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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라스트 씬>, 작은 극장의 마지막 표정에 부쳐
[영화평] <라스트 씬>, 작은 극장의 마지막 표정에 부쳐
  • 안숭범(영화평론가)
  • 승인 2020.01.30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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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영화와 대화하는 장소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우리를 극장과 대화하게 한다.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천국>(1988)에서 극장이 폭파돼 주저앉을 때,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2003) 속 극장이 마지막 상영을 끝내고 빗속에 버려질 때, 우린 비로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 자기를 다녀간 자들의 꿈과 사랑, 슬픔과 회한을 침묵으로 증언하며 가만히 그 자리에서 희생되는 주인공. 그들 극장의 마지막 표정 때문에 두 작품은 각별한 자기반영성의 영화가 된다.

어떤 공간이든 시간과 사람이 쌓이다 보면 감정과 기억이 적층된 ‘장소’가 된다. 유일무이한 ‘장소성’은 그렇게 탄생한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사람을 향한 감정과 영화를 향한 열정이 떠다니는 특별한 집을 몇 채씩 소유했던 적 있다. ‘시네코아’, ‘중앙시네마’, ‘씨네코드 선재’, ‘하이퍼텍 나다’가 사라질 때의 상실감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시네필은 그가 본 영화들의 힘으로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만큼 정확한 다른 정의가 있다면, 시네필은 자주 찾는 영화관에서 얻은 영감의 힘으로 내일을 가늠하는 사람들이다. 

소박한 다큐멘터리 <라스트 씬>은 영화와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극장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되묻는다. 그 의미의 요체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 상영하는 사람들, 보러 오는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영화)를 두고 마주칠 때 탄생한다고 말한다. 영화의 주 배경인 국도극장을 고등학생 때부터 일상적으로 찾았다는 남자는 이런 말을 한다. “사는 집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의 집이 필요했어요.” 또 다른 인터뷰이는 “예전에는 ‘나의 국도’라고 불렀어요. 내가 있을 수 있는 곳,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고백한다. 감정을 묻힌 이들 언어 속에서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시설을 갖춘 건물’이라는 의미를 아득히 초월한다.

<라스트 씬>은 폐관이 확정된 ‘국도&가람예술관’의 마지막 한 달을 다룬다. 10년 넘게 그곳에서 일해 온 사람들은 지금 작별을 준비 중이다. 극장과의 작별이란, 결국 대체 불가능한 영화체험 방식과의 작별이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 함께 상영을 준비하던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일이다. 작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드나들던 이들의 열정으로부터 돌아섬이다. 

 

 <라스트 씬>이 가장 긴 시간 주목하는 인물이 있다. ‘국도&가람예술관’를 만들고 지켜온 정진아 프로그래머가 바로 그녀다. 그 공간에 그녀가 쌓아온 시간과 사람, 감정과 기억 덕분에 이 마지막 한 달은 지난한 싸움이 된다. 이제 그녀는 극장 안팎에 흔적으로 남겨진 ‘사람의 손때’를 추억으로 정리해야 한다. 그녀의 인터뷰가 담담하게 진행되던 어떤 순간에 남포동에 위치해 있던 옛 극장들이 떠올랐다. 

국도극장도 그중 하나였으며 부산극장, 대영극장처럼 나름의 특색을 갖춘 극장들이 그 언저리에 즐비했었다. 그런데 대형 멀티플렉스의 공습이 시작되고, (아이러니하게도) 부산국제영화제가 자리잡혀가면서 그곳의 극장들은 하나둘 사라지거나 대대적으로 외관을 바꿔갔다. 일부 극장들은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들어가 과거의 색깔을 찾을 수 없는 공간이 됐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소비의 시대, 속도의 시대를 견디며 산다. 그러다가 ‘소비의 속도’에 적응하는 것 이상을 해내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그 경쟁적인 풍경에 뒤처져 사라진 것들을 충분히 인지하기도 전에(‘애도’는 충분한 ‘인지’가 있고 나서의 일이다) 바뀐 풍경에 적응해버리곤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남포동 시대도 그렇게 사라졌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주 무대가 해운대로 옮겨진 후 불과 몇 년 만에, 남포동 시대에 대한 향수는 소수의 감정적 잔여가 됐다. 최근 ‘남포동 시대’의 아우라를 일부분이나마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있지만 그 방식과 내용이 남포동의 ‘장소성’을 어떻게 되살릴지, 되살릴 수는 있을지 가늠되지 않는다. 

