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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대중서사와 판타지(1) - ‘대리만족’은 웹 소설 판타지의 장르적 특징
[기획연재] 대중서사와 판타지(1) - ‘대리만족’은 웹 소설 판타지의 장르적 특징
  • 김준현 l 성신여대 교수
  • 승인 2019.11.29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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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양식은 당대의 거울이다. 판타지 양식의 핵심인 ‘환상적 요소’들은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불만을 간접적이면서도 예리하게 반영한다. 판타지를 통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이유다. 대중서사학회 판타지 연구팀은 이런 관점에서 21세기 판타지 장르의 사회적 맥락들을 읽어내고 이를 르몽드 독자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편집자주>
 

1. 웹 소설과 판타지

2010년대 후반 한국의 대중서사에서 웹 소설이 차지하는 위상은 다소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시장 규모가 4,000억 원을 돌파한 지 오래고, 2019년에는 훨씬 더 성장할 거라는 보도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시장 규모는 독자들에게는 추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좀 더 실감 나게 파악하기 위해, 오늘 살펴볼 작품의 독자 규모를 통해 얼마나 이 장르가 인기와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2018년 최고 인기 웹 소설이라고 손꼽히는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의 경우 웹 소설 대표 플랫폼 중 세 군데에서 연재되고 있다. 2019년 11월을 기준으로 네이버에서의 조회수는 1,500만 정도, 문피아에서는 3,000만 정도다. 카카오페이지에서는 조회수를 공개하지는 않지만, ‘25만 명이 같이 보는 중’이라는 문구로 독자의 규모를 홍보하고 있다.

1화만 본 독자들도 있고, 500화 이상 따라간 독자도 있겠지만, 어쨌든 최소한 100만 명 이상이 이 작품을 읽었거나 읽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일 것이다. 최고 인기작의 예이긴 하지만, 한 작품이 확보한 독자의 규모가 이 정도다. 조회수 1,000만 단위를 넘기는 작품이 한 해에 수십 편이 나오고 있으니, 웹 소설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지 알만하다.

대중들이 즐기는 서사 중 영향력을 발휘하는 장르로 영화, 드라마, 종이책 소설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의 규모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 웹 소설의 인기는, 아직도 ‘저 동네에서는 이 정도 매출이 올랐다더라’라는 식으로, 마치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인식되는 듯하다. 하지만 웹 소설의 독자층이 두터운 데다가, 웹 소설의 장르적 특징은 꽤 빠르게 다른 장르들로 옮아가고 있다. 드라마 등을 보면서 웹 소설의 흐름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2~3년 전만 해도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처리하는 것을 웹 소설에서는 이렇게 처리한다’는 예시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둘 사이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웹 소설 장르 특성의 파급력이 남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웹 소설 판타지’의 장르적 특성을 『전독시』라는 작품을 예로 들어서 독자들과 공유해보도록 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판타지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대리만족’의 양상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웹 소설 판타지와
 ‘대리만족’

웹 소설 작가들은 대개 CP(Contents Provider) 업체와 계약을 맺고, 활동한다. 이 CP 업체가 작가와 플랫폼 사이에서 계약을 대행하고, 또 작품과 관련된 여러 사항들을 관리해준다. 웹 소설 작가들의 ‘기획사’라고 생각을 하면 무엇인지 감이 올 것이다. 필자도 웹 소설 연재를 하기 때문에, 이 업체들과 작품의 전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또 조언, 어떨 때는 통제(!)를 받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CP 업체 편집자와 기획자들이 인식하는 웹 소설 판타지 독자들의 ‘욕망’을 파악하는 일은 상당히 값지고 재미있는 경험이다. 그들에 의하면, 웹 소설 판타지 독자들은 한 마디로 ‘대리만족’을 위해서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다. 사실 웹 소설이 대두되기 전에도, 판타지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기대하며 작품을 접했다. 산업혁명 직후 도입된 최악의 노동환경이 현실과는 대립하는 이상향이나 환상의 세계를 찾아가는 낭만주의적 판타지 서사의 부흥을 가져왔다는 설이 아직도 유력하니 말이다. 논자들은 흔히 2010년대 판타지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 이유를 ‘88만 원 세대’의 대두와 연결하곤 하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대리만족’은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서사에서 관철될까? 무엇을 보고 웹 소설 기획자들은 독자들의 욕망에서 이 키워드를 읽어냈을까? 예전에 비해 독자들의 욕망은 웹 소설에 와서 훨씬 직설적으로 자신들의 호오를 드러낸다. ‘댓글’ 때문이다. 작품의 내용과, 그에 대한 댓글을 비교·분석하면 웹 소설 독자들이 원하는 작품의 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획자들은 작가에게 독자의 욕망을 해석해서 전달한다. 작가들은 그 욕망에 부응할 법한 내용으로 작품을 구성해 발표하고, 그런 작품들은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웹 소설 판타지라는 장르의 ‘규범’이 발생하고 정착된다. 앞에서 소개한 『전독시』는 이 규범을 매우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다른 대중서사 속의 판타지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웹 소설 판타지의 규범적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철저한 주인공 중심의 서사다

