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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조커> “내 인생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코미디였네”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조커> “내 인생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코미디였네”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19.11.0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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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부터 화제였다가 개봉 후에도 여러 엇갈린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 영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 고담시에 사는 배트맨의 상대역으로 창조된 조커가 실제 세계의 주인공으로 탄생한 건데,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실적이 꽤 좋다. 북미 개봉 첫 주말, 역대 10월 개봉성적으로 1위를 기록했는데, 지난해 <베놈>의 성적을 갈아치웠다. 이런 순조로운 흥행성적과는 달리 반응은 좀 엇갈리고 있다.

조커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있고 기괴하고 미성숙한 캐릭터인데, 이 조커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와 극의 개연성이 너무도 사실적이고, 그 과정을 관객들이 깊이 공감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했다. 이런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건,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 개봉 당시에 극장 총기 참사로 12명이 사망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례로 미국에서는 극장 입장 시 총기 검사를 했고, 동시에 반대편에선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커>를 둘러싼 여러 평가는 이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파급력, 나아가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에 대해 또 한 번 생각을 하게 한다.

 

여러모로 화제작 한 편이 나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또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가, 이제껏 DC코믹스의 히어로 영화들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이다. <조커>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는데,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제작한 코믹북 원작 영화 중 최초로 이 상을 받았다. 히어로물이나 DC코믹스에 배경지식이 많이 없는 관객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편으론 그동안 코믹스 무비가 가져온 흐름, 그 정통성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일단 조커하면 배트맨의 숙적으로, 우리에겐 그냥 악당정도였다가 히스 레저의 조커에서 크게 변화를 겪었다. <조커>라는 인물에 대해 한번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조커는 기본적으로 그 기원이 광대이다. 광대를 다루는 영화나 만화가 수없이 많지만, 확실히 <다크나이트> 이후의 조커는 광대와는 다른 무언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단연 히스 레저의 공일 텐데, 기존의 조커는 코믹스 원작의 캐릭터인 만큼 유쾌하면서도 만화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히스 레저의 조커는 그런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났다. 히스 레저의 조커가 혼돈의 인물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면, 이번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가장 인간적인 조커가 아닐까 싶다. 이전 조커가 엄청난 악의 힘을 가졌지만 그 악의 기원을 알 수 없었던 희극적인 캐릭터였다면, 영화 <조커>는 들여다볼수록 비극이 느껴지는 사연 덩어리 캐릭터이다.

 

고담시의 가장 그로테스크한 빌런 ‘조커’의 탄생비화를 보여주는 영화 <조커>. 그러고 보면, 이 악당이라는 뜻의 빌런과 웃을 수밖에 없는 조커의 묘한 느낌이 이 영화의 느낌을 잘 설명해준다. 이 영화에서 조커, 아서 플렉은 다른 사람을 웃기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더 많이 웃어 버리는 병을 가진 코미디언이다. 원래 악당 조커는 타인들을 농락하고 조롱해서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채우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조커는 평범한 코미디언 아서 플렉이 수많은 좌절을 겪고 범죄자 조커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언컨대 히어로, 빌런 영화 중 관객들이 가장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뭔가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여기서 생기는 것일 텐데, 관객들이 조커를 보면서 어느 새 그의 수모와 분노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히스 레저를 뛰어 넘을 조커는 없을 것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장담을 했는데, 그걸 호아킨 피닉스가 뛰어넘었다, 아니 뛰어 넘었다기보다 전혀 다르게 표현했다.

호아킨 피닉스는 2000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황제 코모두스를 연기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그녀>에서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2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마스터>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 2017년 린 램지 감독의 <너는 여기에 없었다>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 하면 빠질 수 없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넘나들고 있지만, 결코 가벼운 작품이 없다.

 

<조커>에서도 명장면이라 부를 만한 장면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계단 장면을 이야기한다. 영화 초반부에 아서는 온갖 수모를 겪은 후 힘겹게 계단을 올라 집으로 향하는데, 조커가 된 후의 아서는 춤을 추며 신나게 계단을 내려온다. 비상식적인 사회에서 곧은 이성을 유지하는 건 계단을 올라가는 것만큼 힘들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폭력과 광기에 몸을 맡기는 일은 계단을 내려오는 것처럼 쉬운 일이란 것이다. 그리고 폭력과 광기를 해방하면 해방할수록 아서의 춤사위가 화려해지고 능숙해진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그리고 조커라는 인물에 몰입하게 만드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연출 모두 뛰어난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여러 논란에도 올해 최고의 화제작 가운데 한 편이다. <조커>를 저평가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코미디의 왕>을 레퍼런스로 삼아 그것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점과 조커의 폭력성에 대중이 선동될 가능성과 모방범죄를 우려한다.

그러나 <조커>는 고전을 면치 못하던 DC의 앞길과 빌런 캐릭터의 역사에 새로운 길을 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DC확장 유니버스(DCEU : DC Extended Universe)’와 완전히 분리된 워너의 개별 작품으로 제안한 ‘DC블랙 레이블’로 제작한 <조커>가 성공함으로써 감독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DC만의 흥미롭고 독창적인 단독 영화 시리즈들이 만들어질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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