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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삼촌> - 욕망의 사슬과 복수의 순환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삼촌> - 욕망의 사슬과 복수의 순환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0.01.0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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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폭력, 은폐, 표출과 복수

2019년 11월 28일에 개봉한 김형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삼촌>(2017)은 2020년 1월 5일 현재 702명이 관람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심리적 외상으로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없는 잎새(정예진)와 그녀의 삶에 갑자기 등장한 삼촌(강신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잎새 엄마의 강간살인 사건(대과거), 식물인간 잎새의 삶(과거), 삼촌/잎새와 복수(현재)가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이러한 시간의 혼합을 통해 욕망의 폭력, 은폐, 표출과 과거에 대한 복수를 표현주의적인 연출기법으로 보여준다.

 

욕망의 폭력: 금지된 욕망의 위반과 죄의 전가

<삼촌>은 금지된 욕망의 위반과 죄의 전가를 통해 욕망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대과거의 어두운 기억은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조금씩 천천히 진실을 들추어낸다. 잎새 엄마의 죽음과 삼촌의 감옥살이의 연관성을 처음에 암시하다가 반전을 통해 대과거의 숨겨진 진실을 밝혀낸다. 삼촌의 정체는 처음에는 강간살인범으로, 다음에는 잎새 엄마의 강간살인범으로, 마지막에는 강간살인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동네 청년들이 잎새 엄마를 강간하고, 잎새 삼촌에게 그녀를 죽이라고 강요하고, 자신들의 비밀을 밝히지 못하게 그의 성대를 잘라 버린 것이다. 표면상 피해자이자 선인은 사실상 가해자이자 악인임이 드러나고, 표면상 가해자이자 악인은 사실상 피해자이자 선인임이 드러나는 반전이 나타난다.

가해자이자 원한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대한 죄를 잎새 삼촌에게 전가시킨다. 그들은 욕망의 대상인 잎새 엄마를 강간하고 질투의 대상인 삼촌을 살인자와 벙어리로 만든다. 욕망의 폭력성과 가학성으로 인해 강요된 침묵과 죽음은 계속 대과거의 어둠에 묻혀 있었다. 대과거에서 동네 남자들은 욕망의 대상인 잎새 엄마를 강간하고 살해한다. 자신들이 잎새 엄마에게 느끼는 금지된 욕망에 대한 죄를 그녀의 부도덕한 섹시함 때문이라고 덮어씌우며 마녀처럼 처형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등가물이자 질투의 대상인 잎새 삼촌을 살인자와 벙어리로 만들어 자신들의 죄를 뒤집어쓸 희생양으로 만듦과 동시에 침묵을 강요한다. 삼촌은 자신의 형수인 잎새 엄마가 그들에 의해서 살해되지 않도록, 홀로 남은 잎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손을 더럽힌 것이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욕망을 강간이라는 폭력적인 형태로 해소함으로써 죽음을 통해 가학적인 욕망의 폭력성과 강요된 침묵을 보여준다.

 

욕망의 은폐: 금지된 욕망의 변형과 살아있는 시체

<삼촌>은 금지된 욕망의 변형과 살아있는 시체를 보여준다. 과거 장애인 미성년자인 잎새에 대한 금지된 욕망은 충족되지 못한 욕구, 감추어진 시선으로 인해 그녀에 대한 학대, 위선적 태도로 나타난다. 구청직원 김 과장, 동네교회 목사 조강식, 구청 파견 사회복지사 구자영, 동네 학생 패거리 등은 잎새를 둘러싸고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 숨겨진 욕망, 불안한 질투, 거친 위협을 표출한다. 그들은 갑자기 등장한 잎새 삼촌으로 인해 자신들의 욕망과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악의적인 소문을 생성하고 나중에는 극단적인 악행을 하게 된다. 김 과장은 잎새 다리 사이에 손을 넣거나 구자영과의 성행위 소리를 잎새가 듣게 만든다. 조 목사는 과거 잎새 엄마를 강간하였고, 현재 잎새 엄마와 똑같이 생긴 잎새도 강간하고자 한다. 동네 학생 패거리는 욕설, 폭언, 폭력으로 잎새를 학대하거나 성추행한다. 이런 학대는 바로 살아있는 시체인 잎새가 그들의 금지된 욕망을 해소시켜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응징이다.

복수는 대과거와 현재에 걸쳐 가해자와 피해자를 전도시킨다. 대과거에서는 잎새 엄마를 욕망하는 인물들이 잎새 엄마를 강간하고 살해하도록 사주하고, 잎새 삼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 과거에서는 잎새를 욕망하는 인물들이 잎새가 식물인간처럼 사는 것을 방치하고 학대한다. 현재에서는 잎새 엄마와 잎새를 대신해 삼촌이 가해자를 폭행하거나 살해함으로써 처벌한다. 잎새와 삼촌은 합법적인 법의 체계가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와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는 점에서 자신들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삼촌은 대과거와 현재의 죄를 모두 자신이 끌어안고 칼로 자신의 목을 그어 자살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희생물로 바친다. 잎새 엄마와 잎새를 둘러싼 가해자는 목사, 구청 직원, 사회복지사라는 점에서 종교, 국가, 기관 등 사회의 공적 권력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을 드러낸다.

