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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의 문화톡톡] 로큰롤의 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이혜진의 문화톡톡] 로큰롤의 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 이혜진(문화평론가)
  • 승인 2019.09.02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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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위의 실패? 세대의 충돌?

 

IoT-사물인터넷
IoT-사물인터넷

 

어느 시대나 세대 차이를 둘러싼 논쟁이 그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현대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그 어떤 시대보다 더 큰 세대 격차를 실감케 하는 것 같다. 이렇게 큰 세대 격차를 불러온 것은 스마트폰의 역할이 컸다. 1991년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 등장하고, 1994년 넷스케이프(Netscape)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도래한 인터넷의 시대에 이어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출시한 아이폰이 이른바 모바일 시대를 열게 되면서 인류의 지성사를 담당해왔던 전문가와 기성세대의 권위가 일거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모바일 세대는 상호 참여·공유·개방의 정신을 수용하는 집단지성을 중시하는 풍조를 형성하면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미디어 플랫폼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플랫폼이 바뀌었다는 것은 곧 생활양식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즉 그들은 육하원칙에 따라 잘 정돈된 신문기사나 뉴스 매체가 아니라 페이스북·인스타그램·트위터와 같이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규범을 결정한다. 현실세계에서 마주치는 비루함보다는 가상의 게임세계가 보여주는 놀이 행위가 훨씬 흥미롭기 때문에 그들은 새롭고 다양한 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에 집착한다. 모바일 세대에게 전문가나 기성세대의 정보는 그저 재미없고 비현실적이며 촌스러운 견해의 일종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기성세대에게 자주 충격과 경탄을 안겨다주면서 심각한 세대 격차를 유발시키는 이 모바일 세대의 등장은 이제 겨우 십여 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세대 격차를 개탄스러워 한다면 그것은 너무 때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2. 부비부비~ 로큰롤 세대의 기원

 

로큰롤 댄스
로큰롤 댄스

 

우리가 세대 격차를 심각하게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이후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전후 냉전의 위세가 극에 달한 미국의 보수적인 백인 어른 세계의 낡은 사운드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등을 돌린 10대 청소년들이 흥겨운 리듬에 맞춰 육체적 쾌락을 즐기며 정신없이 엉덩이를 흔들어댔던 1955년 로큰롤의 탄생이 그것이다. 출세와 교육, 도덕과 종교 등 전통적인 백인 중산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거부하고 반체제적 개인주의 성향을 보였던 이른바 비트족(beatnik)’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이 전례 없는 전후 미국 사회의 소비 열풍 속에서 모터사이클 여행을 하고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며 음탕한 춤을 추면서 기성의 금지된 질서에 도전하게 된 배경은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의 추구란 고작 출세와 성공을 위한 규칙적이고 순응적인 삶의 자세를 강요받는 것일 뿐이라는 실망과 허무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후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미국 사회가 강요하는 순응의 미덕에 의지해봤자 기대할 만한 신념 따위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러면 그럴수록 청년들에게 미래도 희망도 없어보였다.

 

2차 대전의 전쟁 영웅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집권한 1950년대의 미국은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원자폭탄보다 더 강력한 수소폭탄 개발을 추진하고 매카시즘에 의한 사상 통제를 강요하는 가운데 소득 재분배를 통해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격차를 크게 줄이면서 풍요로운 소비사회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 가까웠음에도 짐 크로우법(Jim Crow Law)에 따른 흑인과 백인의 분리에 의한 차별정책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흑인의 경제 수준 역시 나아질 것이 없었다.

 

이때 백인 사회에 동화될 수 없었던 흑인들은 그들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을 만들어냈다. 흑인 특유의 블루스에 리듬을 붙이고(리듬 앤 블루스), 전통 재즈 스타일인 부기우기를 열정적인 리듬 앤 블루스와 결합시켰다. 백인들만의 음악으로 간주되던 경쾌한 컨트리 뮤직에 흑인의 블루스를 결합시키면서 돌려서 말하는 방식을 버리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유희와 섹스에 대해 노골적으로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로큰롤 뮤직이 등장하자마자 흑인이건 백인이건 할 것 없이 모든 청년들이 열광했다.

 

그런 의미에서 로큰롤은 흑인과 백인, 세속과 신성의 경계를 허무는 사회 통념의 붕괴를 상징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춤에 대한 열정을 이끌어내면서 수많은 남녀 청년들이 부비부비 해댔다. 그 때문에 기성세대들은 성적 쾌락을 암시해주는 로큰롤 뮤직이란 그저 저속하고 불경하며 부도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로큰롤은 지금까지 가장 완벽하고 안전하다고 간주되었던 견고한 세계를 단박에 흔들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가스펠을 블루스로 바꿔 부른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신성모독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3. 미치광이들의 광기냐, 새로운 것의 창조냐

 

영화-폭력교실(1955)
영화-폭력교실(1955)

 

Bill Haley- Rock Around the Clock
Bill Haley- Rock Around the Clock

 

로큰롤이 세대 간의 격차를 크게 벌려놓은 음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 것은 1955년에 개봉한 영화 <폭력 교실(Blackboard Jungle)>의 삽입곡이었던 빌 헤일리(Bill Haley)<Rock Around The Clock>이 전 세계에 초대박을 친 사건이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듯한 이 젊은 사운드는 미국 차트 연속 8주의 넘버원 기록을 세우면서 단박에 최초의 10대 청소년들의 찬가가 되었다.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은 10대 비행 청소년들이 잭 다니엘을 병째로 들이키고 나이프로 교사를 위협하며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면서 범죄에 가담하는 모습들은 당시의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강력한 비트와 왜곡된 사운드에 맞춰 쉴 새 없이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부비부비하는 로큰롤 뮤직은 그야말로 미치광이들의 집단 광기처럼 보였지만, 과거 부모 세대들의 전유물이었던 빅 밴드 재즈 음악의 지루함을 전복해버린 그 단순하고 명료한 미학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창조이자 견고한 세계를 유지시켜주었던 모든 경계에 대한 파괴였다.

