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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성년> ― 시선, 공간, 죽음의 성인식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성년> ― 시선, 공간, 죽음의 성인식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9.05.0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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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대 미성년의 세계

1980년대에는 학원과 과외 금지로 학교가 유일한 교육의 장이었고,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수다와 놀이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교과서만 열심히 봤다’는 수험생의 전형화된 혹은 거짓된 답변도 그 시기에는 참이 될 수 있었다. 내신의 비중이 크지 않아 대입 시험만 잘 치면 대학교에 갈 수 있는 시기여서, 공부는 고3 때 1년 동안 열심히 하면 되는 정도의 수준이었고 입시 지옥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는 영어유치원에서 시작해서 대치동 학원 혹은 유명한 재수학원까지 마무리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입시 지옥에서 보내야 한다. 시험공부뿐만 아니라 스펙과 봉사까지 챙겨야 한다는 점에서 아이의 대학교는 엄마의 정보력과 정성에 의해 좌우된다. 이런 의미에서 미성년은 권리도 없지만 의무도 없는 세대가 아니라, 공부 외에는 모든 것이 금지되는 세대가 된다.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미성년>(2018)은 바로 이러한 미성년을 다루며, 시선, 공간, 죽음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미성년과 성인의 세계를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주리(김혜준)가 아버지 대원(김윤석)과 내연녀 미희(김소진)의 불륜 관계를 알게 되고, 미희 딸 윤아(박세진)와의 갈등으로 엄마 영주(염정아)까지 알게 되면서 점차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게 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2. 미성년과 시선: 훔쳐보기, 회피하기, 마주하기

<미성년>은 세 인물의 시선 변화를 통해 인물의 심리 변화를 보여준다. 주리는 아버지 대원과 내연녀 미희의 불륜 현장을 훔쳐보고, 내연녀의 딸인 윤아와 시선이 마주치고, 미희의 조산으로 병원에 온 대원을 목격하고, 미희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선을 마주치고, 대원을 쳐다보고는 ‘이제 아빠 딸 안 해’라고 선언한다. 영주는 남편 대원의 외도를 눈치채지만 그를 지켜보고, 윤아의 불륜 폭로로 미희 가게를 방문해 미희를 훔쳐보고, 병원에 찾아가 미희와 시선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눈다. 대원은 불륜으로 아내와 각 방을 쓰지만 거짓말로 일관하며 시선을 피하고, 윤아가 보낸 문자로 미희와의 만남과 시선을 피하고, 아내가 알게 되자 닫힌 방문을 쳐다보며 미희와의 관계를 부정한다.

 

이렇듯 주리는 훔쳐보기에서 마주보기로, 영주는 회피하기에서 마주하기로 바뀌며, 이러한 시선 변화는 인물의 심리 변화를 보여준다. 두 인물의 시선 변화에 영향을 준 인물은 윤아이다. 윤아는 주리의 핸드폰을 빼앗아 영주에게 대원의 불륜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주리와 영주가 사건에 직접 개입하게 만든다. 또 윤아는 미희의 핸드폰으로 대원에게 ‘당신이 바람 피는 거 세상이 다 알아’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대원이 사회의 시선을 인식하게끔 만든다. 윤아의 직접적인 폭로로 주리 가족 세 사람은 은폐하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 이때 주리는 문제를 직시하고 직접적으로 해결하고자 하고, 엄마는 이혼을 결심하다가 내연녀와 남편을 포용하고자 노력하고, 아버지는 문제를 회피하다가 내연녀와의 관계를 부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에서 미성년의 시선은 부도덕하고 가식적이고 비겁한 성년의 세계를 직시한다.

