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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형의 집’을 떠나는 대신 ‘페미니즘의 성’을 지킨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형의 집’을 떠나는 대신 ‘페미니즘의 성’을 지킨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19.07.1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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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7월 11일 개봉된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We Have Always Lived in the Castle)>는 미국 소설가 셜리 잭슨(1916~1965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사는 “마을에서 고립된 채 그들만의 성에서 살아가는 자매에게 한 남자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소개한다. 또한 “특히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으며 그에 대비되는 충격적인 스토리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틀린 얘기가 아니고 대체로 맞는 이야기이지만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빼먹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단어는 ‘페미니즘’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페미니즘 영화이다. 페미니즘 색채를 분명히 하는 것이 마케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고민에서 나온 우회하는 홍보전략이지 싶다. 나의 판단으로 이 영화는 우화적 스릴러로 표현된 페미니즘 영화인데, 그것도 라디칼 페미니즘에 가깝다.

페미니즘을 다뤘다고 꼭 여성 영화감독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 영화의 감독 스테이시 패슨은 여성이며, 전작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Concussion)>은 (페미니즘과 달리 애매한 분류이긴 한데) 여성영화로 분류된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주제의식은 패슨 감독의 연출의도에서 확인된다. 그는 원작소설에 대해 “셜리 잭슨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사회적 문제에 맞선 여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영화는) 일가족 몰살이라는 자극적인 사건을 수면 위로 띄우며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그 속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대립, 남성과 여성의 차별, 편견으로 가득한 시선, 타인에 대한 공포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 속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어떤 삶을 선택하는지에 귀 기울인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부모가 살해된 뒤 메리캣(타이사 파미가 분)ㆍ콘스탄스(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 분) 자매가 살아가는 성에 재산을 노린 사촌 찰스(세바스찬 스탠)이 찾아오면서 전개되는 사건을 그렸다. 18살 메리캣은 언니 콘스탄스의 수호자이자 동시에 성(城)의 수호자이다. 영화 말미에 그의 비밀이 밝혀지는 않아도 메리캣이 행동주의자임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선택의 기로에 선 메리캣은 시종일관 과단성 있게 행동한다. 망설임이 없다. 그의 행동은 기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성(城)과 자신을 포함한 자매를 지킨다는 관점에서 보면 올바르게 행동한 셈이다.

언니 콘스탄스는 성에 대해 메리캣만큼 확고한 애착은 없다. 전형적(혹은 가부장적?) 여성성으로 표현된 캐릭터에서 드러나듯 콘스탄스는 애초에 말하자면 투철한 페미니스트 역할로 설정되지 않았다. 그 역할은 메리캣에게 주어졌고, 콘스탄스는 메리캣과 대비되고 때로 갈등하며 종국에 여성의 연대 속에서 메리캣과 하나가 된다. 만일 메리캣이 없다면 콘스탄스는 이 성에 살 수 없었을 것이지만 콘스탄스 없는 메리캣 또한 공허하다.

자매 사이를 파고든 남성 찰스는 사악하고 천박한 유혹자 이미지이다. 성적 매력을 앞세운 거짓사랑으로 콘스탄스를 유혹하려는 그의 시도는 한동안 성공하는 듯하다. 그러나 감독의 연출의도에 비추어 찰스의 시도가 끝까지 성공적일 것 같지는 않다. 찰스가 죽은 아버지를 꼭 닮았으며 찰스가 이 성에서 죽은 아버지의 의자에 곧 바로 앉아 가부장인 양 행세하도록 한 것으로 찰스의 운명을 예고한 셈이다.

성에서 공존이 가능한 남성은 아마도 신체적 손상과 정신적 손상을 입은 삼촌 줄리안(크리스핀 글로버 분)과 같은 덜 남성적인 인물일 것이다. 유혹자나 압제자 이미지의 남성은 이 성에서 암적 존재이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풀어지는 동안 페미니즘을 연상할 직접적인 표현이나 상징은 자제된다. 따라서 관객이 이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본다고 하여도 그것은 관객의 자유이다.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화재에도 불구하고 메리캣은 성을 지켜내었고 자매는 성에서 함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은 성과 함께 그곳에 남았다. 성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문학작품은 당연히 카프카의 소설인데, 이 영화에서 성의 이미지는 카프카의 성이 불가해한 곤경이자 위협으로 그려진 것과는 반대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입센의 <인형의 집>도 떠올리게 된다. 노라가 가부장제의 화신인 집을 떠난 반면 자매는 성을 지켜내고 가부장제의 잔재를 일소한다는, 관점에 따라서는 페미니즘의 진보를 성취한다. 종달새와 다람쥐였던 노라와 달리 메리캣은 애초에 들고양이처럼 강인한 투사였다는 점과 조응한 결말이다.

 

 

글·안치용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장으로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한다. 지속가능성과 CSR을 주제로 사회활동을 병행하며 같은 주제로 청소년·대학생들과 소통·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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