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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내 처녀를 가져 주세요
[이주라의 문화톡톡] 내 처녀를 가져 주세요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19.11.10 2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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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대중문화 속 음란소녀 탄생기

 

1. 하이틴 소설 속 도발적 소녀

그런데 미라는 더 중대한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나 처녀라는 게 귀찮아 졌어요.』 『무슨 소리야!』 『생각해 보세요. 낮이나 밤이나 처녀를 짊어지고 다닌다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에요. 누구에게 줘 버리면 시원하겠어.』 『바보 같은 소리!』 『이 선생님이 가져 줘요.』 『무슨 소리야!』 나는 희미한 벤치에 나란히 앉아 미라로부터 한 대 얻어맞은 꼴이 되어 버렸다.

 

1966년 대중 잡지 『명랑』에 실린 이호림의 단편소설 「처녀상」의 한 장면이다. 화자인 나는 순경으로 근무하는 동네에서 할머니를 부양하며 힘겹게 살고 있는 가난한 소녀 미라를 알게 된다. 미라를 몇 번 도와주면서 나는 미라와 친해진다. 미라는 당찬 소녀이지만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 두고 직업 전선에 나가야 했다. 미라가 술집에 나갈 거라는 소리를 얼핏 알게 되었던 그날, 미라는 나에게 와서 자신의 처녀성을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영화 팻걸 포스터: 소녀들의 첫 경험 환상 깨기를 다룬 영화
영화 팻걸 포스터: 소녀들의 첫 경험 환상 깨기를 다룬 영화

놀랍게도 이 작품은 196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였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가정에서의 재생산 노동으로 한정되면서, 현모양처 담론이 힘을 얻고, 순결 이데올로기가 강요되었던 시기다. 물론 순경인 나는 자신의 처녀성을 가져가 달라고 부탁하는 미라를 끝까지 거절하고 그녀의 삶을 묵묵히 보살펴 주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품 속 화자인 나는 여성을 지켜주는 이상적 남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안타깝게도, 나의 이런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그 맹랑한 소녀는 가난으로 인해 바(bar)에 나가서 일을 하게 되고, 금반지 낀 사내에게 자신의 처녀성을 팔게 된다. 처녀성을 잃은 후, 미라는 나에게 와서 자신의 처녀성을 내가 가져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미라는 자신이 마음을 준 사람에게 자신의 처녀성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여자를 아껴주는 것이 사회에서 강요하는 이상이지만, 여자가 적극적으로 나선 경우 남자의 본능에 충실한 것이 오히려 여자를 위해 주는 일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성(性)에 있어서 적극적 여성은 남성이 성적 욕망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성(性)의 자유를 허락받은 남성의 윤리가 순결 이데올로기와 만날 때, 남성들은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자신의 성을 쉽게 풀어놓을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 이 순간 스스로의 성적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음란하고 유혹적이며 적극적인 여성상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팜므파탈이 대표적인 예이다.

성(性)을 자발적으로 즐기는 여성의 모습은 일제 시기 ‘모던걸’에서 시작하여, 1950년대 ‘아프레걸’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생산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중년의 여성들로 설정되었다. 그녀들은 서구의 향락 문화에 젖어 사치와 방탕을 일삼으며 남성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남성 화자의 비판을 받으면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1960년대 대중잡지는 남성들의 성적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정해 놓고, 그 본능을 마음 편히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여성 인물들을 이용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 인물들이 성(性)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했다. 1960년대 중반 방탕한 성윤리로 사회적 주목을 받았던 집단은 십대, 하이틴이었다. 이를 반영하여, 대중 잡지 『명랑』은 하이틴 소설을 기획하고, 중년의 아저씨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음란한 소녀’라는 새로운 인물형을 탄생시켰다.

 

2. 1960년대 성윤리와 남성의 곤혹

1960년대에 접어들어 가부장제가 강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성윤리는 더욱 보수화되었다. 지식인 담론에서도, 대중문화에서도, 순결주의 강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1956년에 창간되어 196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신태양사의 대중 잡지 『명랑』 또한 7S 체제(Sex, Story, Star, Screen, Sports, Studio, Stage)를 내세우면서 선정적인 오락거리를 유통시켰지만, 여성의 성(性)을 다룰 때는 여성의 순결을 가장 중시하였다.

 

잡지 명랑 표지: 1958년 6월호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저작권자 김근수)
잡지 명랑 표지: 1958년 6월호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저작권자 김근수)

독자의 고민 사연을 받아 그에 대한 상담을 진행해 주는 「명랑 인생상담소」 코너에 1965년 8월 이러한 고민이 하나 들어왔다. 당구장 종업원으로 일하는 17세 소녀가 34세 중년 남성에게 몸을 더럽히고 말았는데, 그 이후에도 남자의 요구로 계속 관계를 가지다 보니 임신을 한 것 같아서 걱정이라는 사연이다.

여기에 『명랑』이 보낸 답변은 이렇다. “어린 나이에 남성에게 당한 것은 동정이 가나 왜 반항을 하지 않았나 의심스럽다. 아마 양도 일종의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다.” 여자는 강제로 욕을 보이려는 남자에게 반항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는 그것을 떨치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면 그것은 흔히 요즘 십대들이 가지는 성적 호기심 때문에 여자 스스로가 그 상황을 즐긴 것이라고 밖에 판단되지 않는다.

