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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반복 - 운율 그리고 시간
[최양국의 문화톡톡] 반복 - 운율 그리고 시간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01.06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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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지구는 자전축을 기준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한다.

이 지구의 자전 속도(1,668.94 km/h)는 비행기 속도(약 800~900 km/h)의 거의 두 배나 된다. 자전하는 지구에는 반복을 숙명적으로 안고 익숙하게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존 그레이(John Gray)가 『Mars and Venus Starting over』에서 정의한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자전하는 자신들 행성의 속도와 방향을 유전자로 안으며 그 365일을 보내고 다시 찾아 온 1년을 맞는다.

노오란 황금색을 뒤로 하고 20과 20의 또 다른 반복과 함께 하이얀 순백색으로 찾아온 시간을 바라본다.

 

반복을 위해 스톡홀름과 베를린으로 떠난다

《반복》(反復,덴마크어:Gjentagelsen)은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가 쓴 책으로서, 주요 등장 인물인 "젊은 남자"는 그의 약혼녀와 파혼을 해야 할지 아니면 유지해야 할지를 두고 정신적・윤리적 갈등으로 인해 절망감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진정으로 그녀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을 되살리려는 반복은 매번 실패의 추로 흔들거린다. 그리하여 반복이 목표가 되어 되돌아오는 것 대신에, 상상 속에서 이상적인 모습의 그녀를 사실인 것 처럼 떠올리기 위해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기로 결심하며 스톡홀름으로 떠난다.

실제로 키르케고르는 그의 약혼녀인 레기네 올센과의 약혼을 깨뜨리고 베를린으로 떠난다. 자신의 마음을 장악한 알 수 없는 신성으로서의 주권자인 뮤즈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과거의 잊혀 지지 않는 여행을 되풀이 하려고 향한 베를린 이지만, 처음 베를린에 갔던 그 때의 느낌은 그와 같이 하는 것을 거부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대부분 잠깐의 간극에 불쑥 찾아오는 임의적이고 우연한 사건에 의존하고 있다. 사건의 해결을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 반복은 과거의 느낌이나 행태를 다시 되살리려는 시도이나, 과거의 사건은 재창조될 수 없으며 현재라는 색깔로 그려진 변형된 파편일 뿐이다.

반복에 기초한 기억에 의존한 삶이란,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어떤 사건에 대해 연상하는 감정의 결과나 변화된 조각들일 뿐이며 사실이 아니다.

 

운율을 위해 리스본으로 향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Nachtzug Nach Lissabon)는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가 쓴 소설이다.

 

* 리스본행 야간열차 (2004년,Pascal Mercier), Google
* 리스본행 야간열차 (2004년,Pascal Mercier), Google

주요 등장 인물인 "그레고리우스"는 스위스 베른의 고전 언어학 교사로서 갑작스럽게 출근길에 만나게 된 자살 직전의 빨간 코트를 입은 여인을 통해 접하게 된 ‘포르투게스’, 그 단어의 울림을 통해 미지의 고전적 인물을 찾아 리스본으로 향한다.

우연 같은 필연으로 이어진 사건으로 인해, 평소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꿈으로서만 간직하며 실행하지 못했던 삶 전체에 대한 궤도 이탈로 인해 바뀌는 등장 인물의 행태를 통해, 그 속에 담긴 인간적 삶의 이유와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한다.

임의적이고 우연한 사건에 의존한 반복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위해 현재를 벗어나고 또 다른 나의 자아를 찾고자 할 때, 남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는 과연 같은가? 만약 다르다면 어느 쪽이 진짜 나 자신인가. 자신과 완전히 다른 타인의 행동과 삶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면, 그 이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어떻게 다른가.

그레고리우스가 독백처럼 물음표로 대답 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향해 간 도시로부터 돌아온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내적 동요를 동반하며 향해 간 도시는, 우리 삶의 그릇을 무심(無心)한 바람과 빛나는 햇살에 실려 전하는 얘기들로 반복적으로 비우고 채운다.

향해 갈 때 마다 늘 같은 것이 반복 되지만, 같은 것이 아니다. 그 반복을 통해 스스로 비워 내고 채워 내며 결국은 떠나 온 도시로 다시 돌아 와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가 얘기하듯 '만물은 유전‘하고 있다. 판타 레이(Panta Rhei), 즉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되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되돌아 오는 모든 것은 이전과 같지 않다. 지난해의 1월과 올해의 1월은 반복되지만 다르듯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더 이상 같은 내가 아니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다른 존재이고 그런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타자나 외부적인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대자(對自)적 인간이 아닌 스스로 움직이는 즉자(卽自)적 인간이어야 한다. 단순 반복이며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시간과 자연의 흐름은 실제는 끊임없는 '생성'과 '변화'의 진화계이고 '자유에의 의지'가 경합하는 소용돌이의 장으로서, 우리들의 즉자적인 ‘운율(韻律)’을 요구한다.

