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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모리스> ― 동성애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조화를 위해서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모리스> ― 동성애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조화를 위해서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19.11.0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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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7일 개봉

 

 

1.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모리스>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제임스 아이보리는 미국 감독이면서 가장 영국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독특한 감독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 1985), <모리스>(Maurice, 1987), 그리고 <하워즈 엔드>(Howards End, 1992) 삼부작이다.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전망 좋은 방>은 유려한 연출로 세계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엠마 톰슨과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하워즈 엔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모리스>는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제임스 아이보리는 전통적인 영국사회를 인간적인 통찰과 깊이 있는 연출로 그려낸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1987년도 작품인 <모리스>가 한국에서 2019년 11월 7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1987년의 경직된 사회문화를 생각한다면, 동성애를 다룬 이 영화가 32년 늦게 개봉되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2017년에 동성애를 그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이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고 평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는 17살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24살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올리버의 결혼으로 결별의 아픔을 겪게 된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각본, 각색, 제작을 담당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그가 연출한 <모리스>는 분위기가 유사하다. <모리스>는 20세기 초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친구로 만난 클라이브 더럼(휴 그랜트)과 모리스 홀(제임스 윌비)의 동성애를 다루며, 육체, 정신, 영혼에 있어서의 억압의 길과 저항의 길이라는 대비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2. 동성애와 육체: 클라이브의 모순과 모리스의 욕망

클라이브는 동성애에 있어서 그리스 시대에서의 정신적, 육체적 사랑은 인정하지만, 현실에서의 육체적 사랑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순을 드러낸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그리스 고전강독에서 교수는 “연동(戀童, 동성연애하는 남자가 상대로 삼는 아이)은 사랑보다는 우정에 가깝다.”라고 말하면서, 동성 사이의 보고 만지고 입 맞추고 싶은 욕구를 부정한다. 이에 대해 클라이브는 “편견으로 지탱되는 미”라며 비판한다. 클라이브는 친구 모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모리스와 연인관계가 된다. 하지만 그는 동성애에 있어서 정신과 영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육체는 개입되지 말아야 한다며 한계를 분명히 한다. 클라이브는 모리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지만 자신의 동성애를 죄악시한다는 점에서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에서 모순을 보인다.

 

모리스는 동성애에 있어서 정신적 사랑뿐만 아니라 육체적 욕망도 솔직하게 표현하지만, 클라이브와 갈등을 빚자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려고 노력한다. 모리스는 클라이브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하지만, 자신도 클라이브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사랑의 기쁨을 만끽한다. 하지만 모리스는 클라이브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키스를 하지만, 저속한 키스로 모든 걸 망칠 거라는 클라이브의 거부반응에 당황한다. 모리스는 클라이브와의 감미로운 만남으로 강의를 빼먹음으로써 대학교로부터 정학처분을 받게 되고, 결국 반성문 제출을 거부하고 자퇴하게 된다. 모리스는 클라이브와는 달리 자신의 육체적인 욕망을 인식하며, 대학교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일탈하게 된다.

 

<모리스>는 고풍스러운 교정의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다가가는 카메라와 멀어지는 카메라를 통해 정신적인 사랑만을 고집하는 클라이브와 육체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모리스 사이의 사랑과 갈등을 드러낸다. 클라이브와 모리스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 점점 다가가는 카메라 움직임과 클로즈업을 통해 두 사람의 친밀한 우정을 그려낸다. 클라이브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모리스를 갑자기 포옹하는 장면에서, 점점 다가가는 트래킹숏에서 흔들리는 핸드헬드로의 전환을 통해 우정에서 사랑으로의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다. 근엄한 종교 미사 장면에서, 클라이브와 모리스의 서로를 훔쳐보는 시선은 대학교의 엄격한 분위기와 두 사람의 동성애에 대한 은밀한 욕망을 대비시킨다. 야외에서 모리스가 클라이브를 애무하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점점 가까이 다가가면서 우정에서 사랑으로의 변화, 친구에서 연인으로의 변화를 서서히 보여주지만, 클라이브의 거부로 카메라가 멀어지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예고한다.