 

영화에서 쓴웃음을 짓게 하는 장면은 윤아가 ‘아빠’라고 부르며 대원을 쫓아가는 부분이다. 주리와 윤아가 병원에 온 대원을 보고 부르지만, 딸 주리를 본 대원이 도망치고, 주리는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눈물을 흘리며, 윤아는 계속해서 대원을 쫓아간다. 대원은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에 계속해서 도망치다가, 윤아를 발견하고는 ‘너 누구니?’라며 당황하고, 윤아와 함께 병원에 와서 미희를 방문하지만, 미희와 대화하지 않고 아기도 보지 않고 가버린다. ‘아빠’라고 부르는 말은 불륜으로 가정을 불행으로 내모는 주리 아버지의 부도덕성, 도박으로 경제적 궁핍으로 내모는 윤아 아버지의 부재, 내연녀의 딸인 윤아를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무책임, 출산으로 태어난 아기를 보지 않고 도망가는 못난이 아버지의 비겁함 등에 대한 비판을 함께 담고 있다. 윤아가 부르는 ‘아빠’라는 말은 네 아빠를 모두 호명하며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상기시켜 주지만, 호명된 아빠들은 자신의 가정을 버리고 달아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성년>은 시선과 뒷모습을 통해 인물과 관계의 변화를 형상화한다. 영화는 훔쳐보기, 회피하기, 부인하기, 마주하기 등 다양한 시선을 보여준다. 이때 여성의 시선은 훔쳐보는 시선에서 마주보는 시선으로 변하는 반면, 남성의 시선은 계속해서 외면하는 시선만을 보여준다. 영주-주리 모녀는 전반부에서 훔쳐보는 시선으로 문제를 은폐하고 가정을 유지하려는 순응적 태도를 보이지만, 중반부에서는 윤아의 폭로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고자 하며, 후반부에는 미희-윤아 모녀를 마주보는 시선으로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이해와 공감을 나타낸다. 대원은 전반부에서는 아내의 시선을 외면하고, 중반부에서는 딸의 시선을 외면하고, 후반부에서는 내연녀의 시선을 외면한다. 이때 외면하는 대원의 뒷모습은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적극적이지만 자신의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그의 비겁한 면모를 드러낸다.

 

3. 미성년과 공간: 분리, 일탈, 교차

<미성년>은 공간의 분리, 일탈, 교차를 단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공간으로 나누어진 사회의 규범에 대한 인물의 변화를 보여준다. 우선, 분리된 공간의 순환을 통해 자신의 공간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는 인물을 보여준다. 모범생 주리는 집, 학교, 학원을 순환한다. 수험생 주리에게 있어서 집은 휴식과 수면의 공간이고, 학교는 내신을 따기 위한 공간이고, 학원은 실질적인 공부를 하는 공간이다. 현모양처 영주도 집, 성당을 순환한다. 전업주부 영주에게 있어서 집은 가족을 위해서 가사와 육아에 매진하고 좋은 촉으로 투자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장만해야 하는 공간이고, 성당은 힘겨운 딸, 거부하는 남편, 불안한 자신으로 인한 감정의 배설물을 쏟아내는 공간이다.

 

다음으로, 공간의 일탈을 통해 자신이 맡은 역할과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인물을 보여준다. 모범생 주리는 문제아 윤아와의 만남으로 인해 공부만을 위해 순환하던 자신의 공간을 일탈한다. 주리는 학원을 빠지고 미희 가게로 가서 아버지와 미희의 만남을 목격하고, 학교 옥상으로 가서 윤아를 만나고, 시험시간에 학교를 나와 놀이공원으로 간다. 학교는 공부를 위한 공간인 교실과 일탈을 위한 공간인 옥상으로 나뉜다. 주리는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는 줄을 넘어 학생들의 금지공간인 옥상으로 들어가고, 윤아와의 몸싸움으로 인해 창문, 교실문 등의 기물을 파손하고, 자신과 윤아의 남동생인 아기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시험을 거부한다. 이때 폭행과 기물파손의 잘못을 저지른 주리와 윤아에 대해서, 학교는 모범생은 잘못을 저질러도 학교의 평가를 위해서 품고 가려하고, 문제아는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추방해야 할 존재로 규정한다.