남포동에 있던 국도극장도 ‘인지하기도 전에 사라진 것’의 일부다. 부산 사람이 아니어서 그 시절 국도극장을 가본 경험은 서너 번쯤 되는 것 같다. 화장실을 가려면 꽤 긴 복도를 지나야 했고 오래된 극장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안녕, 용문객잔>에 등장하는 복화극장 내부의 풍경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극장도 광주극장과 국도극장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국도극장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결국 건물은 경매로 넘어갔고, 그 자리에 ‘CGV 남포’가 들어섰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국도극장과의 첫 번째 이별 스토리다. 하지만 국도극장은 예술영화전용관 ‘국도&가람예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부산시 남구 유엔공원 근처의 아담한 공간에 150석 규모로 꾸려진 이 공간은 독립영화, 예술영화 중심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라스트 씬>은 난산 끝에 ‘거듭’ 태어난 국도극장(국도&가람예술관)과의 두 번째 작별, 어쩌면 완전한 이별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먹먹해진 관객들이 있다면, 작은 극장이 오래전부터 보내왔던 편지를 너무 늦게 읽었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라스트 씬>은 ‘국도&가람예술관’을 묵묵히 지켜온 이들에게 닥친 어떤 시한부 선고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관객은 그들의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나눠 가지며, 소멸될 ‘장소성’을 배웅해야 한다. <라스트 씬>은 이 슬픈 순간이 전국 어디에서나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영화 속에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마지막 순간도 담겨 있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도 강릉을 대표하던 신영극장을 독립예술영화전용관으로 되살린 결과물이다. 강릉시네마테크는 고전영화 이상으로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독립영화에 많은 기회를 주면서 이 공간을 운영했었다. 그러나 <라스트 씬> 중반을 지난 어느 씬은 ‘휴관36’ 공고문이 붙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을 보여준다. 

대형자본 위주의 독점적 영화시장 안에서, 취향의 획일화를 낳는 멀티플렉스 환경 아래에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도 싸움을 계속해나갈 수 없었다. 영화를 유행상품으로 소비하게 하는 문화 속에서 소수의 열정은 무기력했다. <라스트 씬>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 붙은 공고문에 ‘폐관’이란 말을 쓸 수 없는 이들의 뜨거움을 담담하게 짚어낸다. 영화엔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그 ‘뜨거움’ 덕분에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휴관한 지 1년여 만에 재개관에 성공한다. 

<라스트 씬>에는 광주극장도 등장한다. 사적인 고백을 하면, 광주는 나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 당시로선 광주 최고의 번화가였던 충장로와 금남로를 돌아다니다가 광주극장의 기이한 외관을 맞닥뜨린 적 있다. 물론 중고생 때 그곳에서 몇 편의 영화를 봤다. 극장 안에 들어가면 일단 자리를 찾아 영화를 보던 무렵이었고, 어디선가 유령이 나올 것만 같은 허허로움이 어른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곳이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이 조선 자본으로 세운 최초의 극장(1935년)이었다는 것을 안 건 한참 후의 일이다. 

대학시절 광주극장이 법정 공방 속에 내몰려 폐관의 위기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다. 그런데 영화평론가가 된 후 방문했을 때에도 광주극장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채, 세월에 변색된 외벽까지 거의 옛날 그대로였다. <라스트 씬>에서 이제는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된 광주극장을 운영하는 이는 작은 바람을 밝힌다. 개관 100주년(2035년)이 되는 해까지 극장을 지키고 싶다는 열망 안에는 그만큼의 걱정이 스며 있었다. 