 

 

3. 동성애와 정신: 클라이브의 기만과 모리스의 분열

클라이브는 사랑하는 모리스 홀과 가장 닮은 여동생 에이더 홀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동성애를 은폐하고 이성애를 가장하여 기만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정계의 유력한 인사였던 리슬리 자작이 술집에서 만난 남성과 뒷골목에서 키스를 하다가 풍기문란으로 체포된다. 그는 ‘동물적인 욕망’이라는 비난과 함께 태형과 징역형을 받고 정계에서 퇴출당한다. 법조계에서 정계로의 진출을 꿈꾸던 클라이브는 이 사건으로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냉엄한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동성애로 직업, 가족, 명예 등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하며, 두 사람 사이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결별을 선언한다. 클라이브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에이더와 같은 멋진 여자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모리스의 반대로 에이더가 아닌 다른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클라이브는 초기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외면적으로 동성애의 사랑을 우정으로 가장하지만, 나중에는 사회의 냉엄한 시선에 직면하여 자신의 동성애를 부정하고 이성애를 긍정함으로써 가장을 내면화한다.

 

모리스는 사회의 억압적인 시선, 연인의 기만적인 태도, 자신의 동성애적 욕망으로 고통과 방황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클라이브가 사회의 냉엄한 시선에 두려워하며 정신적인 사랑마저도 거부하며 결별을 선언하자, 모리스는 “가장 두려운 건 너를 잃는 것”이라며 클라이브에게 거친 키스를 한다. 모리스는 결별의 상처를 잊기 위해서 권투를 하며 육체적으로 탈진하고자 하지만, 샤워하는 남성들의 나체를 보는 자신의 욕망의 시선에 스스로 당황한다. 모리스는 주치의를 찾아가 리슬리 경과 오스카 와일드와 같은 병을 앓고 있다고 고백하지만, 주치의로부터 “사악한 환상”, “악마의 유혹”이라는 비난만 받고 치료를 거부당한다. 결국 모리스는 정신과 의사에게 매력적인 여성과의 미래를 그려보는 최면 요법을 받지만, 자신은 “짧은 머리를 원해요.”라며 눈물을 흘린다. 모리스는 정신과 치료로 동성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실패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이성애와 자신이 욕망하는 동성애 사이에서 자아가 분열된다.

 

<모리스>에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냉엄한 처벌로 인한 클라이브의 기만과 모리스의 분열이 시선, 오버랩, 클로즈업으로 표현된다. 리슬리 자작이 선고받고 돌아가는 장면에서, 클라이브의 회피하는 시선이 그의 기만을 예고하며, 자작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사회의 냉담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클라이브가 그리스를 여행하는 장면에서, 그리스 유적 속의 클라이브에 대한 익스트림롱숏은 거대화 사회 앞에 선 나약한 인물을 형상화함으로써, 그리스 시대 동성애에 대한 동경과 현재 자신의 동성애를 부인하는 그의 내면적 갈등을 표현한다. 권투 클럽에서 모리스가 남성들의 나체를 쳐다보는 장면에서, 남성들의 나체(롱숏)와 모리스의 시선 회피(클로즈업)를 편집으로 교차해 보여줌으로써 동성애에 대한 욕망을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의 내면적 갈등을 표현한다. 모리스가 정신과 의사의 최면치료를 받는 장면에서, 모리스와 여성의 함께 있는 모습(상상)과 혼자 슬퍼하는 모리스의 모습(현실)을 오버랩시킴으로써,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에서 분열되는 모리스의 고통을 강조한다. 클라이브와 앤의 결혼식 장면에서, 모리스의 바라보는 시선과 클라이브의 회피하는 시선으로 두 사람의 엇갈리는 사랑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4. 동성애와 영혼: 클라이브의 억압과 모리스의 저항

클라이브는 모리스에 대한 동성애적 사랑과 욕망을 감추고 아내와의 이성애적 관계를 유지하며, 사회의 억압적인 시선을 내면화하여 자신의 동성애적 사랑과 욕망을 억압한다. 클라이브는 모리스가 어떤 여성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얼굴 표정이 굳는다. 하지만 클라이브는 모리스를 만나서 유일무이한 축하할 일이라며 과거를 잊지 않았다는 표시로 손등에 키스를 한다. 그리고 그는 알렉 스커더를 사랑하고 같이 잤다는 모리스에게 그런 쪽의 집착을 벗어버리고 플라토닉 러브를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정작 클라이브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녀의 육체를 만지는 것을 꺼리고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며, 상상 속에서 자신에게 미소 짓는 모리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리워함으로써 허위의 삶을 살게 된다.

