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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반도체' 배터리, 내우외환에 시름
'제2의 반도체' 배터리, 내우외환에 시름
  • 김진양 기자
  • 승인 2019.05.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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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보조금 탈락에 업체간 소송까지

제2의 반도체로 꼽히는 2차전지(배터리) 업계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성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지만 대내외 장애물이 적지 않은 것.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는 또 한 번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획득에 고배를 마셨고, 국내 기업 간 인력·기술 유출 공방도 진행 중이다. 전기차 배터리 이외에 또 다른 성장축인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잇따른 화재에도 정부의 원인 규명이 늦어지면서 신규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2차전지 수출액은 6억35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4% 증가했다. 올 들어서만도 4개월째 두 자릿 수 대 증가율을 기록하며 31개월 연속 성장세를 나타냈다. 전기차 배터리, ESS 등 중대형 리튬이온전지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에 기인한 결과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배터리는 아직까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할 만큼 적지만 성장 잠재력은 크다. 시장조사기관 B3 등에 따르면 전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2017년 83억달러에서 2025년 586억달러까지 7배가량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ESS용 배터리는 2017년 15억달러에서 2025년 33억달러로 2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도 높은편이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업계를 대표하는 3사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액은 지난해 말 기준 110조원을 돌파했다. 한국의 대표 수출품인 반도체의 연간 수출 규모(141조원)에 육박한다. 지난 1분기를 기준으로 SK이노베이션이 1.9%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글로벌 톱10에 진입하면서 3사가 모두 상위 10개 기업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에 정부도 배터리를 5대 신수출 성장동력 품목으로 선정하고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지난해 참석한 배터리 관련 행사에서 "2차전지는 시장규모가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설 대표적인 고성장 신산업이자 신에너지 산업의 게임체인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 보조금 또 고배

하지만 배터리 산업이 성장하기에 난관도 적지 않다. 지난 2016년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으로 끊어진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중국 공업신식화부가 최근 발표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 리스트에 LG화학과 삼성SDI의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이 제외됐다. 

앞서 중국 정부는 이들의 배터리를 적용한 둥펑르노 전기차 4종과 충칭진캉 1종에 대해 보조금 지급 전 단계인 형식승인을 내줬지만 최종 단계에서 명단에 들지 못했다. 보조금이 1000만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보조금 수령 여부가 시장 경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중국 업체들은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등에 엎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대표 배터리 업체인 CATL은 1분기 23.8%의 점유율로 일본 파나소닉을 제치고 1위에 올랐고, BYD도 2배 이상 늘어난 15.3%의 점유율로 3위로 도약했다. 최근들어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축소되는 추세지만 자국 기업 보호 기조를 넘기는 어려울 것이란 신중론이 높은 상황이다. 

 

LG화학-SK이노, 기술 유출 소송 공방

갈 길이 먼데 국내 업체들끼리는 인력과 기술 유출에 대한 공방이 한창이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LG화학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LG화학은 ITC에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셀, 팩, 샘플 등의 미국 내 수입 전면 금지를 요청하고, 델라웨어 지방법원에는 영업비밀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델라웨어는 SK이노베이션 전지사업 미국 법인이 있는 곳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전지사업을 집중으로 육성하겠다던 2017년 이후 관련 핵심기술이 다량 유출된 구체적인 자료가 발견됐다"고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불과 2년 사이 LG화학으로부터 연구개발, 생산, 품질, 구매, 영업 등 전 직군에서 핵심인력 76명을 빼갔다는 것. 소송에 앞서 내용증명 등을 통해 수 차례 자제 요청을 했으나 영업비밀 유출이 계속되고 있어 법적 대응을 결정했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정당한 영업 활동"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력직 채용 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며 "경쟁사가 비신사적이고 근거도 없이 SK이노베이션을 깎아내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강력하고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두 회사간의 첨예한 대립 뒤에는 폭스바겐 배터리 수주전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델라웨어 지방법원이 최근 공개한 소장에 따르면 LG화학은 "폭스바겐의 미국 전기차 사업에서 SK이노베이션의 승리가 LG화학의 사업을 제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LG화학은 "영업비밀 침해로 수십억달러 규모의 폭스바겐 공급 계약을 비롯한 잠재 고객을 잃었다"며 "손실은 10억달러(약 1조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1월 폭스바겐의 전략적 배터리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이를 발판으로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에 생산 공장을 짓기로 결정, 2025년까지 연 2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한다. 

 

ESS 화재 조사 지연에 울상

전기차 배터리와 함께 2차전지의 유망 분야로 꼽히는 ESS는 정부의 더딘 대처에 속을 끓이고 있다. 산업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발생한 ESS 화재는 20건에 이른다. 정부의 권고로 전국 1490곳의 35%인 522개가 가동을 중단했다. 올 들어 ESS 신규 설치 발주는 한 건도 없다. 

정부는 다음달 초 안전대책과 가동중단 사업장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실제로 1분기 국내 주요 ESS 업체들의 실적은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SDI는 전분기대비 절반가량 줄어든 129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ESS사업이 포함된 중대형 전지 부문에서 국내 수요가 부진한 여파다. LS산전도 ESS 신규 수주 급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난 287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LG화학은 ESS 화재에 따른 일회성 비용 1200억원이 발생했다. 

정부가 8월 말까지 ESS 설치기준, KS표준, KC 인증 등 생산과 설치 전반에 대한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지침을 밝힌 데 대해서도 업계는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새로 강화되는 안전 기준에 맞춰 자재를 다시 준비하고 사업성을 재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올해 수주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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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기자 jy.kim0202@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