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 용변 보는 데 시중 드느라 새벽 2시쯤 나갔더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개들이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일인지 아닌지 불확실한 이 일 저 일 하느라 늦게 나가는 편이다. 겨울 들어 눈 다운 눈을 처음 보았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그 눈이 계속 이어진다.
개나 아이는 눈이 오면 좋아한다. 거지 같은 세상이라도, 혹은 거지 같은 세상이라서, 나도 잠깐 개처럼 아이처럼 눈을 좋아한다. 눈 덮인 세상이 주는 잠시의 평안과 위로는 이 계절에만 향유하는 특권이다. 눈 녹아 더 더러워질 세상은 잠시 잊어도 좋다. 다 아는 걸 굳이 까발릴 열정이 식은지 오래다. 지금의 환한 세상으로 감사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조금 더 번잡해진 세상. 이렇게 눈이 내려 세상을 덮어주면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이 된 것 같다. 길에서 스치는, 마스크를 쓴 여인은 누구나 아라비아의 공주처럼 어여쁘다. 그 위로 소담한 눈이 너울거리고 어디선가 밀린 빨래 하는 거지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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