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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가상세계와 관계 맺기의 문제, ‘블랙 미러’를 보고 떠올린 ‘레디 플레이어 원’
[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가상세계와 관계 맺기의 문제, ‘블랙 미러’를 보고 떠올린 ‘레디 플레이어 원’
  • 손시내(영화평론가)
  • 승인 2019.07.0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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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새로 업데이트 된 <블랙 미러> 시즌 5의 첫 번째 에피소드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보다 문득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을 떠올렸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지난해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고 느꼈던 아쉬움과 당혹스러움을 다시금 떠올렸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스필버그의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망설여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대비하고 연결하는 방식이 스필버그의 전작 <스파이 브릿지>(2015)와 <마이 리틀 자이언트>(2016)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그래서 경직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선 지난해 <더 포스트>(2017)에 대해 작성했던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 ‘<더 포스트>에 대한 뒤늦은 단상’)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까운 미래의 현실 세계와 ‘오아시스’라는 가상세계를 다루고 있는데,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역시 현실 세계와 게임이 이루어지는 가상세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또한, 두 경우 모두에 모종의 애정 관계가 연루되어 있다는 점이 <레디 플레이어 원>과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함께 생각해보게 했다.

<블랙 미러>는 과학 기술이 발달한 근미래의 어둡고 아이러니한 면을 부각하는 독립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시리즈물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편하게 만들어주고 더욱더 많은 영역에서 자동화가 이루어지며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기술과 기계 등에 의지하는 사회가 되지만, 인간의 끝 모를 욕심과 음습한 본능 등이 그 세계에서 크고 작은 파국을 만들어낸다는 아이디어가 그리 새로운 건 아닐 것이다. <블랙 미러>의 독립된 에피소드들이 다루는 발전된 기술이 퍽 다양한 데 비해 발생하는 갈등은 주로 질투와 의심, 집착과 같은 감정에 의한 것이며, 각각의 에피소드는 대개 인간의 추잡한 면을 묘사하는 데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고 그것들은 다소 뻔하게 그려진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니(안소니 마키)와 칼(야히야 압둘 마틴 2세)은 오랜 친구로 둘은 젊은 시절 2D 대전 게임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함께 즐겨했다. 세월이 흐르고 대니가 가정을 꾸리는 사이 자연스레 멀어졌던 두 사람이 대니의 생일을 계기로 다시 만나는데, 추억의 게임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최신판이 VR 버전으로 출시된 시점이다. 칼은 대니에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장치를 선물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게임이 이루어지는 가상세계에서 만난다. 머리에 작은 장치를 붙이고 가상세계로 의식이 이동하면, 각자가 선택한 게임 캐릭터가 되어 직접 싸움을 벌이게 되고 때리고 맞는 모든 감각이 플레이어에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예전부터 각자가 즐겨 선택했던 캐릭터는 각각 무술에 능통한 동양인 남성과 동양인 여성 캐릭터다. (각각 루디 린과 폼 클레멘티에프가 연기한다) 둘은 옛 추억을 떠올리고 새로운 기술에 감탄하며 게임에 빠져들지만, 이 관계는 곧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생생한 감각으로 만난 게임 속 세상에서 두 캐릭터(그리고 두 인물의 의식)가 서로를 만지고 키스하며 섹스하는 것이다. 첫 접촉 이후 두 사람은 다소 어색한 감정을 느끼고 게임을 그만두지만, 이내 게임 속에서 다시 만나며 관계는 지속되고 그것이 대니와 칼의 비밀이 된다.

