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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의 해결책, 민간화해재단
한·일 갈등의 해결책, 민간화해재단
  • 김희석 l 변호사
  • 승인 2019.08.01 09:0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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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가 제언하는 해결책

대한민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일제 강제징용 배상청구에 관해 일본기업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최종 판결했다. 이는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한 1997년 이후 21년 만의 판결이었다.

한편 일본은 2019년 7월 1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대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청구권 인용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일 것이다. 일본 정부의 의도는, 플루오린 폴라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대한 수출규제를 가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 타격을 주려는 것이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청구권에 대한 한국의 대법원과 일본의 최고재판소 판결은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선 일본 최고재판소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주장할 수 없다’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기본관계에 대한 조약’ 제2조 제1항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는 조항과 제3항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해서는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조항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Manière de voir N161

인권의 본질적 가치를 거듭 확인하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이와 달리 한일청구권 협정은 국가 간의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으며, 더욱이 일본기업의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청구권은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일본 침략전쟁이라는 반인도적 행위에 의한 것이며 한반도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협정이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충돌하는 일본최고재판소의 판결은 국내에서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판결했다. 
청구권의 소멸시효 역시 피해자들이 국내법원에 소를 제기한 2005년 2월까지 한국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존재함에 따라 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즉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협정 관련 문서가 제공되지 않아 피해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청구권 인용 판결은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을 일방적으로 포기할 수 없음을 선언함과 동시에, 인권의 본질적 가치를 거듭 확인한 것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국가에 위임하거나, 개인이 국가에 대해 청구권의 포기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표시하지 않는 한 국가는 개인의 일신전속권인 손해배상청구권을 일방적으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 대법원의 판결은 우리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효력이 있는 것이지, 일본 국내에까지 그 효력이 미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을 일본 국내에서 집행하기 위해서는 다시 일본 국내에서 집행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최고재판소의 당초 판결을 뒤집고 집행판결을 승인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이제 강제징용 배상청구권에 대한 대한민국 대법원과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은 확정됐다. 문제는 같은 사안에 대해 양 국가 최고법원이 결론을 완전히 달리하는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최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무역 분쟁을 포함한 한일간 갈등이 이로부터 비롯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거나, 한일청구서협정에 따른 중재위원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제소 시 상대국이 동의해야 하며, 중재위원회 개최는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하는 것이므로 공정한 중재로 이어지기 어렵다. 결국 양국의 최고 법원간 상치되는 판결이나 그로부터 파생된 무역 갈등 등은 양국과 피해당사자들이 서로 양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공통분모를 찾아, 정치적 타협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상품 불매운동보다 효과적인 ‘기부’

정치적 타협의 해결방안으로 한일 양국의 민간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일제강점기에 해결되지 못한 위안부 문제, 본건인 강제징용 배상문제 등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민간재단을 설립하자. 이번에 문제가 된 일본기업들이 출연금을 내고 우리 국내기업과 국민이 기부를 통해 재단의 가용자금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 문제되는 강제징용 배상청구권을 매입하자.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배상청구권은 금전채권으로 변경돼 재단에서 매입할 수 있는 채권이 될 수 있다.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배상청구권의 집행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전범기업은 직접 손해배상청구권을 이행하지 않고 재단 출현으로 그 의무를 이행할 수 있고, 우리 피해자는 재단을 통해 소기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기업 입장에서는 청구권에 대한 직접 배상이 아니므로 배상청구권 소송으로 인한 손해이행이나 추가책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재단을 통해 손쉽게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일본 여행,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하는 대신 민간화해재단에 기부함으로써 피해를 입은 우리 국민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다. 

많은 정치인과 국민이 극일을 주장하고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위한 일전을 말하는 지금, 한일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 필요한 시기다. 국제사회의 분쟁해결은 한 국가의 일방적 승리나 패배보다는 타협과 중재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런 점에서 한일 양국의 민간화해재단 출범이 분쟁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향후 양국 기업과 국민들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해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고 화해할 수 있는 민간재단으로 확대해 나가자. 정부의 예산이나 일본 정부의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순수하게 민간재단으로 설립 운영하면 될 것이다. 여기에 기부하는 기업과 국민은 당연히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줘야 한다. 이런 민간화해재단의 추진은 반드시 일본의 무역제재를 중단함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민간화해재단의 출범이 성공한다면, 향후 대한민국과 일본은 지금보다 더 견고한 우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핍박받은 우리 민족과 그 생존자를 돕기를 원한다면, 화해재단에 기부를 하면 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도리를, 나아가 인권 수호를 실천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글‧김희석
KDB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 전문위원. 법학박사.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자격을 취득했으며, 산업은행 법무실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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