영주도 남편의 불륜 사실을 눈치 챘지만 외면하다가, 윤아의 폭로 전화로 인해 자신이 머물던 공간에서 나와서, 비로소 자신이 처한 문제를 직시하게 된다. 영주는 남편의 내연녀인 미희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가고, 피를 흘리는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병원에 방문해서 아기를 잃은 그녀에게 전복죽을 갖다 준다. 집, 학교, 편의점을 순환하던 윤아도 엄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를 빠지고 아버지를 찾아 지방으로 내려가고, 엄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을 그만둬 퇴직금을 받는다. 집, 직장, 가게를 순환하던 대원도 불륜 사실을 들키자 바닷가로 가지만, 이때의 공간 일탈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간의 교차를 통한 만남으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주리는 병원에 가서 윤아 엄마인 미희를 만나고, 윤아는 주리집에 가서 주리 엄마인 영주를 만난다. 미희는 주리에게 과자를 달라고 하고, 반말하며 간섭하는 옆 침대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윤아가 자기 닮아서 친구가 없다’고 주리에게 말하고, 학교 빠지지 말라며 윤아에게 화를 낸다. 이에 주리는 ‘왜 아줌마가 화를 내요? 뭘 잘했다고.’라며 미희의 부도덕성을 비판한다. 한편, 영주는 자신에게 병원비를 건네기 위해 온 윤아를 집에 초대하고, 윤아에게 ‘너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이니까 흔들리면 안돼’라고 충고하자, 윤아는 영주에게 ‘주리 걱정이나 하세요’라며 영주의 비현실적인 배려를 지적한다. 윤아는 눈물을 흘리는 영주에게 휴지를 건네며, ‘내가 엄마를 닮아서 말을 막 해요.’라며 사과한다.

이렇듯 철없는 엄마 미희를 만난 주리와 착한 여자 콤플렉스의 영주를 만난 윤아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때 미희-윤아 모녀는 영주-주리 모녀에게 자신이 친구가 없고 말을 막 하는 점을 사과하고, 화나면 자신을 한 대 치고 끝내라고 똑같은 말을 한다. 영주 모녀는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완벽한 자신들의 가정이 불륜을 저지른 대원과 임신한 미희로 인해 지옥처럼 변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미희 모녀는 도벽에 걸린 남편이 집의 재산을 탕진하고 돈을 훔쳐 달아남으로써, 경제적인 고통으로 인한 힘겨운 삶으로 낮은 자존감과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주리와 윤아는 이러한 공간의 교차를 통해 입시 정보를 주고받는 수험생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아픔과 괴로움을 알고 이해하는 친구의 관계를 맺게 된다.

 

<미성년>은 클로즈업과 거울의 이미지를 통해 공간의 일탈과 교차를 강조하고 있다. 우선, 주리가 옥상으로 가는 장면에서, ‘출입금지’ 팻말과 넘어가는 주리의 발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줌으로써 주리의 일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암시한다. 주리와 윤아가 몸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비웃는 윤아, 윤아의 머리채를 잡는 주리, 깨지는 유리창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는 한편, 교실문을 부수며 그 위에서 함께 뒹구는 두 사람과 그들을 에워싸고 구경하는 아이들을 롱숏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극단적으로 치닫는 주리와 윤아의 갈등, 창문과 교실문을 부수는 행위를 통한 두 사람의 일탈, 아이들과 동떨어져 비밀을 공유한 두 사람의 유대감 암시를 동시에 보여준다.

