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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러브, 사이먼> ― 운명의 상대 찾기와 성정체성 커밍아웃의 여정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러브, 사이먼> ― 운명의 상대 찾기와 성정체성 커밍아웃의 여정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0.02.03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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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사이먼의 두 가지 여정

<러브, 사이먼>(Love, Simon, 2018)은 17살 고3 남학생인 사이먼의 운명의 상대 찾기와 성정체성 커밍아웃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사이먼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블루’의 비밀 메일을 받게 되면서 블루를 찾기 시작한다. 블루는 아버지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며, 인터넷 유포에 대한 불안으로 겁을 먹는다. 사이먼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남학생들, 즉 브람, 라일, 칼, 마틴 등에서 블루를 찾기 위해 애쓰지만, 그들이 이성애자라는 사실에 실망한다. 이 과정에서 용기를 얻어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격려를 받는다. 마침내 사이먼은 브람이 블루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둘은 만나서 사랑을 확인한다. 이 영화는 블루를 찾는 게임과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된다.

 

‘블루’ 찾기: 운명의 상대를 찾아 나서는 게임

<러브, 사이먼>은 ‘블루’라는 운명의 상대를 범인으로 설정하여, 마치 탐정영화처럼 블루를 찾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다루고 있다. 사이먼은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네 명의 남학생들, 즉 할로윈 파티를 주최한 브람, 와플하우스 알바생 라일, 호감을 느낀 칼, 친한 친구 마틴을 차례대로 블루가 아닐까하고 의심해 본다. 브람이 여자와 함께 침대에 있는 모습을 발견하여 오인하는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사이먼은 오레오 취향이 같고 쾌활하여 처음부터 마음에 둔 브람이 블루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뻐한다. 사이먼이 블루를 찾기 시작하면서 마치 탐정처럼 혼자 주변을 살피고 추리하는 모습이 코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이먼의 블루 찾기 게임은 가치값의 변화, 현실/상상의 대비로 재미있게 그려지며, 주인공과 관객의 인지과정이 똑같이 진행되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블루를 찾으면서 가치값이 계속 변화하여 흥미를 갖고 지켜보게 만든다. 사이먼이 블루를 찾는 다섯 번의 과정은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남학생을 블루라고 생각하고 상상하다가(+), 나중에 블루 혹은 게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때 블루라고 추측되는 남학생과의 키스 장면 상상은 게이라는 것을 밝힐 수 없는 현실과 대비된다. 정보인지 측면에서 사이먼과 관객의 인지의 정도와 과정이 똑같이 진행되어서, 관객이 사이먼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하게 되면서 주인공의 심정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동성애와 이성애: 기대와 실망의 엇갈림

동성애가 주플롯으로 설정되어서, 동성애/이성애 사이에서 동성애자 주인공의 기대/실망의 엇갈림을 보여준다. 기존의 남녀 로맨스에서는 여주인공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남자가 게이라는 사실에 실망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남주인공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남자가 게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한다. 동성애/이성애를 기존의 로맨스영화와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관객은 사회에서 다수인 이성애보다 소수인 동성애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맞는 동성애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관객은 그 힘들고 어려운 길을 용기 있게 나아가는 사이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이성애가 보조플롯으로 설정되며, 남주인공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상큼한 결말을 보여준다. 보조축으로 마틴/애비, 닉/레아 등의 남녀 로맨스가 진행되는데, 남주인공인 사이먼은 동성애자라는 점에서 남자 친구들의 이성애 로맨스에서 전혀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여자 친구인 레아는 사이먼이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아서 기대하다가(-), 자신에게 이성애적 관계로 다가오지 않아서 실망하다가(-), 마침내 사이먼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포기하게 된다(+). 레아는 항상 같이 붙어 다니던 사이먼이 자신을 전혀 여자로 봐주지 않아서,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레아는 사이먼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자신에게 이성애적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오히려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매력에 대해서 자존감이 올라간다(+). 그래서 사이먼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결과적으로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해결책이 된다.

 

커밍아웃: 동성애자의 불안과 용기

주인공은 블루를 찾는 과정에서 용기를 얻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한다. 사이먼은 자신의 부모가 미국의 표준적인 규범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기 힘들어 한다. 사이먼의 부모는 전형적인 선남선녀 커플이다. 아버지는 미식축구 쿼터백 출신의 사업가이고, 어머니는 미인대회 출신이다. 사이먼은 블루도 자신처럼 아버지 때문에 커밍아웃을 망설인다는 사실을 알고는 서로의 불안감을 이해하면서 용기를 내게 된다. 사이먼은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의 순서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는 어머니에게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하고, 자랑스럽다는 아버지의 말에 감동하고, 친구들의 이해에 고마워한다. 마침내 사이먼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블루와 만나고 사랑을 확인한 후, 졸업 17일 전에 용기를 내어 인터넷에 커밍아웃하게 된다.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 취향의 문제이지만, 억압적인 학교, 규범적인 부모, 이성애 친구들이라는 현실로 인해 상상의 공간에서만 꿈꾸게 된다. 브람은 아버지로 인해서 이성애자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사이먼이 그 노력의 과정을 보고는 브람을 이성애자로 오인하게 된다. 사이먼도 부모에게 밝히는 것을 가장 힘들어하며 혼자만의 고민에 빠지지만, 블루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해받게 되면서 마음의 문을 연다. 사이먼은 학교의 억압적인 분위기, 부모의 규범적인 분위기, 친구들의 이성애적 분위기 속에서 커밍아웃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서 사이먼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현실에서 밝힐 수 없기 때문에 상상의 공간에서 동성애를 꿈꾸지만, 나중에 블루와의 사랑으로 그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 영화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떳떳하게 밝히는 커밍아웃이 사실상 주인공의 최종적인 목표이다. 이 로맨틱코미디영화는 사랑의 모험을 떠나는 왕자가 공주가 아니라 왕자의 사랑을 얻고, 마침내 그 진실을 밝힐 용기를 얻는 여정이다.

 

로맨틱코미디영화의 변형과 역할의 전도

<러브, 사이먼>은 남주인공의 동성애로 인해서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없다는 점에서 기존의 로맨틱코미디영화의 변형을 보여준다. 보통 로맨틱코미디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자신이 마음에 둔 남자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다. 레아는 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여주인공이지만, 동성애자인 남주인공 사이먼과의 사랑은 실현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남주인공이 자신을 둘러싼 이성애적 환경, 즉 표준적인 부모, 이성애자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하고 운명의 상대인 블루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십대의 동성애를 코믹하면서도 재미있게 다룸으로써, 그 현실의 아픔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그래서 상큼한 이 영화가 개봉되어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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