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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칼럼] 기초과학의 괄목할 성과
[차기태의 경제칼럼] 기초과학의 괄목할 성과
  • 차기태
  • 승인 2019.04.25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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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우주에서 블랙홀을 직접 관측하는데 성공했다. 공개된 블랙홀 화면을 보면 그 자체로 신비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빛조차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은 지금까지 이론 또는 상상 속에만 존재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처녀자리 은하단 가운데 있는 M87은하에서 블랙홀을 직접 관측하고 영상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이번 개가는 전세계 전파망원경 8개를 연결하는 사건지평선망원경(EHT)를 통해 성취됐다. 말하자면 지구 전체를 하나의 망원경처럼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전세계 13개 연구기관의 연구자 200여명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도 8명의 연구원이 참가해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니 경하할 일이다.

 

블랙홀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의 기초과학계에서 눈부신 발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이 강원도 정선군 한덕철광산업의 광산에서 우주 입자연구시설(ARF) 1단계 터널 공사를 착공했다. 지하 1100깊은 곳에 오는 2020년 완공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우주 암흑물질을 규명하고 '유령 입자'로 불리는 중성미자(neutrino)를 검출하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잡음 없는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세계 연구자들이 땅 속을 파고든다. 한국에서도 한적한 지역에 있는 광산이 마침 좋은 입지를 마련해 줬다. 광물채굴을 위해 파들어간 광산이 이처럼 기초과학 연구시설로 거듭나는 것이다.

 

국제 인공태양핵심 부품 중 하나가 개발된 것도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 국가핵융합연구소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한국사업단은 지난달 국제실험로 건설에 필요한 초전도자석 전원공급장치의 VS1 컨버터 첫 제품을 제작해 선적했다. 제품은 5월 초 프랑스 남부 카다라쉬 건설현장에 도착한다.

 

이번에 개발된 컨버터는 ITER와 같은 토카막형 자기밀폐형 핵융합 장치에 필요한 부품이다. 시스템의 각 부분에 전류를 공급해 핵융합 플라즈마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장치라고 한다. 특히 전기 과부하 등 사고가 발생해도 1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가 유지되는 핵융합로를 보호한다.

 

기초과학의 잇단 성과는 관련 연구소의 연구진과 기업 임직원들이 각고의 노력을 보였기에 얻어진 것이다. 당장 거두는 실용적인 이익이야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기초연구를 착실하게 진행해 가는 과정에서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되고, 그 기술은 관련 산업에도 전달돼 함께 발전하게 된다. 그렇기에 장기적인 국가발전을 위해 더 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자재를 제작하는 데는 주로 중소기업들이 참여해 왔다. 대기업 단위의 소품종 대량생산보다는 다양한 규격과 특성을 갖는 기자재를 생산하는 데 중소기업이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국 중소기업의 역량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ITER용 핵융합 부품을 만드는데도 다원시스라는 코스닥 상장기업이 참여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이지만, 고난도의 부품을 국제적 요구에 맞게 만들어냈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기업일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기업들이 늘어나고 역량이 축적되는 만큼 국가 산업경쟁력도 탄탄해진다.

 

연구를 맡은 기관과 연구자들도 협력기업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대기업에서 흔히 저지르는 갑질등등의 구설수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력기업이 건실하고 튼튼하게 발전해야 연구자의 땀방울도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또 그래야 국민들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성원과 갈채를 보낼 수 있다.

 

고대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로마의 축일>이라는 작품에서 하늘을 오르려고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읊었다. 천문학 연구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칭송한 것이다. 오늘날 그런 칭송은 천문학 뿐만 아니라 모든 기초과학 연구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헌신해온 사람들 덕분에 인류문명은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했다.

 

연구원들이 겪을 애환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기초학문의 성격상 피부로 느껴지는 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으니 보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때로는 짙은 고독감과 회의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지하에서 오랜 동안 연구하는 연구원들에게 모종의 직업병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정부는 연구자들의 이런 어려움까지 깊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마음 편하게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줘야 한다.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시설이 1차적으로 중요하다. 그렇지만 결국 연구는 연구원, 즉 인간이 하는 것이다.

차기태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편집장(eramus414@ilemonde.com)

* 뉴스토마토 424일자에도 게재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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