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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숙의 문화톡톡] 소리를 잡아라 ① -코끼리 냉장고에 넣기 그리고 소리보존의 법칙
[송화숙의 문화톡톡] 소리를 잡아라 ① -코끼리 냉장고에 넣기 그리고 소리보존의 법칙
  • 송화숙(문화평론가)
  • 승인 2019.09.02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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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리를 넣어라, 소리를 잡아라

알고 보니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냉장고 문을 닫으면 된다.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 이 유머의 포인트이다 보니 냉장고에 사자를 넣어도 고래를 넣어도 마찬가지겠지만, 소리나 음악을 넣는다고 상상하는 순간 일이 복잡해진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유머에서 웃음기를 제거해버린다면, 소리를 보존하는 방법에 대한 고대인들의 상상력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병뚜껑을 연다, 병 입구에 대고 노래나 말을 한다, 재빨리 뚜껑을 닫는다. 물론 이 방법이 실패하리란 걸 우리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분명 감지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소리의 비가시성과 비물체성, 그리고 한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재생불가능성이다. 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기술발전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진화해왔고 여전히 진화하고 있는 음악미디어가 목표로 하는 바는 바로 이 한계들을 극복하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서구의 기보법은 구술 전달방식의 한계들, 예컨대 한번 지나가면 사라져버리는 원래의 노래를 기억력에 의존해 복기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왜곡·변형될 수 있다는 한계를 넘어, 소리 그 자체를 보존하고자 했던 최초의 미디어라는 수식어를 부여받는다.

대다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다섯 개의 줄과 음표와 쉼표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는 그 악보라는 것이 소리 그 자체를 잡아넣는 미디어라는 이야기가 좀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9세기 유럽에서 발명되어 17세기에 이르러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던 이 기보법은, 실제로 감각되는 음악을 2차원의 매트릭스 안으로 집어넣으려 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정간보나 중국의 공척보 등 문자를 통해 음을 표기하는 애매한방식들과 구분된다.

 

가로축은 음의 시간적 흐름을, 세로축은 음의 높낮이를 의미하는 이 매트릭스는 말하자면 3차원적 시간과 공간에서의 절대적음향 그 자체를 여러 상징기호를 통해 2차원 위에 기록하려 했던 기록시스템이다.

이런 점에서 기보법은 음성 발음을 표기했던 알파벳이나 한글 등의 표음문자에 비견될 만하며, 문자가 그러했듯 이 시스템을 통해 음악을 병 안에 넣어 보존한다는 상상력은 실현될 수 있었다. 양피지나 종이에 들어간 음악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 전환되었고, 이로써 소리의 비가시성, 비물체성, 재생불가능성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번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거나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에게 그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악보를 전달해주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병뚜껑을 열고 귀를 대봐도 거기에서 노래가 즉각 흘러나오진 않는다는 것이 이 보존방식이 가진 최대의 단점일 것이다. 즉 이 방식은 악보에 담긴 소리 기호들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과, 이 해독과정이 악기나 사람 목소리를 통해 소리로 전환되고 나서야 비로소 음악소리가 나오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전제하고 있다. 물론 미래인인 우리 입장에서 이것이 최선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그러나 기보법은 음악을 보존, 전달, 재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자 최고의 미디어로서의 지위를 오래도록 지켜냈다. 에디슨의 포노그래프 Phonograph가 발명되던 1877년까지 말이다.

에디슨 왁스실린더 포노그래프 1899

2. 구 미디어 vs. 신 미디어 미디어적 합리성과 편향성

마샬 맥루언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전언을 통해, 미디어가 정보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는 파이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디어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인지, 소통, 경험, 기억방식이 주조되고 구성됨을 주장한 바 있다. 맥루언은 미디어의 감각적 특성과 편향성에 근거하여 고대 구술문화에서 근대 인쇄문화로의 서구문화사 변이 과정을 고찰하는데, 그에 따르면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은 촉각적-통합감각적 구술문화에서 시각적 문자문화로의 변화이다. 특히 근대는 인쇄/활자미디어를 중심으로 시각이 지배적 감각으로 자리 잡으며 다른 감각 방식들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간의 교류와 상호 유기적 관계를 폐쇄시켜 간 과정으로, 서구 근대 합리성은 말하자면 시각이 다른 감각적 전유들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획일성, 연속성, 환원론적 통일성, 단선적 인과관계, 표준화, 반복가능성 및 예측가능성 등 근대의 핵심적 특성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은 결국 문자 미디어의 시각-감각적 독단성에 근거하는 것이자 이 미디어적 감각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했던 결과물들이다. 이 활자문화 주도의 시대는 20세기 전기·전자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미디어의 도전을 받게되며, 이로써 다시금 구술문화적 통합감각의 가능성이 회복된다는 것이 맥루언이 관측하는 미디어-감각의 역사전개 과정이다. 그리고 음악 미디어의 역사 역시 이 미디어-감각의 전개과정을 고스란히 투사해내고 있다.