물론 가정이 있는 대니는 이로 인해 곤란을 겪는다. 그의 아내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진실을 묻게 되고, 그도 곧 이 이상한 관계를 끝내고자 한다. 혼자 사는 칼은 좀 더 과감하게 관계를 이어가고자 한다. 게임 속 세상에서의 경험이 너무나 새로운 감각을 제공해주었고 그 쾌락에서 굳이 벗어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게임 속에 재현되는 섹슈얼한 이미지를 매우 전형적으로 손쉽게 제시하고 있다는 일차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여기엔 다른 가능성을 가진 세계에서 구축되는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 묻는 질문이 은밀하게 관여한다. 물론 관계의 구축이 전형적이었던 만큼 대답 또한 흥미롭진 않다. 가상세계의 관계가 현실의 관계에 근본적으로 침투할 가능성을 봉쇄함으로써 질문 자체를 축소하는 것이다. (현실의 대니와 칼은 그걸 확인하고자 키스를 해보고는 서로에게 아무런 끌림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또한 두 세계 간에는 동작이 동기화되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관계를 맺게 하는 두 개의 세계는 얼핏 대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세계를 넘나드는 인물들에게서 어떤 위험하고 위반적인 가능성도 삭제되기에 여기 남는 건 그저 ‘게임 하는 시간은 줄이고 현실에 좀 더 충실하면 두 세계에서 모두 행복하리라’는 별 볼 일 없는 교훈뿐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다른 경로를 통하지만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와 유사한 교훈에 다다른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배경은 2045년, 주인공 웨이드(타이 쉐리던)는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빈민가 주거촌에 산다. 이곳의 어두운 현실을 사는 많은 이들이 주로 머무는 곳은 가상세계 ‘오아시스’다.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 공간을 만든 할리데이(마크 라일런스)는 죽기 전 오아시스에 숨겨둔 세 개의 열쇠를 찾아 이스터 에그를 획득하는 이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유산을 남기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20세기 대중문화와 할리데이의 생전 행보를 조합해 열쇠를 찾아내는 그 모험엔 웨이드의 아바타인 파시발과 그의 사이버 친구들, 주로 혼자 행동하는 사만다의 아바타 아르테미스(올리비아 쿡) 그리고 오아시스를 차지하려는 거대 기업 IOI 등이 뛰어든다. 고글이나 장갑 등의 기본적인 장비를 통해 오아시스에 접속할 수 있지만, 더 비싸고 좋은 장비일수록 오아시스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인 감각을 현실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영화는 가상세계에의 접근이나 자원의 획득과 같은 활동들이 여전히 현실 세계의 경제적 격차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비싼 장비의 존재나 IOI의 행태 등이 그러한데, 일례로 아이템을 사다가 막대한 빚을 지게 되는 이는 IOI 측에 속박되어 현실의 몸이 상하다 못해 죽을 때까지 오아시스 내에서 일해야 한다. (현실과 오아시스 간에는 동작이 동기화된다)

 

대중문화 자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보다 오직 경제적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그려지는 악당인 IOI의 책임자 소렌토(벤 멘델슨)에 맞서 웨이드-파시발과 친구들, 반군인 사만다-아르테미스가 힘을 합쳐 열쇠들을 찾고 결국엔 오아시스를 구해내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여전히 현실의 경제적 문제가 가상세계에 영향을 미치지만,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과 아바타로서 만난 이들 간의 우정, 문제를 파악하고 돌파하는 지혜가 그것을 극복하게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풀기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 단체 전투 등이 주는 쾌감이 영화의 활력임은 당연하다. 그런데 영화는 현실 세계와 가상세계 이 두 세계를 동작의 동기화나 세계를 매개하는 경제적 이해관계 등으로, 또한 긴박한 교차편집으로 긴밀하게 연결해 긴장을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마지막에 이르러 그 긴장을 맥없이 깨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상세계 내에서의 승리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하고, 오아시스를 소유하게 된 웨이드는 현실의 삶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일주일 중 이틀은 사람들의 오아시스 접근을 막는 결정을 내린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두 세계 사이엔 어떤 긴장도 남아있지 않다.

 

웨이드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마지막 장면이 현실의 웨이드와 사만다를 비추고 있음을 상기하고 싶어진다. 이들은 원래 아바타의 모습으로 서로를 처음 만났다. 오아시스에서 파시발은 아르테미스에게 사랑을 느끼고, 이후 난관을 함께 헤쳐가면서 현실의 웨이드와 사만다가 연인이 된다. 오아시스 내에서 형성된 관계를 현실로 확장하는 데 따르는 사만다의 망설임은 주로 IOI의 개입 때문으로 드러나지만, 사만다의 얼굴에 큰 반점이 있다는 설정이 있어 관계 자체에 대한 염려도 여기 슬며시 끼어든다. 막상 현실에서 서로를 만나면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러한 망설임은 가상현실은 물론 인터넷 채팅이나 심지어는 편지의 교환을 둘러싸고도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고,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그런 걱정이 실현되거나 추가적인 문제를 불러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파시발이 오아시스에서 줄곧 함께했던 친구들을 현실 세계에서 한꺼번에 만나게 되는 후반부의 한 장면에서도 별다른 저항이 발생하지 않는데, 이 편견 없는 만남은 오히려 두 세계 간의 마찰을 ‘건전한’ 방식으로 축소한다는 느낌을 준다. 어쨌든 적어도 관계를 맺는다는 측면에서는 오아시스와 현실이라는 두 세계 간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파시발과 아르테미스의 사랑은 웨이드와 사만다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이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가 보여주는 관계와 정반대지만, 결과적으로 여기에서 저기로 넘어가는 데 아무런 부담이나 위험이 따르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현명하게 마무리된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지점들이야말로 오히려 가상세계를 원만히 관리하지 못하거나 가상세계에 수월하게 연결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을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닐까.

 

 

글·손시내

2016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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