 

모리스는 정신적인 사랑을 인정하지만 육체적인 사랑은 인정하지 않는 클라이브를 넘어서서, 알렉과의 관계에서 육체적 쾌락, 정신적 믿음, 영혼의 소통을 경험하게 되면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금기에 대해 저항한다. 모리스는 자신과 알렉의 육체적 관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클라이브에게 자신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다”라고 항변한다. 모리스는 자신에게 호감을 느껴 방으로 찾아온 사냥터지기 알렉과 관계를 가진다. 모리스는 알렉과의 세 번의 성적 경험에서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모리스는 첫 번째 관계에서는 자신의 강렬한 육체적 욕망을 깨닫게 되고, 두 번째 관계에서는 하층계급인 알렉의 일탈에 대해 정신적인 자유를 경험하고, 세 번째 관계에서는 자신을 위해 장래를 희생한 알렉에게 영혼의 소통을 느낀다.

 

<모리스>에서 시선의 일방향과 쌍방향의 대비를 통해 클라이브의 억압과 모리스의 저항에서의 간극을 표현한다. 외모 면에서 클라이브는 아름답고 풍성한 곱슬머리에서 기름을 발라 납작하게 만든 헤어스타일로 바뀌면서 전반부의 자유분방한 태도에서 후반부의 규범적인 태도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앤(아내)→클라이브(남편)→모리스→알렉으로 이어지는 시선의 일방향은 외면의 이성애와 내면의 동성애 사이의 좁혀질 수 없는 간극과 함께 인물들 사이의 엇갈리는 사랑과 욕망을 보여준다. 반면에, 모리스와 알렉의 쌍방향 시선은 자신들의 동성애를 인정하고 계층 차이를 극복하고 사회의 편견에 저항하는 두 인물의 욕망, 자유, 소통을 표현한다.

 

 

5. 동성애의 두 갈래 길: 억압의 길과 저항의 길에서 조화의 길로

<모리스>는 동성애에 대한 클라이브 더럼의 ‘억압의 길’과 모리스 홀의 ‘저항의 길’을 보여주며, 정신과 육체와 영혼에서의 ‘조화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영화이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 사랑을 주장하며 육체적 사랑을 거부하는 클라이브 더럼과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 모두를 원하는 모리스 홀을 대비시킨다. 클라이브는 학문의 영역에서는 정신적, 육체적 동성애를 모두 인정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신적 동성애는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보이다가,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처벌로 인해 자신의 동성애를 부인하고 이성애를 가장하는 기만적 태도를 취하며, 종국에는 상상 속에서만 동성애를 꿈꾸는 억압의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모리스는 자신의 동성애를 인식하고 육체적인 욕망을 표출하여 클라이브와 갈등하게 되고, 동성애를 부인하는 클라이브로 인해 내면과 외면의 분열을 일으키지만, 결국 알렉과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나눔으로써 사회의 금기에 과감하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모리스>의 시대 배경은 20세기 초이며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팽배한 시기라는 점에서 두 남성의 동성애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외부의 강력한 동성애 공포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의사가 동성애를 사악한 환상, 악마의 유혹이라고 비난한다. 인물들은 동성애자라는 것을 겉으로 표명하기 어려운 상황일 뿐만 아니라 동성애를 지속하기도 힘든 상황에 처해, 나중에는 자신의 동성애를 부정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동성애 연인이 성적 영역과 육체적 쾌락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긍정적 인식의 대립으로 갈등한다. 이 시기는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성애의 규범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인물들은 동성애 혐오가 촉발하는 갈등 구조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상황이다. <모리스>는 동성 연인들을 전통적인 사회적 성역할에 맞춰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 짓지 않고 두 남성의 동등한 동성애적 관계로 재현하고 있으며, 인물들의 내적, 사적, 공적 갈등을 통해서 동성애의 정신과 육체와 영혼에서의 조화의 길을 모색하는 영화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학술출판분과 위원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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