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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단막극, 실험과 다양성을 위한 장(場) - 《드라마 스테이지》, 《드라마 페스타》
[문선영의 문화톡톡] 단막극, 실험과 다양성을 위한 장(場) - 《드라마 스테이지》, 《드라마 페스타》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0.02.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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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史에서 단막극의 의미

2008년 3월 KBS는 지상파 방송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단막극 프로그램 《드라마 시티》를 폐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드라마 시티》는 1984년 《드라마 게임》의 명맥을 이어오던 단막극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드라마 시티》 폐지 결정과 함께 작가, PD 등 드라마 제작진들은 단막극 폐지 반대 성명서를 내었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시티》는 MBC《베스트 극장》이나 SBS《오픈 드라마 남과 여》처럼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단막극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시청률에서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2008년 그쯤은 드라마 외주제작 시스템이 활성화되며, 스타 작가 및 연출가 중심의 스케일이 큰 드라마들이 증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단막극 프로그램은 방송사 자체 제작으로, 광고비 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다. KBS는 결국 제작비 투자 대비 손해라는 이유로 2008년 3월 26일 《드라마 시티》 방송을 중단했다.

단막극은 각 방송사가 수익률을 우선시하며 정리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의 성장과 함께 해왔던 단막극은 한국 방송 초창기 드라마 제작진, 제작기술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한국 방송극의 기반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막극 프로그램은 신인 작가 발굴과 양성의 기회로, 실험적인 작품을 통한 다양한 드라마 문화 형성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다. 1980년 컬러TV 방송과 함께 막을 올린 KBS《TV문학관》은 깊이 있는 주제와 영상미학적 실험을 하곤 했다. 그 결과 《TV문학관》은 원작 소설을 영상화하며, 오랫동안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MBC 역시 1983년 문학작품 각색으로 시작한 《베스트셀러 극장》에서 1991년 《베스트 극장》으로 변경하면서 공영방송보다 실험적 창작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열의를 다했다. 두 방송사보다는 2001년 늦게 시작하여 짧은 기간 동안 방송한 SBS 《오픈 드라마 남과 여》도 단막극 방송 취지를 충분히 살린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에서 연속극 시청관습이 정착되고 한류 드라마로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드라마의 스토리와 기발한 상상력은 단막극이라는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TV 단막극 프로그램의 부활

2008년 봄, 사라진 단막극 방송은 2년이 지난 후 KBS 《드라마 스페셜》이라는 2부 연작 드라마로 다시 등장한다. 노희경 작가의 <빨간 사탕>으로 시작한 《드라마 스페셜》은 2013년 6월부터 고정시간대로 편성되며 부활하였다. MBC에서도 단막극 프로그램 《드라마 페스티벌》이 방송된다. 단막극이 다시 방송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이들에게는 기쁜 일이지만, 《드라마 스페셜》, 《드라마 페스티벌》은 편성시간의 잦은 이동, 다른 프로그램과의 경쟁으로 위태롭게 유지되었다. MBC《드라마 페스티벌》은 2년의 실험에 그쳤고, KBS《드라마 스페셜》은 2018년부터 매해 10편씩을 방송하는 형태로 변경했지만, 대중적 관심을 끌기는 쉽지 않다. 결과가 어떠하든 단막극을 회복시키는 데 KBS《드라마 스페셜》, MBC《드라마 페스티벌》의 역할은 값진 것이었다. 두 방송사의 단막극 회복의 노력은 타 방송사의 단막극 제작을 추동시키는 힘이 되었다. 2020년 현재 단막극 프로그램은 KBS《드라마 스페셜》 이외 tvN《드라마 스테이지》, jtbc《드라마 페스타》이다. 최근 TV드라마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서 있는 두 방송사의 단막극 프로그램 제작은 우리가 다시 단막극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돌아보게 한다.

tvN《드라마 스테이지》는 CJ ENM의 신인 스토리텔러 지원 사업, 작가(Pen)를 꿈꾸는 이들에게 열려있는(Open) '오펜(OPEN)’의 일환으로 제작된 단막극 프로그램이다. 2017년부터 시즌제로 방송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시즌3까지 진행되었고 각 시즌마다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시즌1(2017.12.~2018.3)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시즌2(2018.12~2019.2)는 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 시즌3(2019.12~2020.2)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다는 의미에서 ‘컬러 오브 라이프’가 키워드이다. tvN《드라마 스테이지》는 1년 단위로 신인작가의 작품을 10개 선정하여 드라마로 제작한다. tvN《드라마 스테이지》는 이름이 알려진 작가 위주의 연속극 체제에서 신인작가에게 드라마 현장의 기회를 열어준다는 데 주요한 취지가 있다. 특히 최근 종영 된 시즌3은 신인작가와 신인연출가의 콜라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작가 뿐 아니라 연출가에도 기회를 준다는 것은 다양성과 실험적인 도전을 폭넓게 수용한다는 열린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시즌3에서는 우리 사회의 일상들을 코미디, 추리, 판타지 등의 다양한 장르, 각 장르에 맞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귀 피흘리는 여자>는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귀에서 피가 나는 병이 생긴 평범한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회관계의 어려움을 제시하였다. <블랙아웃>, <모두가 그곳에 있었다>는 기억과 망각,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라는 주제를 추리적 기법으로 독특하게 풀었다. 트렌스젠더 삼촌을 만나게 된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삼촌은 오드리 햅번>, 퇴직 후 미지급된 월급을 받기 위해 홀로 투쟁에 나선 임산부를 주제로 한 <이의있습니다>는 우리 사회의 세세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시즌3의 마지막 드라마 <통화권 이탈>은 갑자기 발생한 통신마비사태로 인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부간의 균열을 코믹하게 펼쳐놓는 발랄한 작품으로 대중적 호평을 받았다.

