를 설득하는 데는 맨 앞 장면이 유효했다. 이미 말했듯, 예기치 않은 불경죄도 회피했다.

 

순교 장면은 그렇다 치고, 성물과 관련한 필그리미지의 시기를 1209년으로 못 박은 까닭이 궁금해진다. 십자군전쟁은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걸쳐 전개되었고 모두 8회의 원정이 있었다. 8회 원정 가운데 가장 최악의 원정으로 꼽히는 게 제4차 십자군 원정이다. 4차 십자군 원정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재위 1198~1216)1202년에 원정을 승인하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원정은 교황의 의도와 달리 꼬이다가 유례없는 일탈로 귀결한다. 애초 교황은 영국프랑스독일을 끌어들여 이집트를 공략할 계획이었으나, 실제 교황의 부름에 응한 것은 프랑스 북부의 기사들뿐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적은 인원이 베네치아에 모인데다 이들의 원정이 가능하려면 베네치아에 원정대의 수송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예상 인원의 대략 3분의1 정도가 모였기에 참가자들이 내기로 한 원정분담금의 총액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이들은 베네치아에 천문학적 빚을 지게 된다.

떠날 수도 없고 떠나지 않을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에 빠진 4차 십자군 원정대에게 베네치아는 기이한 제안을 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 엔리코 단돌로는 원래 베네치아의 식민지였으나 독립하여 당시 헝가리의 보호 하에 있던 자라라는 도시를 탈환해 주면 빚의 상환을 갚을 능력이 생길 때까지 유예해 주겠다고 한다. 문제는 이 도시가 기독교 도시라는 것.

종교적 열정 없이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원정대는 베네치아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여 자라를 점령했다. 십자군 원정대가 기독교 도시를 점령한 황망한 사태에 교황은 격노하여 십자군 전체를 파문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교황에게 파문당한 십자군 원정대라는 형용모순의 군사조직이 출현한다.

기이하고 막가파에 가까운 특이한 군사집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제국을 공격하였다. 이들은 수개월에 걸친 격전 끝에 1204412일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였다. 이 때 콘스탄티노플은 대대적으로 약탈된다. 기독교가 기독교를 공격하고 약탈한 4차 십자군 원정대는 십자가를 앞세운 비적집단으로 역사에 남겨진다. 이 영화에서 실명이 언급되지 않은 채 거론되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이들로부터 보물과 성물을 받고 이들을 용서함으로써 제4차 십자군 원정의 백미를 장식한다. 4차 십자군 원정은 가장 반()기독교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수치스럽게 남았다.

 

역사로부터 파악되는 극중 캐릭터

극중 주요 배역 가운데 두 사람이 제4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인물로 그려진다. 적대관계를 형성하는 두 사람의 극중 캐릭터 또한 상반되게 그려진다. 영주의 아들 레이몬드(리처드 아미티지 분)는 앞서 살펴본 제4차 십자군 원정대의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역사를 모르면 그가 왜 전형적인 인물인지 알아챌 수 없다.) 십자가 앞에 무릎 꿇지만 신심이 전혀 없으며 정치적으로 종교를 이용하고 온갖 권모술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벙어리수도사는 오지의 수도원에서 묵언수행하며 과거를 참회하는 인물이다. 아마도 제4차 십자군 원정의 경험을 수치로 각인한 듯하다. 그의 등에 커다랗게 새겨진 십자가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대미에서 그가 유일하게 내뱉은 한 마디는 지옥이었다. 삶에서 이미 지옥을 경험한 사람에게 죽음이 두려울 리는 없지 않을까. 강인하지만 탐욕스럽지 않고 신앙을 잃었지만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는 가장 매혹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영화에서 대립구도는 레이몬드 대 벙어리외에 레이몬드 대 제랄도가 뚜렷하다. 제랄도는 맹신자로 그려진다. 자신이 믿는 신앙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버지까지 고발하여 죽게 만들 정도의 근본주의자이다. 성물을 로마로 가져가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교황파인 제랄도에 맞서 레이몬드는 세속의 왕을 지지하며 영주로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자 한다. 중세의 정치적 두 축인 교황과 황제(혹은 세속 권력)를 두 사람은 대변한다. 성물을 탈취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레이몬드는 제랄도와 (방향이 바뀐) 완벽한 닮음꼴이다.

제랄도 대 디아뮈드의 구도는 적대 아닌 적대를 형성한다. , 인간, 성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두 사람은 같은 기독교인이면서 정반대이다. 진영논리로는 같은 진영에 속했다고 할 수 있지만 내용상으로 새로 진영을 나누면 제랄도는 디아뮈드와 한 편이 아니라 레이몬드와 한 편이다. 당연히 디아뮈드와 벙어리가 한 편이 된다. 디아뮈드와 벙어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진영에 머무는데, 그것은 간질간질한 브로맨스 같은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예의와 인간에 대한 예의가 다르지 않다는 존재론적 유대이다.

브랜단 뮬다우니 감독이 대서사 액션 어드벤처로 장르를 표기한 이 영화에서 추구한 것은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물론 그저 흥미로운 액션 어드벤처 역사물로 읽어도 큰 문제는 없다.

사실(史實) 또는 고증과 관련하여 남은 의문은 제랄도 외 다른 수도사들의 머리 모양이었다. 제랄도의 머리 모양은 20세기까지 이어진 로만 가톨릭 사제의 전통적인 머리 형태였다. 흔히 베드로 형태로 알려진 로만 가톨릭 헤어스타일이 영화 속에 등장한 많은 수도사 가운데서 유독 제랄도에게만 적용된 까닭은 무엇일까.

성물이 보관된 아일랜드의 수도원은 이른바 켈트수도원으로 알려진 곳으로 켈트 기독교 영성의 전통이 강하다. 극중에 애니미즘 요소를 살짝 끼워넣은 데는 아마도 제작진에게 켈트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한데 아일랜드 수도원에서 켈트 영성을 상징하듯 게일어를 쓰게 하면서 수도사들의 머리모양은 왜 현대인처럼 그려냈을까.

원래 켈트 수도사의 삭발한 머리모양은 로만 가톨릭 수도사와 달라 변발에 가까웠다. 그러나 영화가 다루는 13세기 초가 되면 로만 가톨릭에 편입되기 때문에 추측컨대 켈트적인 머리모양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일랜드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제랄도처럼 로만 가톨릭 수도사 머리모양을 할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이 부분은 고증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제작진은 교황제에 복속된 관료주의적 성직자로 구별하기 위해 제랄도에게만 로만 가톨릭 사제 머리 모양을 적용하고, 디아뮈드 등에겐 시골뜨기 수도사의 머리모양을 하도록 하였지 싶다.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희망은 언제나 변방에서 발견되기 마련인가 보다. 성물의 향방은 스포 예방 차원에서 밝히지 않지만, 내 생각엔 가야할 곳으로 갔다.

11일 개봉.

 

글: 안치용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장으로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한다. 지속가능성과 CSR을 주제로 사회활동을 병행하며 같은 주제로 청소년·대학생들과 소통·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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