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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 유년기의 악몽, 그 공포와 전율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사탄의 인형 Child's Play, 2019> vs <사탄의 인형 Child's Play, 1988>
[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 유년기의 악몽, 그 공포와 전율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사탄의 인형 Child's Play, 2019> vs <사탄의 인형 Child's Play, 1988>
  • 조한기(영화평론가)
  • 승인 2019.07.0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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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는 하나의 사물을 두고도 다양한 꿈을 꾼다. 천진한 상상의 세계에선 무정물과 유정물의 경계가 쉽게 모호해진다. 분리와 배리가 없는 상상 세계에선 익숙한 대상도 때론 낯설게 나타나곤 한다. 최근 개봉한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그러한 유년기의 환상에 대한 달콤한 재현이라면, <사탄의 인형> 시리즈는 악몽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영화는 정서적으로는 극단에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상상력의 근본적인 동인은 같다. 

 

 고전 호러 영화 <사탄의 인형 Child's Play, 1988>이 성공한 유력한 원인 중 하나는 관객의 유년 시절 기억을 건드렸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Child's Play’라는 영화의 원제는 이 같은 성격을 분명히 드러낸다) 아이가 어머니와 떨어지면서 겪는 불안감, 그리고 그 불안을 대리 보충하기 위한 집착은 보편적인 성장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탄의 인형 1988>에서 6살 소년 앤디가 인형에게 이름을 붙이고 친구처럼 대우하는 장면은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탄의 인형>에서 긴장감을 이끄는 것은 그 익숙한 광경이 상식을 넘어 기이하게 다가올 때이다. 예컨대 앤디가 처키에게 보이는 과도한 감정이입은 사건이 진행될수록 치기 어린 장난의 범주를 넘어선다. 처키의 행동을 담는 일인칭 시점 쇼트는 익숙한 공간을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포착하며 생경한 긴장감을 이끈다. 마지막으로 앤디의 변명으로 치부했던 처키의 실체가 극적으로 밝혀질 때, 움직일 리 없다고 믿었던 인형이 움직이는 순간 전달되는 전율은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이다. 프로이트가 지적했던 것처럼 공포는 낯익은 것이 낯설게 다가올 때 커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리부트된 <사탄의 인형 Child's Play, 2019>는 어떠한가. 영화는 원작과 다양한 부분에서 변별되는 성격을 지닌다. 기본적으로 호러 영화와 슬래셔 영화의 장르 관습에 충실하지만 블랙 코미디 요소가 상당히 가미되었다. 무엇보다 큰 차이점은 두려움의 근원이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공포(technophobia)로 이양되었다는 점이다. 1988년의 처키가 부두교의 마술적 힘을 빌려 되살아난 살인마의 이야기였다면, 2019년의 처키는 첨단기술의 오류가 만들어낸 A.I. 스토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2019년의 <사탄의 인형>은 제목부터가 조금 어색하다. 과거의 처키가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잔혹함을 과시했다면 A.I. 처키는 첨단 기술을 이용한 지능형 범죄를 저지른다. 인공지능과 딥 러닝 기술,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자율주행 자동차, 드론 등 첨단 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을 재현한다. 

 

 흥미로운 부분 있다면 A.I. 처키의 행동 방식이 원작인 <사탄의 인형 1988>보다 SF 장르 영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A.I. 처키는 여러모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68>의 인공지능 할(HAL)9000의 오마주로 보인다. 처키가 인간을 관찰할 때 불길하게 빛나는 붉은 눈과 소멸하는 순간 부르는 기묘한 노래는 할9000의 모습을 정확히 상기시킨다. 여러 스토리콘텐츠에서 오마주된 할9000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A.I. 캐릭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완벽한 봉사를 목적으로 제작된 할9000은 자신의 오류를 숨기기 위해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완벽’하라는 인간의 절대적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오히려 인간을 공격하는 역설에 빠진 것이다. 이처럼 여러 A.I.캐릭터에게서 ‘오류’는 중요한 모티프로 작동한다. A.I. 캐릭터는 ‘오류’를 계기로 기술사회의 역기능에 대한 성찰을, 때론 새로운 윤리의식을 요청하며 인간사회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사탄의 인형 2019>에서도 기술적 오류와 인간의 복잡한 감정에 대한 오해는 처키가 살인 기계가 되는 계기가 된다. A.I. 처키는 인간이 행동을 토대로 지식을 습득하며, 그의 살인은 앤디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사탄의 인형 2019>는 고도로 자율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첨단 기술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겨냥하고 있다.

 

이처럼 호러 영화는 자주 개인과 사회의 잠재된 공포를 전면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곤 한다. 인간은 불가해한 상황이 다가올 때 공포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심리적 두려움은 수용자의 체험과 당면한 현실에 가까울수록 더욱 각별한 긴장감을 전달한다. 그렇다면 호려 영화의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관객의 무의식에 잠재된 불안과 관습화된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작업일 것이다. <사탄의 인형 1998>의 경우 유년 시절의 기억과 이를 소환하는 오브제로서 인형의 이미지가 전복적으로 나타나며 이 같은 측면에 부응했다.

반면, A.I. 로봇 처키의 서사궤적은 심리적인 두려움보다 기괴한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편중되어 있다. 특히 최후의 순간 앤디를 향한 처키의 적의 표출은 캐릭터의 일관성을 흔들었다. 분명 A.I. 처키의 엽기적인 행동은 슬래셔 영화로서 충분한 시청각적 자극을 선사한다. 그러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섬뜩함(uncanny)은 부족하다. 유년 시절의 불투명한 불안을 연상시키기엔 A.I. 처키는 아직 먼 미래의 기술 집약체가 아닌가. 말하자면, <사탄의 인형 2019>는 원작에 비해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나타나는 공포, 즉 무의식을 위협하는 전복적인 환상성이 부족하다. 여러 명작 영화를 참조했지만, 그 외피를 재현하는 데 그쳤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9000의 에피소드도 단순히 첨단 기술의 위협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발본적인 문제 제기가 선행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탄의 인형 2019>가 원작을 제외한 다른 <사탄의 인형> 시리즈보다 특별히 저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재기발랄한 연출이 돋보였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아쉬운 부분이 남는다. 새롭게 태어난 처키가 고장이 난 장난감 이상의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고전 영화 안에 숨겨진 회로를 조금 더 숙고했어야 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조한기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수료. 2018 영평상 신인평론상과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2018 만화비평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문화와 스토리텔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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