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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이 표리부동한 관음증의 세계-<완벽한 타인>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이 표리부동한 관음증의 세계-<완벽한 타인>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19.04.22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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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없는 삶은 가능할까? 10년 전쯤에는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성인들에게 스마트폰이 없는 삶은 불가능에 가깝다. 스마트폰은 2007년에 처음 등장한 최신 전자제품이면서도 이제는 생활필수품의 차원을 넘어 ‘생존 필수품’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휴대전화와 퍼스널컴퓨터가 결합된 이 직사각형의 단말기는 담배나 커피 같은 기호품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완벽한 타인>(2018)은 꽤 시의적절한 작품이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스마트폰을 통해 현대인의 숨은 욕망과 부조리한 현실을 유쾌하면서도 서늘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대성에 대해 논의할 때면 정치적, 사회적 사건에 집중하기 쉽다. 역사의 방향을 바꾼 대형 사건을 다루면 영화 외적인 반향도 크다. <완벽한 타인>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대다수 작품에서 소품으로 소비되는 스마트폰을 영화의 핵심 소재로 활용해 현대 한국 사회의 일면을 그려낸다. <완벽한 타인>만큼 특정 사물이나 기기가 서사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영화는 드물다. 무표정한 직사각형의 단말기를 활용해서, 발랄한 상상력으로, 현대인의 표리부동한 관계 맺기 방식과 관음증이라는 보편적인 욕망을 형상화한 점도 <완벽한 타인>의 특징이다.

이 영화의 인물과 서사는 간결하다. 주인공은 속초에서 함께 성장한 40대 후반 죽마고우들이다. 그들은 세 쌍의 중산층 부부와 한 명의 미혼 남자로 구성돼 있다. 영화의 서사는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이 모임 도중에 걸려오는 모든 전화, 문자 등을 공유하자는 긴급 제안에서 시작된다. 이 제안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폭력적이다. 아무도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 제안을 반대하면 어떻게 될까? 그는 떳떳하지 못한 비밀을 가진 것을 자백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인물들은 이 제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다른 친구의 사생활을 엿보고자 하는 욕망도 한몫 거든다.

 

<완벽한 타인>의 서사는 두 줄기로 전개된다. 먼저 모임 참가자들이 먹고 마시면서 일상생활의 에피소드를 주고받는 것이다. 성형외과를 개원했다거나 투자를 권유하는 내용들이다. 두 번째는 불특정 인물에게서 걸려온 통화, 문자로 인해 발생하는 에피소드이다. 물론 서사의 핵심은 후자에 있다. 이 게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공격과 수비가 수시로 뒤바뀐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전화나 문자가 오는 순서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불확실성이 게임의 긴장감을 높여준다.

그런데 <완벽한 타인>은 표면에 드러난 긴장감으로 관객을 유인하는 영화가 아니다. 현대인의 관계 맺기 방식에 관한 성찰이다. 이는 모임 참가자들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다. 남성 인물들은 40년을 함께한 죽마고우이며, 부부간 교류도 활발하다. 즉, 각 인물은 서로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영화는 이 작은 틈을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간다. 그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비밀이 있다. 그리고 수십 미터 지하 동굴에 숨겨놓았던 그들의 비밀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식탁 위로 소환된다. 그 비밀의 내용은 부잡스럽다. 여직원과의 불륜, 엄마와 딸의 갈등, 특이한 성적 취향, 장인 흉보기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인물들은 갑자기 표리부동한 세계의 일원이 되고, 다른 인물들에게 서로 배신감을 느낀다. 이 배신감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피아를 구분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된다.

 

<완벽한 타인>은 이처럼 현대인의 관계 맺기 방식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완벽한 타인>의 친구들은 아날로그적이다. 정기모임을 갖고, 서로 부모님 안부를 묻는다. 그러한 40년 친구들마저 ‘스마트톤 게임’으로 인해 순식간에 낯선 타인이 된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의 영토 안에서 사무적으로 혹은 반강제적으로 만나는 타인들의 관계는 어떨까? SNS를 통해 타인의 일상과 행적을 공유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완벽한 타인>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어둔 채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당신의 인간관계는 안녕한지를 묻는다.

<완벽한 타인>은 관음증의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영화는 관음증의 의미를 탐색하되, 전형적인 관음증의 구조를 현대적으로 변형한다. <완벽한 타인>에서 인물들은 자의반타의반으로 참가한 스마트폰 게임을 통해서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본다. 일반적으로 관음증은 시각과 관련돼 있다. 또 빛과 어둠의 대비, 비밀스러운 훔쳐보기가 주요 특징이다. <완벽한 타인>에서는 스마트폰이 관음증의 매개체가 되며, 엿보기는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진다. 영화의 공간 배경은 다수의, 다수에 의한 관음증 전시장이 되는 셈이다. 인물들이 상호 합의하에 자신의 삶을 공개하고 동시에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관음증과 관련된 사건은 분절적이다. 관음증의 주체와 대상이 수시로 바뀌고, 그때마다 다른 사건이 불쑥 끼어든다. 그래서 특정 사건의 결말이 매듭지어지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즉 <완벽한 타인>에서는 누구나 관음의 주체가 되며, 동시에 그는 관음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게임의 형식 자체가 주체/대상의 가변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일종의 원탁회의에 비유할 수 있다. 이는 <이창>이나 <타인의 삶>, <나쁜 남자> 등에 나타난 주체와 대상의 수직적, 일방적 관계와 차별화되는 특징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관음증은 엿보는 주체와 대상이 고정돼 있다. 어둠 속에서 엿보는 자는 권력자이며, 엿보기의 대상은 여성이나 범죄자인 경우가 많다. 반면 <완벽한 타인> 속 관음증의 주체와 대상은 상호적, 수평적이다. 그래서 인물들은 ‘시선의 권력’에 종속돼 있지 않으며, 그들의 엿보기는 놀이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인물들의 갈등이 쉽게 봉합되는 이유다(인물들이 평소 친밀한 관계인 것도 그 배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이 유희에 동참할 수 있다.

<완벽한 타인>의 이러한 특징은 플롯으로 연결된다. 영화는 ‘현실-상상-현실’의 구조로 되어 있다. 식탁 위의 엿보기 놀이는 관음증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상상의 결과이다. 이때 영화 속 사건들이 누구의 상상인지 명확하지 않다. 거꾸로 말하면, 영화의 에피소드는 참가자 모두의 결핍과 욕망의 결과물일 수 있다. 실제로 영화는 결말에서 각 인물들이 일상으로 편안하게 복귀하는 과정을 차례로 보여준다. 이를 확장하면, 영화의 상상 속 사건들은 우리 모두의 욕망일 수 있다. 따라서 <완벽한 타인>은 스마트폰이라는 현대 문명의 이기와 관음증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결합한 작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너무나 친숙해 지나치기 쉬운 소품을 활용해 인간의 숨은 욕망을 햇빛 아래에 펼쳐놓은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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