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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권의 문화톡톡] 두 교황, 광화문 목사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영화
[성일권의 문화톡톡] 두 교황, 광화문 목사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영화
  • 성일권(문화평론가)
  • 승인 2020.01.12 22: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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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 광화문 목사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영화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창자 속에 있다 해도 그대들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부디

믿기 바란다.”- 올리버 크롬웰

 

종교의 언어는 정치나 언론의 언어와 그 성격이 다르다. 언론과 정치에는 상식과 몰상식, 도덕과 부도덕의 언어적 잣대가 있지만, 종교에는 오로지 복음과 신앙의 언어가 있을 뿐이다. 종교가 특정 정치세력과 언론과의 유착을 노골화하면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종교가 정치에 의해 탄압 받는 곳이 야만 사회인 것처럼, 종교가 특정 정치와 언론의 첨병으로 나서 사회 갈등과 증오를 조장한다면, 더 이상 문명인의 신앙이라 말할 수 없다. 더욱이 한국처럼 다원적인 종교 상황에서 특정 정치와 특정 종교의 유착은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인 전광훈 목사라는 사람은 정치 파벌주의에 얽힌 종교가 어디까지 일탈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가늠하기 힘든 발언을 일삼는다. 개신교단의 가장 큰 연합체인 한기총은 70여개 교단과 단체가 소속되어 있다.

 

문재인이 이 나라를, 국가를 통째로 북한에다가 갖다바치려고 한다. 우리 기독교인이 막아야 한다. 공산주의가 되면 우리 교회도 못다니고 목사님들 강단에서 설교도 못한다. () 이제는 공수법을 만들어서 다시 공산주의를 집행하려고 한다. 저 김정은의 하수인이며 대한민국 간첩의 총 지휘자인 문재인은 더 이상 우리가 용서할 수 없다. 하나님, 문재인 저 X을 빨리 끌어내려 주시옵소서.” - 2019103, 서울 광화문 시위에서

앞으로 10년 동안의 대한민국은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 나는 하나님의 보좌(寶座)를 딱 잡고 살아,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 테 죽어. 내가 이렇게 하나님하고 친하단 말야.” -20191022일 집회에서

 

전 목사의 일탈 탓에 지난 12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기총 해산 요구 청원이 올라온 지 불과 1주일 만에 정부 공식 답변 요건인 ‘20만명 이상 동의를 이끌어내기도 했으나 그의 일탈적 발언은 오히려 더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개신교 목사들은 정치 구호를 하는가개신교 목사들의 냉전적 정치구호 배후에는 하나님이 아닌 극우 정치세력과 보수 언론이 자리하고 있다. 전 목사 같은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극우 세력의 선전 선동구호로 확대 재생산되고, 보수언론은 이를 애국 보수세력의 목소리로 둔갑시켜 유포시키고 있다. 한기총이 이른바 태극기부대라 불리는 극우 보수세력과 함께 자주 주최하는 집회에서는 목사들의 간증이 펄럭이는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 속에 광화문 일대에 쩌렁쩌렁 울린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간증이라기보다는 한국에 자유와 복음을 가져다 준 미국의 성스러움에 대한 간증이다. 간증은 선/, 미국/북한, 하나님/사탄, 보수/진보, 우익/좌익, 애국/반역이라는 식의 종교적 이원론을 동원함으로써 종교의 논리와 정치의 논리를 등가화한다. 간증대회는 북한의 김정일은 사탄이고 남한의 현 정권은 동조자이며, 극우 보수세력만이 미국의 비호 아래 한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선전하는 자리가 된다. 그리고 간증을 위해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부흥사들이 동원된다.