다음으로, 영주가 자신의 집을 나가는 윤아를 쳐다보는 장면에서, 맞은 편 거울에 비치는 영주 자신의 얼굴과 현관문으로 나가는 윤아의 뒷모습을 동시에 화면에 담아낸다. 영화에서 보통 거울 이미지는 자아의 정체성, 분열 등을 의미한다. 이 장면에서 영주는 남편의 불륜 문제를 덮고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응시하게 되면서 자신의 문제와 한계를 자각하게 되는 한편, 병원비를 건네고 돌아가는 윤아의 뒷모습을 통해 내연녀 가정에 닥친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도 인식하게 되면서, 불륜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두 가정을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4. 미성년과 죽음: 죽음의 기억, 망각, 공유

<미성년>에서 아기의 죽음은 미성년과 성년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기억, 망각, 공유의 차이를 보여준다. 장례절차는 기억이자 망각이다. 장례식은 망자를 특정한 공간, 특정한 시기에 한정해서 애도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간, 대부분의 시기에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망각하기 위한 기억의 행위이다. 부모인 대원과 미희는 불륜의 증거이자 곧 죽을 운명이라는 점에서 아기의 얼굴을 보지 않고 처음부터 망각하고자 한다. 그리고 부모는 아기가 죽자 병원과 상조회에 아기의 시체를 맡기고 장례절차도 치르지 않는다.

 

반면에, 누나인 주리와 윤아는 출산 전에는 죽기를 바라며 기도하거나 임신한 배를 차려고 했으나, 출산 후에는 남동생 아기를 보고 정을 느끼며 잘 이겨내도록 격려한다. 누나들은 아기의 죽음을 알고는 고통스러워하고, 아이스박스에 담긴 아기 시체를 받아 오고, 아기의 유골함을 가지고 장례절차를 치러주고자 한다. 누나들은 놀이공원에 가서 죽은 아기의 유골을 초코우유와 딸기우유에 넣어 먹음으로써 몸을 공유하며 영원히 기억하고자 한다. 놀이공원은 주리 가족에게는 추억의 공간이고, 대원과 미희에게는 불륜의 공간이고, 아기에게는 자신의 탄생 배경이 되는 공간이고, 주리와 윤아에게는 학교라는 시스템을 일탈하는 공간이고, 아기에게는 장례식이자 누나와의 합일의 공간이다. 

 

장례의식은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무덤, 납골당, 수장은 어떤 특정한 공간에 망자를 배치하는 의식이며, 그 공간에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그 사람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장치이다. 다음으로, 유골 재를 자연에 뿌리는 방식은 망자가 평소에 좋아했던 장소에 배치하는 의식이며, 그 사람의 육체적인 형태는 없지만 추억과 기억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두 가지 모두 망자와 특정한 공간을 연결시키는 의식이다. 마지막으로, 망자의 몸을 나눠 먹음으로써 망자의 영혼과 육체를 영원히 기억하려는 의식이다. 식인행위인 카니발리즘의 일종으로 자신이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망자인 경우 육체를 먹음으로써 자신의 몸에 영혼도 함께 간직하고자 한다. 

 

영화 속에서 주리와 윤아도 아기의 유골 가루를 먹음으로써 영원히 기억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장례절차가 망자를 위한 죽음의 공간과 산자를 위한 삶의 공간을 나누고자 하는 반면에, 주리와 윤아의 이 의식은 자신의 몸이 존재하는 한 망자와 항상 함께 하며 기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주리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리는 윤아에게 자신의 아버지와 윤아 엄마의 불륜 관계를 끝내고 ‘없던 일로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며 망각을 이야기한다. 이에 윤아는 갑자기 주리의 입에 키스하고는 ‘없던 일로 하면 되잖아.’라는 말을 되돌려주며 상처받은 기억이 망각되기 힘듦을 이야기한다. 주리는 자신의 입에 난 상처를 만지면서 결코 잊지 못하게 된 기억을 되새긴다. 나중에 주리는 윤아에게 자신이 암기 과목에 약하지만 안 까먹는 방법을 안다며 우유에 유골 가루를 섞어 먹는 것을 제안한다. 주리는 윤아의 영향으로 힘겨운 문제와 죽음의 아픔에 대해서 망각에서 기억으로 나아간다.

