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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잘 보이는 ‘도덕감정’
보이지 않는 손, 잘 보이는 ‘도덕감정’
  • 외국인
  • 승인 2011.01.0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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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도메 다쿠오 지음, 우경봉 옮김, 동아시아 펴냄)

포스트모던이 유행하던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사상도 새로운 사상가도 출현하지 않았다. 인간은 늘 눈이 확 뜨일 정도의 대사상가나 초일류학자의 출현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는 ‘신자유주의’라는 유일사상이 우리를 압도했다. 세상에는 이 유일사상을 전파하는 책들만 넘쳐났다. 그 사상을 잘 빨아들이도록 만드는 자기계발서가 한때 출판시장을 휩쓸기도 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 유일사상에 대한 인간의 믿음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았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불러온 재앙을 겪은 대중은 이제 자본주의라는 체제와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했다. 극히 소수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같은 책을 통해 사회주의의 부활을 꿈꿨다. 하지만 주류 흐름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 재해석을 통해 21세기의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런 흐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본주의의 게임 ‘룰’이 정의롭고 도덕적이냐는 분석이다. 허리케인으로 모두가 고난을 겪을 때 생활재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하는 것을 처벌하는 일이 과연 정의로운지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 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내거는 핵심 구호 23가지의 거짓과 진실을 명쾌하게 설명한 장하준의 <그들이 말해주지 않은 23가지>가 대표적이다. 자본주의를 ‘수리’해서 쓰자는 이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는 ‘경제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애덤 스미스의 경제사상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오늘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지혜를 찾아보려는 책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했다는 교과서적인 명제 ‘보이지 않는 손’을 우리는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경제활동이 사회 전체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으로 그동안 이해해왔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철폐한 자유경쟁, 즉 자유방임이야말로 높은 경제성장을 불러온다고 말이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장 만능 신화를 불러일으킨 <국부론>에서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은 이 명제를 비판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남긴 두 편의 고전적 저작인 <도덕감정론>과 <국부론>를 연결지어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오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지난해 하반기에 국내 출판계에 거세게 불었던 두 흐름을 통합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처럼 읽혀져 흥미롭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하는 번영의 일반 원리, 즉 물질적 풍요로움을 증진시키기 위해 모든 사회가 따라야 하는 자연적 원리는 분업과 자본 축적이다. 양질의 노동이 경쟁을 통해 싼값으로 풍부하게 제공돼야 사회적 분업이 진보한다. 분업이 확립되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노동생산물로 자신의 생산을 꾸려갈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이를 ‘상업사회’라 불렀는데, 달리 말하면 ‘시장사회’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사회에서 개인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경제활동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부를 축적하려는 개인들의 야심에 의해 시장이 확대되고 자본이 증대하는 바람에 사회가 번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은 하늘 모르고 치솟게 마련이다. 그러니 비판자들의 비난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도덕감정론>에서 말하는 개인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애덤 스미스가 말하려는 핵심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개인은 사회에서 분리된 고립적 존재가 아니라 타인이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 분노 등의 감정에 ‘동감’(공감)할 줄 아는 사회적 존재다. 사회적 존재로서 마음속에 ‘공평한 관찰자’라는 재판관을 둔 개인은 ‘현명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현명함’이란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며, ‘연약함’이란 마음속 공평한 관찰자의 판단보다 자신의 이해관계 또는 세간의 평판을 우선시해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현명함’은 사회질서를 가져오는 역할을 하고, ‘연약함’은 사회를 번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부를 축적하려는 야심이나 경쟁 같은 ‘연약함’은 얼핏 ‘악덕’으로 보이지만, 그런 ‘연약함’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번영이라는 목표 실현에 공헌한다. 물론 ‘보이지 않는 손’이 충분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연약함’은 방임돼서는 안 되고, ‘현명함’의 제어를 받아야 한다.

여기서 ‘연약함’을 이기심으로, ‘현명함’을 정의감(도덕감정)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 이것이 애덤 스미스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의 제약하에서 개인이 경제적 이익을 최대화하려 할 때에야 시장이 제대로 만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결국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 체제는 국가 같은 외부의 공정한 관찰자가 아닌, 개인 내부의 공정한 관찰자에 의해 감시·규제돼야 마땅한 체제인 것이다.

개인이 얼마나 정의감이 넘치고 도덕적이냐에 따라 공정한 시장사회가 이룩된다는 그의 사상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을 한없이 부채질해왔다. 특히 이기심으로 살아온 자들의 집단인 이명박 정부는 수출 주도의 대기업 우대, 비정규직 양산, 부자감세, 줄세우기 교육 등의 정책으로 인간의 이기심만 부채질해왔다. 이런 사회에서 힘없는 자가 인간의 ‘현명함’만을 믿고서 살아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일 확률이 높다. ‘상식’이 통하지 않으면 ‘법’으로 통제해야 마땅하다. ‘현명함’이 충만한 국가권력이 만든 법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명한 정부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명명백백한 지혜만큼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안겨주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여러 차례 개정한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워낙 방대한 저작이라 일반인이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경제사상사와 고전경제학설사의 권위자인 저자는 두 저작의 핵심을 잘 요약해냈다. 이 책은 ‘고전을 리라이팅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야’ 하고 뽐내는 것처럼 보인다.

글•한기호
출판평론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출판 전문 격주간지 <기획회의>와 월간 <학교도서관저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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