우리는 자신의 운율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서 자신이 ‘그려가는 존재'가 됨으로써, 다시 돌아온 도시에서 회귀와 영원을 비로소 얘기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영원 회귀(永遠回歸:Ewig Wiederkehren)를 말한다. “어느 날 낮, 혹은 어느 날 밤에 악령이 너의 가장 깊은 고독 속으로 살며시 찾아들어 이렇게 말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 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는 우리들 삶의 영원으로의 회귀를 위한 실존적 실행 방안으로서 《유고》(遺稿:Nachgelass -ene Fragmente)를 통해 “나의 사상이 가르치는 것, 다시 살고자 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라. 그것이 과제다.”를 전한다.

북두칠성의 별들은 반복적으로 뜨지만 자신의 위치,밝기 및 크기만으로 빛나듯이, 우리는 이데아적인 본질의 흐름속에서 자신만의 의식과 행동을 나타내는 변화와 관계의 세밀화(Miniature)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 세밀화에 의한 물아일체의 의식과 실행이 있을 때 감성과 진리,자연과 정신은 아름다운 동행을 통한 진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여행자는 메타포로 걷는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시간을 나타내는 말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이다. 크로노스는 과거-현재-미래로 연속해 흘러가는 객관적·정량적 시계열적인 선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 개념이며, 카이로스는 인간의 목적의식이 개입된 주관적·정성적 시간으로서 공평하게 주어진 크로노스(Chronos)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횡단면적인 점으로서의 시간 개념이며,결정적 순간이나 기회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우리는 공평하게 주어진 영원회귀 개념의 ‘크로노스(Chronos)’에서 즉자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색깔을 나타내는, 나의 사상과 행동으로서의 ‘카이로스(Kairos)’를 그려가는 시간의 매듭들을 사랑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삶에는, 반복되는 회귀의 개념에 운율이 있는 은유(Metaphor)가 있어야 한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이탈리아 어느 작은 섬의 망명 온 유명시인 파블로 네루다(Neruda)와 그에게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마리오(Mario)를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 IL POSTINO》는, 칠레 출신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ármeta)가 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원작으로 한다.

 

* IL POSTINO (1996년), Google
* IL POSTINO (1996년), Google

네루다-마리오-베아트리스를 통한 시-바다-자전거에 관련된 언어의, 햇살과 바람과 바다에 관한 은유의 얘기이다. 어느날 우체부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네루다는 너무도 간단하게 대답한다. “시는 메타포(Metaphor)다.”

마리오에게 시는 메타포로서 삶이며 사랑 이었듯,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우리 삶의 '크로노스(Chronos)'도 메타포(Metaphor)로서의 시와 함께 하는 ‘카이로스(Kairos)’여야 한다.

크고 작은 영화속에 사는 우리들은 우리의 시간들을 주제로 쓰는 시인이 되어, 우리들 삶은 시가 되고 시는 삶이 되는 운율이 있는 은유의 시간(詩間)을 가져야 한다.

20과 20으로 다가온 반복의 시(時)와 간(間)이 운율이 있는 은유와 함께 하는 시와 시들로 매듭 매듭 이어져 갈 때, 우리들 영혼의 근육은 더욱 건강한 영원 회귀의 2020 길로 걸어 갈 수 있다.

2020년은 운(韻)과 율(律)이 함께하는 말긋말긋한 은유(Metaphor)의 여행길로서, 그녀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고, ‘웃음’은 ‘홀연히 일어나는 은빛파도’가 될 수 있길 바래본다.

그리하여 빨강(Red),녹색(Green)과 파랑(Blue)으로 찢어져 순장(殉葬)으로 닫혀진 광장의 소음에도, RGB의 보색으로 빛나는 하이얀 순백색의 눈송이가 함박꽃의 음조로 피어나길.

 

~ ( 중략 ) ~

글쎄 여보!

우리는 이 어설픈 극장에서 언제까지

서투른 배우 노릇을 하오리까?

- 신석정, 「비의 서정시」 -

 

 

글: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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