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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바라 마지않는 그곳의 이야기 - 영화 <배심원들>(2018)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바라 마지않는 그곳의 이야기 - 영화 <배심원들>(2018)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19.08.19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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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을 때, 조금은 허황되고 조금은 단순한 그래서 과하게 착한 이야기가 그리 싫지만은 않을 때가 있다. 너무도 지치고 피로할 때, 순진한 한 마디가 주는 약간의 안도감. 그래도 아직까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 아마도 이 찰나의 안심이 그래도 아직은 괜찮을 거라고 위로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영화 <배심원들>은 바로 이 위치에 있다. 법 감정과 법의 판결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괴리를 보이고 있는 요즘, <배심원들>은 과연 판결이 어디를 향하고 있어야 하는지, 판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한 사람에 대한 판결을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등에 대해 차분히, 착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배심원들>은 영화보다는 연극에 더 적합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의 첫 국민참여재판을 위해 모인 배심원단은 증거도 자백도, 증언도 확실한 모친 살인사건 피고인의 양형을 결정하기 위해 선발된 이들이었지만, 화재로 의수(義手)를 사용하는 피고인의 모습에 그리고 갑작스레 혐의를 부인하는 그의 외침에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모두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외출이 제한되기에 영화는 재판정과 그들의 대기실, 그리고 잠시 남우(박형식)이 개인적인 일로 헤매다 마주하는 지하 피고인의 대기 공간이 영화의 전체를 차지한다. 이들이 이외의 공간으로 나가는 것은 증인의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피고인이 살았던 아파트가 전부이며, 배심원들 사이에, 그리고 그들과 판사 사이에 갈등의 날을 세우는 것은 그들의 무수한 말을 통해서 이다. 무대에서의 활용이 더욱 흥미로워 보이는 이러한 <배심원들>의 특징이 영화에서 발하는 효과는 오히려 카메라의 공간을 제한시키는 폐쇄성과 그것의 와해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재판을 모른다. 어지간해선 말려들고 싶지 않고,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 골치 아픈 것, 모른 것,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려해도 도무지 우리를 이해시킬 생각 따위가 없는 것이 재판이자 재판정, 그리고 법의 영역일 것이다. 상식적인 선에서도 명확한 것이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법이기도 하며, 그 역도 가능하다. 그러한 폐쇄성은 늘 딱딱한 분위기와 경직된 인물들, 그리고 어려운 대사들로 이야기됐다. <배심원들> 역시 공간의 영역에서 이 폐쇄성을 따르지만, 법에 대해 잘 모르고, 의문투성이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며나가면서 과연 그것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는지를 묻는다. 우리가 모르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재판이 결국 우리의 삶이 왜곡되는 순간의 기준을 정한다는 점에서 미지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이렇게 흥미롭고 쉬운 방식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심원들>이 보여주는 착한영화이고 싶은 태도가 충분히 이해된다. 한편으로는 이런 재판이 어디 있을 것이며, 또 그것을 가슴깊이 수용해줄 법조인이 누가 있을 것이냐는 의심이 들지만, 바로 이 의심은 우리에게 쌓인 불신이 얼만큼인지, 과연 그것을 어디부터 바꿀 수 있는지를 잠시 돌아보게 한다. <배심원들>이 보여주는 아직은 괜찮을 것이라는 사소한 믿음이 어쩌면 조금씩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조금은 의심스럽다 해도 믿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기대일 것이다. 거대하게 무엇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영웅이 아닌 경험으로, 서로에 대한 관심 혹은 믿음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처음 주어진 일이니 잘하고 싶다는 나름의 책임감으로 판결을 뒤집는 배심원들의 모습은 그저 일상에 치이는 우리가 아직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배심원들>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 중하나는 “법이 그래요.”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도무지 왜 그 상황이 이런 식으로 밖에 처리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를 회피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알리바이로 작용한다. 공무원들이 말하는 “법이 그래요.”의 법과 적반하장 식으로 배 내밀며 “법대로 해”라고 외치는 이들의 법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당연히 달라야 할 테지만 달라 보이지 않는 이 법의 테두리는 늘 우리 곁에 있지만 늘 우리 바깥에 있다. <배심원들>이 보여주는 일상성은 법의 이 특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묻는다. 결국은 나의 일일 것이고 혹은 너의 일일 것이 될 그 일에 대해.

 

<배심원들>(2019 개봉)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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