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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만고의 진리 : 언젠가 거짓말은 밝혀진다 - 마이크 리 감독 <비밀과 거짓말> (1986)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만고의 진리 : 언젠가 거짓말은 밝혀진다 - 마이크 리 감독 <비밀과 거짓말> (1986)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0.02.1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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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성장한 연후에 어머니라고 알고 찿아온 낯선 사람을 어떤 심정으로 맞이해야 할까? 다분히 동양적 감수성을 갖고 있는 이 영화는 깐느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마이크 리 감독은  이미 92년도 깐느 영화제에서 <네이키드>라는 진지한 영화를 통해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감독이다. 현대 영국영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감독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마이크 리는 특히 사회비판의 무게가 다른 감독에 비해  다소 무거운 게 특징이다.

이 영화는 모녀에 관한 영화다. 양녀로 입양되었던 과거를 갖고 있는 젊고 지적인 흑인 혼혈여성 홀텐스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찿아낸다. 친모 신시아는 공장노동자로서 록산느라는 딸을 혼자 힘겹게 키우고 있다. 홀텐스는 어머니를 찿아간다. 신시아는 홀텐스를 보자마자 자신의 반생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눈물과 한숨속에서 알게 된 출생의 비밀. 그 한의 응어리 때문에 신시아는 정신적인 히스테리와 가슴앓이로 시달려왔다. 그 비밀을 조금이라도 알고있는 사람은 신시아의 남동생 모리스 뿐이다. 그는 사진사인데 결혼해서 잘 살고있지만 아이가 없는 탓에 항상 우울하다.

마침내 가족 모임. 엄청난 비밀이 모두에게 공개된다. 신시아의 딸 록산느는 어머니의 비밀이 공개되면서 그 충격을 감당해내기 힘들어 집을 뛰쳐나간다. 또 다른 충격이 펼쳐진다.  모리스의 비밀이 밝혀진다. 모리스가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은 아내의 불임때문. 그것도 모르고 누나 신시아는 아내의 이기심만을 계속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모리스, 아내, 신시아의 비밀과 거짓말이 차례로 밝혀지면서 영화는 새로운 주제로 나아간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쌓인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면서 인간의 나약함, 증오, 회한의 감정을 용서와 화해로 변화시켜 나간다.  

영화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건들면서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간다. 눈물이 있다고 반드시 감동적이란 말이 아니다. 감동은 마이크 리 특유의 사회비판적 시각이 강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가난한 현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비밀을 간직해야만 했던 억울한 사연들.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이 전달된 것이다.  

 

위선의 사진

모리스의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중에 커플의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 한 장 있다. 이 장면은 영화속에 나오는 무수한 사진관 사진 가운데 하나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플래쉬가 터지면서 아주 즐거운 모습으로 찍혀 있다. 이 커플은 바로 1초전 까지만 해도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서로에 대해 증오의 감정을 내세웠던 사이였다. 이 장면 이후 다시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사이 나쁜 커플로 돌아갔다. 이들이 이렇게 즐거운 인상을 지은 것은 불과 100분의 1초도 안 되는 극히 짧은 순간이었을 뿐이다.

 


영화는 인간사 이면을 들여다 본다. 사진사라는 직업 때문에 그는 수 많은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들여다 본다.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은 평소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그게 사진의 의미이기도 하다.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것. 그건 남에게 보여주겠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사진관 사진은 진실이 아니라 허위를 남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 그 흔적이 사진관 사진에 남아있다.

혹자는 그렇게라도 즐거운 표정을 남기는게 낫지 않느냐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생이 그래서야 되겠나. 사진이 본래 그런 것도 아니다. 사진은 그저 기록일 뿐 위선을 기록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아무 의도 없이 찍혀진 일상의 스냅사진이 진짜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사진관사진은 진실을 담지 않는게 정설이다.

사진관 사진은 대체로 가족사진이 많다. 사진관 가족 사진은 일종의 의식처럼 행해진다. 결혼 기념일, 환갑 잔치, 애들 돌잔치, 가족 모임 등등 기억할 만한 날에만 찍는다. 평소 사진을 안 찍는 사람들도 그런 때 옷 차려 입고 사진관 나들이에 나선다. 사진관은 인간 역사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식기구다. 가족사에 있어 없어선 안될 기억의 보존, 재생 장치. 오랜 세월이 흘러 사진첩을 뒤적이며 뻔한 말을 지껄인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어.”

모든 건 흘러간다. 살아 남는 자는 없고 변하지 않는 사물은 없다. 모두 사라지거나 변형되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오직 사진만이 옛날을 증언한다. 서글프고 허무하고 견딜수 없는 고독한 느낌이 밀려온다. 나약한 인간들은 애써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먼 훗날 자신을 안위할 말들을 남겨놓는다. 그게 사진관 사진의 위선적 의미다. 영화의 멧세지는 이 한 장면 사진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두 개의 자아, 간직한 비밀

 

사람들은 비밀을 간직하고 거짓말로 일관한다. 누구나 하나 쯤 간직하고 싶은 비밀이 있고 자신만이 아는 진실이다. 사람은 이중적이다. 신시아(브렌다 블리신)가 입양된 딸 호텐스에게 전화 걸어 동생 토마스 집에서 하는 록산느 생일파티에 초대하는 장면을 보면 이중성을이 보인다. 신시아 모습은 거울에 비춰져 두 개로 분열된다. 그녀 마음 상태를 엿보게 한다.

신시아 마음 한 구석에는 미혼모로서 입양시킬 수 밖에 없었던 쓰라린 과거 딸이 하나 있었다. 호텐스는 양부모가 다 돌아가신 후 생모를 찿았고 신시아를 만난 것이다. 호텐스는 처음 만나서는 따지고 억울함을 호소하고도 싶었다. 왜 자신을 버렸냐고. 만나고 나니 그 모든 분노가 사그러지고 힘들게 살아온 여자로서의 어머니 인생을 동정한다. 신시아 역시 호텐스를 만난 이후 온통 호텐스 생각 밖에 없게 된다. 그녀 분열된 마음 상태를 이 거울 장면이 잘 나타낸다. 분열된 자아는 두 개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 원인은 전화를 하는 대상인 호텐스 때문인 걸 알게 한다.

비밀은 언젠가 폭로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비밀을 갖고 있고 그걸 감추기 위해 거짓말로 일관한다. 영화속 가족모임에서 그 비밀은 우연히 폭로된다. 즐거움의 극단 속에서 인생의 드라마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그동안 억압되었던 진실이 표피를 뚫고 나온다. 그 사실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폭로된 비밀은 설득이 되고 이전 상태보다 더 좋은 행복한 상태로 변화된다. 인생의 드라마는 비극에서 희극으로 변화한다. 영화는 절망속에서 희망을 말하고 싶어 한다.

 

 

글:정재형

동국대교수이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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