사실, 일부 개신교의 숭미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이 100여 년 전 선교사들을 보내 복음을 전해준 고마운 나라이기 때문일까? 일부 개신교 목사들은 광화문 집회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태극기와 성조기와 유엔기를 흔들어 댄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교육과 의료의 근대화를 이루어주고, 조선인에게 일제 침탈을 견뎌낼 성령을 불어넣어 주고,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해방시켜 주고, 한국전쟁과 공산당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고, 더욱이 박정희를 통해 경제발전을 지원해 주고, 나아가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화까지 시켜주었다. 이런 논리 속에서 그들의 뇌리 속에 기독교=친미이고 반미=사탄의 꼭두각시라는 해괴한 논리가 성립한 셈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 친미가 아니면 사탄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그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목사의 직분을 갖고, 기독교의 이름으로 기독교적 메시아를 매카시즘으로 변질시켜도 좋은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에서는 진지한 역사의식도,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한 성찰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낡은 수구냉전 논리와 비이성적인 색깔론이 있을 뿐이다. 그동안 군사독재 정권을 암묵적으로 용인했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반성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빗대어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오히려 사랑과 화해의 정신에 기초한 말씀을 오독하는 것이다. 의로운 선지자, 애국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이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

<두 교황>은 종교와 종파를 떠나, 종교적 성스러움을 분열과 증오의 언어로 더럽히는 개신교 목사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이 영화는 2013년 베네딕트 16세 교황이 스스로 물러나고 그 뒤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보수적인 전임 교황과 진보적인 후임 교황의 삶을 대비시키지만, 종교에 대한 교조적인 이야기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시선에서 신과 인간, 신념과 타협,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두 교황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고뇌와 아픔을 보여준다. 베네딕트 16세 교황역을 맡은 앤서니 홉킨스와 프란치스코 교황 역의 조나단 프라이스가 보여준 실감나는 연기가 영화적 감동에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도 두 교황 모두가 분열 대신에 통합, 증오 대신에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 감동을 더해준다. 두 교황은 이민, 낙태, LGBT 등 다양한 쟁점을 놓고 보수와 진보세력간의 충돌과 대립, 증오를 안타까워하면서 신앙적 차원에서 사랑과 평화, 화해의 길을 서로 모색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한 사람은 귀족적인 클래식을 좋아하고, 또 한사람은 대중적인 탱고를 좋아할 만큼 일상의 취미도 다르지만, 두 교황은 일상의 삶을 통해 보수적 또는 진보적 사자후가 아닌, 주님의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분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우리에게 일러준다.

 

영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두 번의 고해성사를 통해 가슴 속에 오랜 슬픔으로 간직해온 고뇌를 보여준다. 첫 번째는 청년 시절의 베르골료(프란치스코 교황)가 우연히 만난 사제에게 행한 고해성사다. 이를 계기로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귀던 여자 친구의 원망을 뒤로하고 신부가 되었다. 두 번째는 추기경 시절 사임서 수리를 위해 교황을 찾아간 로마에서 베네딕트 16세 교황에게서 뜻밖의 차기 교황 제안을 받는 자리에서다. 그는 교황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말하며 그동안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말 못할 과거를 고백하고 죄의 사함을 받게 되는 과정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낙태에 반대하고, 세상의 변화에 소극적인 보수 신앙의 상징이었던 베네딕트 16세 교황이 주님을 믿고 기도하지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고 솔직하게 토로할 때엔 너무나 고뇌에 찬 인간적인 모습이어서 더 큰 감동을 배가한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하느님, 꼼짝마,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막말을 퍼붓는 목사라는 사람의 확성기 기계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신년사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결코 그가 한 말이나 행동에만 국한시켜 바라보지 말고, 그 사람이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하느님 약속을 보고 그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사탄’, ‘간첩’, ‘빨갱이라고 소리지르는 천박한 이들과는 전혀 다른 품격의 말씀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흔히 열혈 신자들이 당연시하는 무오류의 위치에 있는 교황일지라도 저잣거리의 보통사람이나 종종 삶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처럼 고뇌하고 참회하며 구원을 갈구하고, 그렇기에 더욱 더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무오류 확신의 정신착란에 빠진 나머지 하나님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광화문목사들에게 이 영화를 강추하고 싶다.

 

글: 성일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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