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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의 '벼랑 끝 전술', 이번에는 안먹히나
박삼구의 '벼랑 끝 전술', 이번에는 안먹히나
  • 정초원 기자
  • 승인 2019.04.11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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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금호 측 자구계획에 "부정적" 결론
시장에선 오너가 퇴출·매각 가능성까지 거론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금호아시아나 본사. 사진/뉴스1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 사진/뉴스1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이 이번에는 먹혀들지 않았다. 금호 측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아시아나항공을 경영정상화시키지 못하면 회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채권단은 실질적 대책 없이 과도한 지원만 바라는 무의미한 자구안이라고 결론내렸다. 금융당국 수장까지 금호 측의 자구계획에 작심하고 날을 세운 터라, 시장에서는 오너 일가의 퇴출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11일 아시아나항공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에 따르면 전날 채권단 회의에서 채권은행들은 금호 측이 제시한 자구계획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채권단은 사재 출연 또는 유상증자 등 실질적 방안이 없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또 자구계획 아래 금호 측이 요청한 5000억원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시장 조달의 불확실성으로 향후 채권단의 추가 자금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채권은행의 의견을 종합하면, 금호 측의 자구계획은 그럴싸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오너 일가의 희생은 크지 않은 '면피용 자구안'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실제로 앞서 공개된 금호 측의 자구안은 얼핏 오너 일가가 '배수의 진'을 친듯한 인상을 줬다. 우선 3년 내 아시아나항공이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면 채권단의 결정 아래 회사를 매각해도 좋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박 전 회장 아내와 딸이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 전량과 이미 채권단에 담보로 잡힌 박 전 회장과 그의 아들 지분을 모두 담보로 내놓겠다는 약속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대신 아시아나항공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000억원을 지원해달라는 게 금호 측의 요구였다. 

하지만 시장과 채권단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우선 박 전 회장 부자가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공언한 금호고속 지분 42.7%는 과거 금호타이어 관련 대출을 목적으로 산업은행에 담보로 잡혀있는데, 만기가 2023년이라 당장 유의미한 지분은 아니다. 사실상 오너 일가가 내놓는 지분은 박 전 회장의 부인과 딸이 보유한 4.8%에 불과한데, 그마저도 담보 형태인 만큼 완전히 내려놓은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시가 200억원에 해당하는 지분을 담보로 제시하며 5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해달라는 모양새인 셈이다.

자금 상환이나 수익성 확보 계획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도 채권단의 부정적인 반응을 끌어낸 요인이다. 금호 측은 그룹사 자산을 매각하고 항공 노선을 정리해 자금 상환과 수익성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채권단을 안심시키기에는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채권단 관계자는 "금호 측에 자구안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자구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미 시장에서 이번 자구계획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호 측이 요구하는 자금 규모도 과도하지만, 경영정상화까지 3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달라고 제시한 것도 무리수라는 분석이다. 금융당국 또한 금호 측의 자구안에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박 전 회장이)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퇴진하겠다고 했는데 또 다시 3년의 기회를 달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봐야한다"며 "과연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에 시간이 없었나. 30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었다"고 말했다. 

특히 최 위원장은 박 전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다짐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박 전 회장이 물러나면 그 아드님이 경영을 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두 분이 뭐가 다른가"라며 "채권단이 결정하는 기준은 대주주의 재기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이라는 회사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회사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오너 일가에게 더 이상 기회를 줘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런 발언의 배경에는 박 전 회장의 '벼랑 끝 전술'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박 전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룹이 어려움에 빠지자 경영에서 물러난 바 있다. 2009년 7월의 일이다. 당시에도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MOU)을 체결한 뒤 경영에서 손을 떼는 형태였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불과 15개월만인 2010년 10월 회장직으로 경영 일선에 다시 복귀했다. 최 위원장도 지난 3일 "박 전 회장이 한번 퇴진했다가 경영일선에 복귀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면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부정적인 반응이 역력히 드러나면서 시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채권단을 만족시킬만한 자구안을 추가로 제시하지 못하면 다른 대안은 없는 상황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결국 금호 측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불안이 워낙 크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타협할만한 여유도 없는 상황이다. 상반기 만기 도래를 앞둔 단기자금만 1000억원에 달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 매각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는 거론된 바 없다"면서도 "채권단 회의 분위기가 상당히 안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일단 금호 측 자구안에 회의적인 입장을 전달했으니 그쪽에서 추가적인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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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원 기자 chowon616@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