 

백인의 컨트리와 흑인의 리듬 앤 블루스를 결합한 로큰롤 사운드를 처음 들은 당시의 청소년들은 단 몇 초 만에 마치 사운드에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흑인 가수 척 베리는 블루스 사운드를 가장 전형적인 로큰롤 리듬으로 변형시킨 <메이 블린(Maybellene)>을 불렀고, 백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는 흑인의 창법으로 <하운드 독(Hound Dog)>을 부르면서 골반을 음탕하게 흔들어댔다. 인종적으로 단일하게 구성되어왔던 대중음악 산업계의 불문율이 깨진 것이다. 블루스 음반을 몽땅 사들이는 백인 청소년들은 음반시장의 봉이 되었고, 컨트리 음악에 원시적 블루스를 결합한 스타일을 미친 듯이 불러대는 희귀종 엘비스 프레슬리는 백인들도 춤을 출 수 있는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상업적 잠재력을 발휘하면서 로큰롤 음반시장을 폭발적으로 확대해갔다.

 

로큰롤 뮤직의 외설성은 백인 청소년들을 흑인 문화로 이끈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1970년대 후반 흑인 빈민가의 청소년들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힙합이 현재까지 전 세계의 청년들을 흡수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단정한 스탠더드 팝을 중후하게 불렀던 프랭크 시나트라가 로큰롤을 가리켜 지구를 범죄로 물들일 전쟁 같은 음악이라고 폄하하면서 경멸감을 감추지 않았던 일이나, 1992년 서태지가 바닥을 질질 끄는 바지를 입고 랩 댄스를 추면서 흑인 힙합을 처음 한국에 선보였을 때 선배 뮤지션들이 가사와 리듬이 없는 이상한 음악이라고 폄하했었던 것처럼 어느 시대나 기성세대는 신세대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세계의 일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볼 때 그것이 미치광이들의 집단 광기나 신성모독처럼 보이는 까닭은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던 일련의 사태를 갑작스럽게 마주친 당혹감에서 기인한다. 그 새로운 것들이 우리에게 보다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줄 것인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말이다.

 

4. 미래에 대한 공포와 희망

 

세기의 대결로 홍보되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결과는 인간에게 인공지능의 상용화에 대한 공포감을 가져다주었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서로 경쟁관계에 놓이게 됨으로써 결국 인간이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케 해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소설과 영화들은 미래 사회의 첨단 테크놀로지가 인류에게 디스토피아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예상적 구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 테크노 네트워크의 양적·질적 변화의 동시적 변혁을 예측하는 개념이듯이, 도래해야 할 미래가 반드시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속단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구글 어스 프로젝트(Google Earth Project)’ 덕분에 도로 정보와 GPS를 통해 내비게이션과 우버·카카오택시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고, 또 한 번 생산된 제품을 각자 필요로 할 때마다 여러 사람이 공유해 쓰는 공유경제 방식을 수평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하루에도 수차례씩 현실-일상세계와 가상-증강현실을 넘나드는 일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들이 현실세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가상공간인 비트세계(bit world)에 몰입하는 중요한 이유는 거기서 보고 듣고 경험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즉 신세대들은 비트세계에서 구한 답을 현실세계로 가져온다. 비트세계에서는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것이 가능하고 또 동료들과 진지한 회의를 진행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여러 사람들과 동시다발적으로 만나 소통하는 것도 가능하다. 침대에서조차 스마트폰을 떼놓지 못하는 데는 비트세계에서 해야만 하는 일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뜻한다. 기성세대들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많은 청소년들이 현실세계보다 가상세계에서 더 평온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만큼 신세대들은 앞으로 증강현실이 강화된 스마트 기기들을 훨씬 더 필요로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이 인간 삶의 전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갈 전 지구적인 흐름이 갖고 있는 비전이다. 여기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보다 더 강화된 첨단 테크놀로지의 소유 방식이 초래하게 될 기술 계급 사회의 문제다. 즉 첨단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데 익숙한 사람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겪게 될 불평등한 상황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 사회를 초래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삶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업데이트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적 선언이라 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신세대들은 미래의 계급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들은 희망 없는 삶을 영위해가면서도 항상 업데이트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성세대들의 부조리에 항거하여 현실세계에서 촛불을 들고 불평등한 사회 문제에 대결하기 위해 가상세계에서 대결하며 과학기술을 잘 이해함으로써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하고 능숙하게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수평적으로 연결하면서 인간 생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진정으로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유일한 세대는 언제나 청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 이혜진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 제6회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음악비평상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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