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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진실 혹은 영화비밀 - 다큐멘타리 <비비안 마이어를 찿아서>(2013)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진실 혹은 영화비밀 - 다큐멘타리 <비비안 마이어를 찿아서>(2013)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19.07.15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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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는 진실만이 아니라 비밀도 기록한다

<비비안 마이어를 찿아서 Finding Vivian Maier>(2013)는 다큐멘타리 영화다. 다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시네마 베리테, 자연, 뉴스릴. 시네마 베리테(cinéma-vérité)는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다큐로서 적극적인 인터뷰 방식을 선호한다. 자연다큐는 자연, 인간, 사회를 정직하게 기록한다. 뉴스릴다큐는 사실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시네마 베리테에 속한다. 베리테(vérité)는 프랑스어로 진실(truth)이란 뜻이다. 이차대전 이후 나타난 다큐양식이다. 전쟁 이후 사람들이 진실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현상이 심해지고 세월을 통해 묻혀진 진실도 많았다. 이러한 진실을 폭로하기 위한 방식으로 적극적인 인터뷰를 동원하여 파헤친다.

<비비안 마이어>의 첫 장면을 보면 인터뷰이(interviewee) 들이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화면이 넘어간다. 답답함속에서 여러 명이 등장하고 이어 다시 등장한 사람들이 이번엔 한 마디만 하고는 넘어간다. 관객은 그 한 마디에 더욱 호기심을 부채질 한다. ‘유별나고’, ‘신비하고’, ‘모순적이고’, ‘비밀스럽다’ 등의 말들은 관객들에게 흥미를 끌게 한다. 이것은 호기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전형적인 프롤로그 방식이다. 앞으로 비비안 마이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봅시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시네마 베리테의 생명은 영화 끝날 때까지 진실이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영화가 끝날 무렵에도 진실이 발견되지 않으면 그 다큐는 볼 게 없다.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했는데도 별로 새로운 사실이 증명되지 않으면 허망한 다큐가 된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사실을 충족시킨다면 그건 극영화 이상의 깊은 감동을 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시네마 베리테는 그 자체가 예술적 방식이다. 겉 모습만으로 사물을 판단하지 않는 것, 그래서 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자세, 그것은 바로 예술이 추구하는 본질이다.

 

예술가 였던 가정부 혹은 가정부 였던 예술가

영화의 목적은 비비안 마이어의 신원을 찾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역사, 사회, 문화적 배경과 만나게 된다. 다큐를 만든다는 것은 한 인물만을 국소적으로 다룰 수 없다. 그 인간을 둘러싼 총체적 요소를 다 건드려야 한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보면서 사진에술이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그토록 집착했던 사진이 대체 어떤 스타일이길래 이토록 오랜 시간을 소비했는가. 영화는 비비안의 사진이 역대 유명한 사진작가의 그것과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 많은 작가들이 거론된다. 사진가로서의 자세, 기교 등이 다 거론된다. 관객은 사진예술의 본질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는 두 개의 동질성을 갖고 있다. 현재를 기록하는 순간 과거가 된 스틸사진과 과거를 기록한 다큐의 두 개가 공존한다. 영화의 소재가 되는 비비안은 사진을 찍었고 영화의 구성은 비비안의 사진과 기록영화를 통해 재구성된다. 다큐는 현실의 재구성이지 현실 자체는 아니다. 비비안의 사진을 보면서 과거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과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회상의 주체인 여인은 집의 이름을 부른다. 이어 집의 이름이 나타난다. 이건 새로 찍은 것 같기도 하고 비비안의 사진 일 수 도 있다. 이어 감독과 여인은 현재 폐허처럼 버려진 집을 돌아본다. 거의 같은 구도로 비비안의 사진이 제시된다. 이 두 사진을 볼 때 60여년이 지난 후의 현재와 과거를 비교할 수 있다. 그건 격세지감을 불러 일으킨다. 사진이나 다큐의 용도는 그런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인간은 자신을 성찰한다.

 

영화를 통해 비비안 마이어는 뉴욕에서 태어나 시카고에서 가정부를 전전하다 2000년대 들어와 사망한 여자였음을 알게 된다. 그녀의 부모는 프랑스의 시골에서 살았고 미국으로 건너와 힘든 삶을 살았다. 부모는 다 사망했고 그녀의 오빠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혈혈단신으로 미국에서 고된 삶을 살게 된 비비안은 대학도 나오지 않았으리라 추정되지만 혼자 사진에 취미를 갖고 전문사진을 찍는 길을 가게 되었다.

그녀의 삶은 두 개로 가정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감독에 의해 발굴된 지금의 비비안 마이어와 진작 10년 전이라도 전시회 등을 통해 정식 사진 작가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녀의 삶이다. 만일 죽기 직전에 데뷔했었더라면 그는 더 이상 가정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주인과 신문 때문에 싸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진 작가의 삶이 물론 경제적으로 풍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독립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비비안을 발견한 감독 존 말루프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평범한 시민이지만 한 묻혀진 예술가를 복원하기 위해 만방으로 뛰었다. 그는 비비안 마이어를 예술가로 발굴하였다. 그의 덕에 비비안은 사진 작가가 된 것이다. 만일 말루프가 없었다면 비비안의 사진 들은 여전히 창고 속에 아니면 이미 소각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을 게 분명하다. 비비안의 삶도 기구하지만 그녀를 발견한 말루프의 노력도 보통 지나칠 일은 아니다. 말루프는 어쩌면 비비안을 발견하기 위해서 존재한 사람인양 느닷없이 나타나 비비안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말루프의 삶은 영화감독의 삶이고 다큐멘타리스트의 삶이다. 그는 한 예술가를 발견하는 일이 자신의 중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신이 바로 예술가의 정신이기도 하다. 먹고 사는 일상의 필수 적인 일을 초월한 일을 추구하는 것, 그게 바로 예술가의 일이니까.

 

 

글·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이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을 역임했다. 『영화이해의 길잡이』, 『영화영상스토리텔링100』 등의 역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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