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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가난을 이겨낸 이름 <로제타>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가난을 이겨낸 이름 <로제타>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19.06.17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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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난속에서 태어났다

영화는 가난에 관한 것이다. 가난은 인간에게 가혹한 운명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운명의 파도를 잘 건너야 한다. 영화는 가난이 극복될 수 있는 거라고 말한다. 가난에 굴복하지 말고 끝까지 살겠다는 의지를 갖는 게 인간의 위대성을 보이는 대목이란 걸 영화는 보여준다.

처음 로제타는 직장에서 해고된다. 그녀는 저항한다. 그녀가 겪는 직장에서의 고통을 보여준다. 엄마는 알콜 중독자이다. 그녀는 엄마로부터 술병을 빼앗아 버린다. 가정에서의 고통이다. 친구는 자기 일을 대신한다. 친구가 들어오면 자기는 나가야 한다. 현대 사회는 잔혹하다. 인간관계에서의 고통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은 그녀에게 인간을 향한 한없는 동정을 베풀어주고, 마지막에 희망을 갖게 한다.

감독 다르덴은 가난 때문에 항상 비윤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철없는 어른은 철저히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영향 때문에 나타난다. <차일드>라는 영화에서 보여준 어른은 자신의 아이를 낳아준 여자의 집에서 기생하고, 심지어는 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아기마저 팔아버린다. 그게 어디 자기의 자식이기만 한가. 여자의 권리란 아예 관심조차 없다.

영화속에서 실직이 가장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선 인간의 투쟁이 그 주제이다. 인간은 절망에 놓일 때 그 숨겨진 신성이 발휘되는 법이다. 다르덴 감독의 장점은 그것이다. 인간의 내면 깊숙이에 들어앉은 신성을 끄집어내는 일. 그걸 힐링이라고 부른다.

 

소중한 나의 이름은 로제타

그녀는 독백한다. 자신의 이름과 직장과 친구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자아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소중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다. 자신감을 갖는 일이다. 가난을 이겨나가기 위해 믿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

로제타는 직장에서 다시 해고된다. 사장은 아들을 일 시키려고 부당하게 로제타를 해고한 것이다. 그녀는 필사적이 된다. 이 때 로제타는 저항하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어떠한 부당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고귀한 인간의 이성을 발견한다. 역경이 와야 인간의 이성을 알게 된다. 평시엔 알 수 없다.

사장 아들이 자기를 밀어낸 것은 로제타로 하여금 인생이 비정하다는 걸 알게 한 계기였다. 로제타는 생존을 위해서는 부도덕해질 수도 있음을 이해한다. 이윽고 살아남기 위해 로제타가 생각해 낸 건 와플 사기 적발이다. 친구의 약점을 잡아 사장에게 밀고하고, 그 점포를 뺏는 것이다. 인간은 극한에 몰리면 되면 뭐든 황당한 일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친구가 와플기계로 이윤을 취하는 것을 사장에게 밀고한다. 친구는 앙심을 품고 그녀를 계속 쫓아다닌다. 그녀는 피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움을 당한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해지려고 노력한다. 친구가 자신의 처지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의 처지만큼 가난하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로제타는 떳떳하고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 리케가 와플을 사 먹으러 온다. 로제타에겐 이 순간만큼 괴로운 순간이 없다. 피하고 싶지만 마주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리케는 로제타를 다시 쫓아온다. 그녀는 괴롭다.

집에서는 엄마가 술 취해 널부러져 있다. 로제타는 인생이 고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어떻게든 살고 싶어 악을 쓰는데, 기성세대는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자포자기 상태로 살면서 그녀를 실망시킨다. 가난이 힘들기도 하지만, 가족이 삶의 의욕을 잃고 주저앉아 있을 때, 더욱 힘이 빠지고 슬퍼진다.

 

죽음은 항상 내 곁에 있다

물이 끊긴다. 그녀에게 생활의 압박이 밀려온다. 그녀는 사장에게 와플집을 더 이상 안 가겠다고 통보한다. 그간 그녀가 악착같이 살아왔던 것에 문득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다. 다르덴 감독은 인간에게 극도의 절망을 보여주고, 계속 의지를 갖고 추구하지만, 너무 힘들어 어느 순간 생의 끈을 놓아버리는 지점을 항상 포착한다.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여주인공은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힘든 시간속에서 포기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녀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다.

로제타는 자살하고자 한다. 그 순간 가스가 떨어져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죽으려고 했지만 가스통을 갈아야 한다는 구차함이 우습게 느껴진다. 그건 인생의 부조리함이다. 살려고 하면 죽게 되고, 죽으려 하면 살 희망이 다가오는 게 인생이다. 물에 뻐져 죽으려 했지만 물이 차가워서 다음에 죽기로 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경우와 흡사하다. 우리는 살려는 이유와 죽으려는 이유를 어딘가에서 항상 찿는다. 죽고 싶지만 이유가 없어 못 죽는 것이다. 사는 것도 같은 이치다. 살려는 명분이 있다면, 죽을 사람도 반드시 살기로 한다. 자살이란 충동이고, 그 것은 시간이 가면 변한다.

그녀는 가스통을 안고 힘들게 걸어간다. 시지프스가 자기 몸 보다도 큰 돌을 굴려 언덕을 힘들게 올라가는 고통과 같다. 죽으려고 가스통을 들고 가는 로제타의 모습은 고통스러워 보인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그때 친구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그건 희망의 소리이고, 삶의 소리이다.

친구는 그녀를 믿는다. 친구는 그녀가 사악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직장에서 그를 몰아냈지만,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던 자기를 구해준 적도 있다. 친구는 로제타가 살기 위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이해한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해 미워했지만 이제 그것을 이해한다. 그녀를 비난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이번에 그는 그녀를 구원하고자 온 것이다.

로제타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자신이 결정하고, 실행하는 의지가 굳은 여자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그녀는 남자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어 흐느낀다.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산다는 그 현실이 슬퍼보인다. 영화 전체에 걸쳐 한 번도 울지 않던 로제타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의지가 꺽이며 처음으로 한 번 운다.

하지만 그 울음이 슬프지 만은 않다. 친구가 있고 그가 그녀를 도우러 온 것이다. 사람이 힘들면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친구이고 그를 통해 누군가는 새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인생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갖고.

 

 

글·정재형
동국대 연극영화과교수이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을 역임했다. 『영화이해의 길잡이』, 『영화영상스토리텔링100』 등의 역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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