 

<미성년>에서 죽음은 더블링과 클로즈업으로 형상화된다. 우선, 초코우유와 딸기우유의 더블링은 반복되지만 우정의 공유에서 죽음의 공유로 의미가 변화한다. 주리는 전반부에 반친구에게 초코우유와 딸기유유 중 고르게 하고, 후반부에 윤아에게 초코우유와 딸기우유 중 고르게 해서 유골가루를 넣어준다. 다음으로, 주리와 윤아가 놀이공원에 가서 노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벗어 놓은 신발을 클로즈업함으로써 학교라는 공간과 시스템에서 일탈하여, 시험보다는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려는 주리의 변화된 모습을 강조한다. 그리고, 피의 이미지는 희생제의를 형상화한다. 영주가 밀쳐 넘어진 미희의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 자동차 시트에 흥건히 젖은 피, 미희 가게 종이가방에 여전히 남아 있는 피 등 피의 이미지는 불륜으로 태어난 아기를 희생양으로 바치는 의식을 형상화한다.

마지막으로, 아기, 아기 양말, 모유에 대한 클로즈업을 통해 공간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인물과 사물을 형상화한다. 불륜의 증거로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난 미숙아, 신겨 보지 못하고 남게 된 아기 양말, 아기에게 먹이지 못하고 병원복을 적시는 모유 등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공간을 떠도는 인물과 사물을 통해 죽음으로 인한 아픔을 표현한다. 특히 미희의 병원복을 적시는 모유는 정신적으로는 망각하고자 애쓰지만 육체적으로는 끊임없이 기억해내는 엄마 미희의 분열된 이중성을 보여준다.

 

5.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

<미성년>은 이분화된 미성년의 세계와 성인의 세계에 대해서 시선, 공간, 죽음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두 세계가 뒤섞이게 만든다. 첫째, 시선에서는 일방향의 시선에서 쌍방향의 시선으로, 훔쳐보는 시선에서 마주보는 시선으로 변화하며, 자신의 문제에 대한 회피에서 응시로 변화하는 인물을 보여준다. 둘째, 공간에서는 획일화된 공간의 분리에서 일탈과 교차로 나아가며, 인물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공감으로 나아간다. 셋째, 죽음에서는 죽음의 시기와 공간에 대해 한정함으로써 망각으로 나아가는 장례절차를 거부하고, 자신의 몸과의 합일을 통해 기억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영화는 미성년의 시선으로 가족, 학교,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미성년은 의무도 없고 권리도 없으며, 미성년이라는 말 속에는 아직 성년이 되지 못했다는 뜻에서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의미를 함축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성년은 부도덕하고 무책임하고 비겁한 반면, 미성년은 주체적이고 인간적이고 원숙한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기존의 미성년과 성년의 범주를 뒤집는다.

감독이자 주연을 맡은 김윤석은 영화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상황이 버거워지자 도망치는 비겁한 행동으로 인간의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원을 연기한다. 자신이 연기한 대원이 딸을 보자마자 거꾸로 내려가는 장면, 딸을 피해 언덕 계단까지 도망치는 장면에서 부도덕하고 혐오스러운 인물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지 않는 감독 김윤석은 솔직한 연출이 돋보인다. 한편, 영주는 자신을 배신하고 무시한 대원과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내연관계를 맺은 미희를 모두 포용하는 착한 인물이지만, 내면적인 분노, 고통과 외면적인 희생, 관용이 불일치를 보이며 가부장적 체제에 회귀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신세대가 싫어할 만한 여성 인물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주리와 윤아가 남동생의 유골 가루를 함께 나누어 먹는 장면은 일반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일 수 있다. 이런 점이 대중성에서 다소 불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20억이라는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학술출판분과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 , 『영화와 관계』 (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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