그래서 <라스트 씬>은 서글픔을 삭이는 듯한 쇼트들로 가득하다. 이 영화야말로 감정과 기억을 머금은 극장이 주인공이다. 우리는 불 꺼진 텅 빈 객석과 희미하게 반짝이는 영사기의 불빛, 벽면에 어른거리는 잔상들이 내뱉는 침묵의 호소를 들어야 한다. 좁디좁은 ‘국도&가람예술관’ 사무실은 주인공의 심장 안쪽이다. 영화전단지, 홍보물들, 티켓들, 배지(버튼)들, 포스터들, 각종 서류들이 가득한 곳, 슬픈 농담을 슬프지 않게 내뱉으며 필름을 오려 붙이는 손들이 있는 곳, 배급과 상영, 홍보와 이벤트를 감당하는 이들이 소소한 기적을 꿈꾸는 곳. 

그 공간에서 일하는 이들이 잘라놓은 필름 뭉치에서 <시네마천국>의 맨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된 토토가 텅 빈 극장에 홀로 앉아 죽은 알베르토가 남긴 필름 더미에 담긴 내용을 확인한다. 수십 년 전, 단지 영사실을 꿈꿨던 어린 토토에게 알베르토는 더 나은 미래를 독려했고, 깊은 상실감 이후를 견딜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해 배려했다. 

중년의 토토가 맞닥뜨린 건, 알베르토와 영사실에서 놀던 시절에는 상영될 수 없었던 키스씬들이었다. 알베르토는 검열로 잘려나간 필름 뭉치, 곧 어린 토토가 항상 궁금해하던 미지의 순간을 간직해 왔던 것이다. 그 영상이 <시네마천국>의 테마곡을 배경으로 우리에게 들이닥칠 때, 우린 우정, 사랑, 이별, 슬픔, 그리움이 머물던 극장과 극장 안 영사실에 인생에 관한 온갖 영감의 원천이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라스트 씬>은 기획된 극적 서사가 없는 다큐멘터리다. 그럼에도 <라스트 씬>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우리가 되새기게 되는 건 ‘인생에 관한 온갖 영감의 원천’으로서 극장의 존재다. CGV가 운영하는 ‘CGV 아트하우스’, 롯데시네마의 ‘아르떼 클래식’, 메가박스의 ‘아트나인’도 존재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수효와 비중, 도시에의 집중성, 차별적인 상영시간대의 문제는 최초의 설립 취지를 어색하게 한다. 2015년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지원사업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과연 사랑스러운 작은 극장들이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된다. 현실에서 우리가 극장에 관한 극적 서사를 실천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 

 

이제는 희미한 기억이 된 하이퍼텍 나다 객석이 생각난다. 의자마다 붙어있던 영화인과 예술인들의 이름들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들의 열정과 도움으로도 하이퍼텍 나다는 그 시절을 버티지 못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객석 의자 뒤에도 독립예술영화를 사랑하는 후원자들의 이름이 붙어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장소성을 부축하는 그들의 이름이 과거의 잔영으로 물러나지 않길 기도할 뿐이다. 

<펑꾸이에서 온 소년>(1983)을 보면서 허우 샤오시엔을 영화로 이끈 여러 계기 중 하나를 직감할 수 있었다. 자전적 성격이 분명한 이 영화의 전반부를 보면, 주인공 소년들이 낡은 극장에 몰래 들어가 루치아노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을 본다. 건달처럼 살던 그들에게, 극장은 가난과 범죄의 굴레 바깥에서 들이치는 작은 빛이었는지도 모른다. 용기 있는 작은 영화관이 내뿜을 수 있는 이 ‘작은 빛’을 나도 알고 있다. <라스트 씬>이 끝난 자리에서 부채의식을 느끼는 것은, 무기력하게 그 ‘작은 빛’ 하나가 꺼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라스트 씬>은 낙관적인 대답이 주저되는 질문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사실상 비영리 성격의 민간독립영화관이 오늘날과 같은 영화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사랑하는 풀뿌리 시민들, 시네필들의 열정만으로 대안적인 극장의 설립과 유지가 가능한가. ‘국도&가람예술관’의 마지막 상영회 장면은 그들 질문 뒤에 따라붙는 무거운 침묵을 안고 있다. 복받치는 마음을 눌러 앉히며 정진아 프로그래머가 내뱉는 마지막 멘트에 빚을 갚을 날이 있길 기도할 뿐이다.  

 

 

글·안숭범

영화평론가, 시인.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BS <시네마천국>을 진행했으며 지금은 영화를 포함한 문화콘텐츠의 인문학적 기획 및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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