최근까지도 남자의 성적 충동은 어쩔 수 없는 본능으로 인정되었다. 남자는 성욕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여자가 순결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국 여자의 순결은 여자가 지킬 수밖에 없다, 라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근대의 시작부터 형성된, 남자는 참을 수 없으니 여자가 참아라, 라는 왜곡된 성 윤리는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그 수명이 꽤 길었다.

각설, 지식인 담론에서는 여성의 순결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상적 남성이라면 여성의 처녀를 보호해 주거나, 처녀를 가진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였다. 이와 달리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면서도, 여성의 순결을 지켜주려고 할 때 생기는 남성 주체들의 곤혹스러운 상황을 포착하였다.

의학박사 이선호는 1965년 6월 「여름은 정열이 솟구쳐도 위험 천만」이라는 기사에서, 여름에 버스에서 추행당하는 N양의 사례에 대해 이러한 충고를 덧붙인다. 당신의 엉덩이가 너무 훌륭해서 어떤 남성이고 충동을 받으니,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반성해 봐라. 결국 추행을 당하는 것도 여자 잘못이란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기사는 추행을 당한 N양의 속마음이라는 것까지 (기자가 상상해서) 보여 준다. “허지만 그로부터가 문제다. 주물르는데 대한 대책을 포기한 N양은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아졌고 끝내는 주물러주는 것이 기분이 좋고 주물르지 않는 날은 무언가 허전한 감마저 느끼게 된다.” 여기에서 N양은 순결을 지키기 위해 남성을 멀리 해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남성이 접촉할 경우에는 그것이 추행일지라도 남성의 손길을 즐기는 존재로 그려진다.

여성들이 사회의 도덕적 요구에 따라 순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게 되면, 본능을 참지 못하는 남성들이 그 본능을 풀 수 있는 대상을 찾지 못하게 된다. 여성의 성욕을 인정하지 않고 억제만 하면, 남성의 성욕 또한 통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능에 충실하게 성욕의 충동을 참고 싶지 않은 남성들은 자신들의 성욕 발산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자 또한 남성의 손길을 즐긴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세상 모든 남성의 손길은 경계해야 하지만 ‘나’라는 남성이 손을 대면, 내가 손을 댄 그 여자는 나의 손길을 즐길 것이라는 논리는, 본능에 충실한 남성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였다. 이 논리는 자유로운 성을 즐긴다고 판단되는 십대들의 성윤리와 합쳐지면서, 남성들과의 성관계를 즐기는 십대 소녀들의 형상으로 구체화되었다.

일제시기 ‘모던걸’이었던 팜므파탈들이 대부분 중년 여성이었고, 1950년대 ‘아프레걸’의 대표자가 여대생이었던 것에 비하면, 1960년대에는 항상 순결함의 표상으로 여겨지던 ‘소녀’의 이미지가 즐기는 여자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3. 순결 이데올로기와 섹슈얼리티의 균열

확실히 1960년대는 순결주의가 강화되고, 보수적 성 담론이 득세했다. 하지만 여성에게 순결이 강조될수록 남성에게도 과도한 책임감이 부여되며 남성의 성(性)도 은밀하게 억압되어 갔다. 1960년대 대중잡지는 1950년대 ‘아프레걸’의 성해방 담론을 그대로 이어 받으며 사회적으로 문란한 주체로 지목되어 비난받았던 십대들의 가벼운 성윤리를 이용하여 남성 주체의 욕망이 자유롭게 발산되는 담론을 계발하였다.

남성 주체의 욕망은 언제나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로 깔린 후, 이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문란한 십대 소녀의 형상을 창조하였다. 이 소녀들은 1950년대 지식인 작가들이 비판하고 계도하려고 하였던 대상이었지만, 1960년대 대중잡지에서는 대중 남성들의 욕망을 마음 편히 펼칠 수 있게 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자유롭게 즐기는 팜므파탈이나 음란소녀 캐릭터는 남성의 시선을 통해 왜곡되며 남성의 보수적이고 왜곡된 성 인식을 강화하는데 기여한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유형의 캐릭터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려는 순결 이데올로기가 남성의 섹슈얼리티마저 어떻게 왜곡시켰는지도 보여준다. 보수적 가부장제의 성 담론은 여성 섹슈얼리티를 억압하였으며, 남성 섹슈얼리티는 동물적 본능으로 왜곡시켰다. 그리고 성 소수자의 존재는 지워버렸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사회의 왜곡된 젠더 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모든 성(性)에 가해진 억압과 왜곡 그리고 외면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 이 글은 『대중서사연구』 24권 3호에 실었던 이주라의 「음란 소녀 탄생기 – 1960년대 대중 잡지 『명랑』과 하이틴 소설」의 일부분을 발췌, 수정한 것입니다.

 

글: 이주라(문화평론가)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한국 근대 대중문학 및 문화 연구.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적 흐름과 감성적 특징에 관심. 명랑을 키워드로 긍정과 낙관의 태도가 한국 문화에 미친 영향과 역사성을 탐구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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