 긴 호흡의 대중 서사치고는 특이하게도, 웹 소설 판타지의 서사는 1인칭을 선호한다. 10권 이상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주인공으로부터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특이한 서사인 것이다. 이 정도로 웹소설 독자들의 ‘대리만족’은 주인공에게 집중된다. 달리 말하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환상과 충족은 독자에게는 관심 밖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전독시』는 제목처럼, ‘김독자’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의 시점을 철저하게 따라서 진행된다.

 

2) 주인공은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

『전독시』의 주인공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책의 독자다. 책을 읽었기 때문에, 책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겹쳐졌을 때 일어날 일을 다 알고 있다. 따라서 모든 상황을 자신의 통제하에 놓을 수 있다. 이는 웹 소설 전반에서 일어난다.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면 ‘거짓’이라는 글자가 주인공만 볼 수 있도록 공중에 떠오르거나, 상대방의 지식이나 재산 규모 등을 살필 수 있는 ‘상태창’을 열람할 수 있다. 또 많은 웹 소설 주인공이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해 온 자들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훤히 알고 있으니, 위기에 빠질 리도 없다. 그는 이미 ‘승리’해 있고, 자신의 서사적인 목적을 달성한 상태다. 여기에서 웹 소설에 대한 호오가 분명하게 갈린다. ‘그럼 무슨 재미로 읽느냐?’라는 질문이 흔히 나오는 부분이다. 이것을 ‘비(非)서사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사성은 원래 승리할 수 없어 보이던 자가 승리했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3) 주인공은 경쟁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따라서 경쟁하지도 않는다. 오직 주인공의 적대자들만이 자신이 주인공과 경쟁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주인공은 그와 적당히 상대해주면서, 사실 그를 더 높은 차원에서 농락할 뿐이다. 이는 야구를 예로 들면, 구단의 실력을 겨루는 시합이 아니다. 야구의 룰을 따르는 팀과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팀 사이의 시합이다.

 

 

4) 주인공은 즉각적으로 명성과 보상을 얻는다.

웹 소설 기획자와 작가들은 배트맨, 스파이더맨 같은 가면을 쓴 영웅들은 웹 소설 주인공으로 맞지 않는다는 데 입을 모은다. 주인공이 능력을 통해 보상받는 것은 작품의 후반이 아니라 초반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전독시』의 주인공은 주변 인물에게 즉각적으로 인정받는다. 게다가 작품 속의 최대 라이벌에게도 인정받는다. 그리고 초반부터 많은 추종자를 가지고 존중받는다.

이런 특징들을 통해 웹 소설의 독자들은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경쟁하지 않는 승리’를 꿈꾸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들은 주인공이 보상을 얻는 것을 바라지만, 혈투를 통해서 쟁취하는 서사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서사성은 약해져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부터 주인공이 승리한 이야기는 이야기답지 못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독자들은 그 서사에 열광한다. 판타지는 현실의 불만에 기반한 독자들의 욕구를 대변한다. 지금 진행 중인 판타지의 양상에서 ‘경쟁’과 관련한 장르적 특성이 대두되는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글·김준현
성신여대 문화내러티브 전공 교수. 소설을 쓰고 소설을 연구한다. 특히 소설과 매체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2012년 (주)황금가지에서 주최한 제3회 ZA(좀비 아포칼립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네이버와 문피아 등에서 웹 소설 연재 중이다. 최근 논문으로 「웹 소설 장에서 사용되는 장르 연관 개념 연구」, 저서로 『웹 소설 작가의 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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