 

jtbc《드라마 페스타》는 드라마와 축제의 합성어로 소재, 장르, 플랫폼, 형식에 제한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창작을 지원하는 단막극 프로그램이다. jtbc《드라마 페스타》는 젊은 작가와 연출가에게 자유로운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2017년 시작된 《드라마 페스타》에서 방송된 세 편의 작품 <알 수도 있는 사람>, <힙한 선생>, <어쩌다 18>은 웹드라마로 제작된다. 이는 2017년 10~20대 연령층 중심의 웹드라마 이동 현상을 민감하게 반영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웹드라마라는 실험적 출발로, 단막극의 지양하는 바를 알린 jtbc《드라마 페스타》는 현재 TV 드라마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 젊은 감각의 다양한 작품들을 방영하고 있다. jtbc《드라마 페스타》는 단막극 중에서 긴 호흡이 필요한 총 3시간 분량의 연작 2부작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신인작가에게 폭넓은 기회를 준다는 의미보다 시청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드라마 창작을 지원하고 있다. jtbc《드라마 페스타》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와 섬세한 연출로 대중적 호응을 얻고 있다. 2017년 <한여름의 추억>은 37세 라디오 작가 한여름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돌아본 과거 사랑의 기억들을 섬세하게 그렸다. 사랑의 기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진지함을 감각적인 연출로 제시한 작품이다. 웹툰 <탁구공>을 원작으로 한 2018년 <탁구공>은 대학생과 의문의 노숙자와의 만남을 통해, 나이, 계층을 뛰어넘는 동질감과 감정의 소통에 대한 경험을 주제로 하였다. <탁구공>은 두 주인공의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대화 이외에 범죄 사건을 통한 추리적 기법으로 극적 몰입도를 높이기도 했다. 2019년 <루왁인간>은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당선작 동명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루왁인간>은 50대 중반 회사에서 퇴출위기에 몰린 회사원이 사향 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추출한 커피인 코피 루왁을 만드는 인간이 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한 인간이 사향 고양이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환상을 발랄하게 그리면서도 사회에서 밀려나 생존해야 하는 가장의 비극적 삶을 독특한 연출력으로 소화한 작품으로, 《드라마 페스타》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이어 최근 방송한 2020년 <안녕 드라큘라>는 외면하고 싶은 인생의 문제들을 드라큘라로 비유하여,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겪는 성장을 진지하고 섬세하고 다루었다. 신도시 고급 아파트와 재개발 구역에서 각각 살고 있는 12세의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무너뜨리는 현실, 동성애자 딸의 진실을 외면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의 형식적 관계를 유지하는 딸 등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TV 드라마의 미래를 위해 지켜져야 하는 것

다채널 시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각 방송사가 폐지했던 단막극 프로그램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웹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의 확장과 콘텐츠 수용자의 변화 등이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시급한 현재, TV드라마는 기존의 드라마 관습이나 체제만으로는 먼 미래를 바라볼 수 없다. 최근 방영된 <VIP>(SBS), <블랙독>(tvN), <스토브리그>(SBS)처럼 신인작가 출신의 첫 작품의 성공도 신인작가 발굴, 젊은 작가 양성이라는 단막극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변화의 흐름을 준비하며 TV 단막극 프로그램 제작에 집중하는 현상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부족한 콘텐츠를 채우기 위한 일시적 기획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2008년 3월 《드라마 시티》 폐지 반대에 앞장선 드라마 작가들의 성명서에는 TV 드라마의 미래를 위해 잊지 않아야 할 말이 있다. “돈은 되지 않으나 향후 드라마 발전을 위해 꼭 있어야 할 프로그램의 토양을 지키는 일, 단막극은 결코 멸종시킬 수 없는 가치이다.”[1]

 

글: 문선영

 

사진출처: tvN <드라마 스테이지> 홈페이지 http://program.tving.com/tvn/dramastage

             jtbc <안녕 드라큘라> 홈페이지http://tv.jtbc.joins.com/hellodracula

참고자료: [1] 스포츠조선2008.3.24.기사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ut=1&name=/news/entertainment/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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