해석, 독해, 소리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기보와 달리, 소리 자체를 잡아넣고 이를 그대로 꺼내서 반복재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노그래프는 병 속에 소리를 넣어 뚜껑을 닫았던 그 상상력의 원형을 구현해 낸 미디어라 할 수 있다. 레코드 record라는 단어는 이제 소리를 기록하는 방식 혹은 미디어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음악은 기보 미디어 시대를 넘어 녹음이라는 신 미디어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20세기 전반기는 이 두 가지 미디어 방식 간의 치열한 대립과 경쟁과정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구 미디어가 차지하고 있던 유일한 음악 미디어로서의 자리를 신 미디어가 대체하게 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또 신 미디어인 녹음음악이 실제로 듣는 음악 소리 만큼의 음향의 질을 확보해내기까지의 과정 역시 지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 미디어로서 녹음음악의 의의는, 기술 혁신에 의한 편리함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구 미디어가 기록할 수 없었던 것 혹은 기록에서 배제 시켰던 것들을 기록대상으로 포섭했다는 데 있다.

기보법이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음을 다 기록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예컨대 라는 음에서 한 옥타브 위의 까지 소리 내 주욱 훑어가며 한 옥타브 사이에 몇 개의 음이 존재하느냐고 질문한다면 이에 정답은 매우 많다이다. 그러나 만약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음이 8(-------)라거나 좀 더 세분화하여 반음씩인 13개라고 답한다면 이는 미디어 감각에 따른 오답이지만, 이 미디어는 이것을 오답이 아닌 정답으로 만들어버리는 근거가 된다. 즉 기보라는 미디어는 일종의 거름망으로 이 미디어 시스템에 걸러지는 것, 걸러질 수 있는 것들만을 음악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 미디어에 포착되지 않는 무수히 많은 다른 요소들은 삭제시켜버리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기보는 작곡이나 연주에서의 전제로 작동하기 때문에 기보 미디어에 기록될 수 없는 요소들을 (상상조차 하지 않겠지만) 재료로 상상한다 하더라도 이를 보존하거나 기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미디어 감각에 따르자면, 이 미디어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요소들은 비합리적일 뿐이다.

기보라는 음악 기록 미디어에 의해 비합리성의 영역으로 축출된 많은 음악문화와 음악들이 있다.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부담스럽지만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서구/비유럽 음악들이며, 여기에는 아프리칸-아메리칸의 문화적 영향력이 강하게 묻어나는 대중음악의 다양한 지분들이 포함되어 있다. 민속음악을 원시적음악으로 바라본다거나 대중음악과 대중음악가들에게 가해졌던 폄하와 비난에는 이 같은 미디어적 감각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들의 음악은 악보로 그리기에 부적합한 음악이며 그들은 악보도 읽고 쓸 줄 모른다.

블랙풋족장의 소리 녹음 1916

 

Billie Holiday recording

 

녹음미디어의 등장은 먼 고대의 음악보존 상상력을 실현하는 우연의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그 발전과정은 20세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작용하고 있다. 그 과정을 단순한 기술력의 진화로만 바라보기 힘들다. 그 이면에는 구 미디어적 합리성을 대신해 신 미디어로서의 정당성 혹은 또 다른 합리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참고도서>

마크 카츠, 허진 역, 소리를 잡아라, 서울: 마티, 2006.

마이클 채넌, 박기호 역, 음악 녹음의 역사: 에디슨에서 월드뮤직까지, 서울: 동문선, 2005.

마셜 맥루언, 김성기/이한우 역,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서울: 민음사, 2004.

 

일러스트레이션 : CheRa

: 송화숙

대중음악평론가 및 대중음악학자. 서울대 작곡과 이론전공 졸업 후 베를린에서 음악학 석·박사과정 마침. 현재 한예종과 전북대학교에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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