 

욕망의 표출: 가학적인 욕망에 대한 처벌과 대상/주체의 전도

<삼촌>에서는 가학적인 욕망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욕망의 대상과 주체가 전도된다. 금지되고 부도덕한 욕망에 대해서는 처벌하지만, 피학적인 욕망에서 정상적인 욕망으로, 욕망의 대상에서 주체로 변모한다. 삼촌은 잎새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대신 잎새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삼촌은 잎새가 침대 밖으로, 방 밖으로, 집 밖으로 나가게 만듦으로써 잎새에게 물리적 자유를 준다. 과거 잎새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한 목소리의 주인공인 삼촌은 이번에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잎새에게 집에서 벗어나라고 지시한다. 그는 욕망의 대상에만 머물러 있던 잎새가 자신의 육체를 직시하고 피학적인 욕망에서 정상적인 욕망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그리고 삼촌은 잎새에게 간접적인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을 자행했던 인물들에게 똑같은 행위로 되갚아준다.

영화 내면에 깔려 있는 은밀한 근친상간은 스카프와 목소리로 암시된다. 스카프는 잎새 엄마와 삼촌을 연결시키는 죽음과 복수의 상징물이고, 목소리는 잎새와 삼촌을 연결시키는 보호와 탈출의 대체물이다. 삼촌이 동네 청년들의 협박으로 잎새 엄마 목에 걸치고 있던 스카프로 그녀를 살해한다. 그래서 삼촌의 목에 항상 걸려 있는 스카프는 절대 과거의 죽음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자 잎새 엄마에게 표현하지 못한 흠모의 징표가 된다. 대과거에서 삼촌은 어린 잎새가 충격적인 사실을 보지 않도록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죽은 척, 자는 척.”이라고 지시한다. 잎새는 삼촌의 목소리로 식물인간처럼 살게 되며, 마찬가지로 삼촌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식물인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삼촌의 목소리는 잎새의 육체적 생명을 위해서 식물의 삶을 지시하고, 잎새의 정신적 생명을 위해서 동물의 삶을 지시한다. 편집으로 스카프와 목소리의 진실은 마지막에 밝혀지면서 진실의 조각을 맞추어진다.

 

욕망과 삶: 식물같은 삶에서 벗어나 햇빛 속으로

잎새의 정체성은 식물인간(장애인), 괴물, 정상인으로 차례대로 변화한다. 잎새는 처음과 끝에 “전 괴물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움직일 수 있으나 움직이지 않는 식물인간 잎새는 마치 괴물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적으로 식물에서 동물로 변화한다. 영화 전반적으로 식물과 동물의 이미지를 계속 대비시킨다. 첫 장면에서 동물의 시체와 식물의 변화를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동적인 동물은 움직일 수 없는 시체의 형상으로 표현하고, 정적인 식물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그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잎새는 ‘식물’인간이어서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세한 움직임과 감정 표현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변의 아무도 그녀의 움직임에 주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녀를 바라본다. 결국 그녀에 대한 짐승과 같은 포악한 시선을 던진 무리들은 첫 장면에 나온 동물처럼 싸늘한 시체로 바뀌게 된다. “식물같은 삶이 싫다.”며 잎새가 성년이 되면 집을 나가겠다던 삼촌은 죽음으로써 움직일 수 없는 식물로 인생을 마감하는 반면, 잎새는 스스로 문을 기어나가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햇빛 속의 새처럼 동물의 자유를 얻게 된다.

<삼촌>은 전반적으로 플래시백을 통한 편집과 표현주의적 연출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간 구성은 플래시백을 통해 대과거와 현재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며, 과거 잎새 엄마에 대한 강간살인과 현재 잎새에 대한 강간의 욕망이 그려진다. 이때 동일한 배우가 잎새 엄마와 잎새를 동시에 연기함으로써 대과거와 현재에 걸쳐 모녀 사이에 일어난 두 사건의 연관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인물의 주관적인 감정과 심상을 극대화하는 표현주의적 연출 방식으로 세상과 고립된 인물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흔들리는 카메라, 흐릿한 영상, 내면의 심상을 표현하는 화면, 인물의 시점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극단적인 조명과 앵글, 지극히 주관적인 과거 재현, 강렬한 색채의 대비 등 식물인간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잎새의 시점에서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시선을 표현함으로써 세상과 고립된 자의 예리하고 강렬한 내면을 경험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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