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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와병 5년, 이재용 총수 1년
이건희 와병 5년, 이재용 총수 1년
  • 김진양 기자
  • 승인 2019.05.08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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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해소·무노조 경영 폐지…국내외 경영 행보도 활발
문 대통령과 올해 5차례 만남...상고심 앞두고 코드맞추기 지적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오는 10일로 만 5년이 된다. 삼성전자 측에 따르면 이 회장은 자가 호흡은 가능하지만 여전히 의식은 없는 상태다. 그 사이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 승계도 빠르게 진행했다. 2015년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그룹 지배구조 재편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 약 1년간의 수감 생활도 했다. 

지난해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 부회장은 같은 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며 공식적으로 '이재용 시대'를 열었다. 이후 이 부회장은 순환출자고리 해소, 백혈병 보상 등 그간 삼성전자를 둘러싼 이슈들을 차례로 해결하며 총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올 들어서는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스킨십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상고심이 남아있는 이 부회장이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재용의 뉴 삼성, 묵은 이슈들 정면 돌파

이 부회장이 새 총수로서의 존재감을 처음으로 드러낸 것은 그룹의 해묵은 이슈인 순환출자고리 해소 움직임을 보였을 때다. 지난해 4월 삼성SDI는 보유 중이던 삼성물산 지분 전량(약 404만주)을 처분했다. 공정위의 권고 시점보다 4개월가량 빠른 결정이었다. 매각 방식도 장 마감 후 블록딜 방식을 취해 기관투자자들에게 넘겼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에서 출발하는 7개의 순환출자 고리 중 3개가 끊어졌다. 이후 삼성은 같은 해 9월에도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갖고 있던 삼성물산 지분을 모두 매각, 순환출자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2월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사진/뉴스1

비슷한 시기 삼성전자는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를 통해 협력업체 직원 8700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이들의 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보장하기로 했다. 그룹 창립 후 80년간 고수해 온 사실상의 무노조 경영을 폐기한 것이다. 

이 부회장의 출소 2개월여만에 이뤄진 일련의 결단에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정공법을 택했다"고 해석했다. 논란들을 정면 돌파 하는 방식을 통해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실추된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 부회장은 앞선 재판 과정에서 "앞으로 저희 사업장 외에 협력사까지도 작업 환경이나 사업환경을 챙기겠다", "회사의 리더가 되려면 사업에 대한 경영능력으로 인정받아야지, 지분 몇 퍼센트를 갖는 것은 의미가 없다" 는 등의 발언을 남긴 바 있다. 

논란들을 해결하려는 이 부회장의 행보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해 7월 삼성전자는 10년 이상 끌어온 반도체 백혈병 분쟁을 조정위원회의 강제 중재안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일단락 지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이행 협약식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 받았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드리지 못했다"라고 사과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며 "2028년까지 보상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포스트 반도체 찾기에도 주력

이 부회장은 사업 외 영역에서의 잡음들을 차근히 제거하는 동시에 회사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서도 분주히 움직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공지능(AI), 5G,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갈피를 못잡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중심으로 역량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향후 10여년간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점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비메모리 영역인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에서도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지난해 주로 해외를 돌며 다소 소극적인 행보를 걸었던 것과 달리 올 들어서는 국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 7월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과 8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평택사업장 방문,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등 세 차례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연초 청와대가 주최한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대외 행사에 자주 등장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해외 국빈이 방문했을 때에도 청와대 오찬에 동석, 경제 사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 4달여간 문 대통령과 만난 횟수만도 5번에 이른다. 또한 5G 네트워크 통신 장비 생산라인 가동식(수원사업장), EUV 공정 기반 7나노 AP 출하식(화성사업장) 등에도 함께해 임직원 사기 진작에도 힘을 보탰다.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찾아 출. 사진/청와대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7나노 AP 출하식에 참석했다. 사진/청와대

 

동시에 이 부회장은 대규모 투자 등으로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의 위상을 과시하면서 정부의 기대에도 부응했다. 지난해 8월 삼성전자는 180조원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 중 130조원을 국내에 투자하겠다며 이례적으로 국내외 투자 비중을 나눠 설명하기도 했다. 직접 채용 4만명을 포함한 70만명의 직간접 일자리 창출 계획도 함께 전했다. 지난해 10대 그룹이 발표한 중장기 투자 계획 중 삼성전자가 절반 가까이를 부담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 역량과 스타트업 지원 경험 등을 활용해 개방형 혁신 생태계 조성에도 앞장서겠다고 했다. 청년 취업 준비생에게 양질의 소프트웨어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와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는 취지다. 중소기업의 스마트 팩토리 전환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이 부회장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법원 상고심을 의식한 행동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참여연대 등은 지난 2일 "이 부회장이 경제 활력 제고라는 미명 아래 대통령을 직접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법부에 던지는 메시지가 작다고 할 수 없다"며 "재판 중인 기업 총수와 대통령의 만남 때마다 기업이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이들은 "지금은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경제민주화를 통한 체질 개선 등이 요구되는 시기"라며 "혹시라도 어떠한 '떡고물'을 바라고 투자를 하는 기업은 기업으로서의 본령을 잊은 것"이라고 일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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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기자 jy.kim0202@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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