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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남산의 부장들>에 대한 몇 가지 질문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남산의 부장들>에 대한 몇 가지 질문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0.02.24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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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민호의 <남산의 부장들>(2020)은 다음의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이 영화는 1979년 대통령 암살사건을 바탕으로 사건이 일어나기 전 40일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1990년부터 26개월간 동아일보에 연재된 [남산의 부장들]을 바탕으로 실재 사건에 기초했으나, 일부 설정은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픽션임을 밝힙니다.”

 

굳이 두 문장으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뭔가 변명 같아서) 부자연스러운데 더 이상한 점. 1979년과 대통령 사이에 이름이 생략되어있다. 이어지는 프롤로그에서는 5.16쿠데타 관련 보도 사진과 함께 자막을 통해 ‘중앙정보부’의 설립과정과 막강한 영향력 그리고 ‘중앙정보부장들’을 ‘남산의 부장들’로 부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자막에서도 ‘한 무리의 군인들’, ‘쿠데타 세력’, ‘박 대통령’이라고 할 뿐, 그 이름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사라진 그 이름 ‘박정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영화 포스터에도 그냥 대통령이다). 심지어 당시의 보도 사진으로 넘어가는 에필로그에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수사에 대해 발표하는 내용에서도 박정희는 이름 없이 대통령으로만 불린다. 한국 현대사에서 암살당한 대통령은 단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이름은 생략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이름을 불경한 맥락에서 호명하는 건 2020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어떤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기 때문일까?

 

2.

이 영화와 동일한 소재를 다루었던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2005) 역시 <남산의 부장들>과 비슷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세부 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 그런 다음 두 영화 모두 ‘픽션’이라고 전제했음에도 영화의 앞부분과 끝부분에 당시의 보도 사진과 다큐 필름을 삽입했다. <그때 그 사람들>은 타이틀 신에서 1979년의 YH 사건과 부마항쟁의 기록 사진에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가수 김윤아의 내레이션을 깔았고, 엔딩 크레디트에 박정희의 장례식 다큐 필름을 넣었다.

그런데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손해배상과 영화 상영금지 청구 소송을 했고(아마도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장례식 다큐 필름에서 보이는 박근혜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법원은 몇 장면을 삭제하면 상영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 결과 이 두 장면은 삭제되었고, 그 자리에 “이 장면은 2005년 1월 31일, 대한민국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의 결정에 따라 삭제되었습니다”라는 자막이 대신 들어갔다. 이 영화의 모든 인물이 이름이 아니라 직책으로 불리기 때문에(예를 들어, 박정희는 각하 또는 할아버지 등으로, 김재규는 김 부장으로 지칭된다), 실재 사건을 기록한 장면을 빼버리면 그 인물들과 사건은 모두 픽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명예가 훼손될 대상도 사라지게 된다. 노무현 정권 시대에 영화 상영을 금지하면 표현의 자유 문제가 걸리고, 그대로 상영하게 두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박근혜가 걸리기 때문에 내려진 신박한 판결인 것 같다.

 

3.

<그때 그 사람들>의 교훈(?) 때문인지 그로부터 15년 뒤에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에 삽입된 보도 사진에서, 알아볼 수 있는 인물은 단 세 사람, 박정희, 전두환, 김재규뿐이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뿐 다른 사람인 것처럼 바꾸지는 않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이름도 김재규는 김규평, 차지철은 곽상천, 김형욱은 박용각, 전두환은 전두혁 등으로 모두 바꾸었다. 따라서 이 영화 앞뒤의 보도 사진과 전두환과 김재규의 실재 목소리가 나올 때 맥락과 잘 맞지 않는 느낌을 준다.

이 영화는 극중 인물에서 실제 이름을 유추하기 어렵게 변형한 다음, 실재 사건이 아니라 갱스터 영화와 그 하위 장르인 한국 조폭영화를 모델로 해서 플롯을 구성했다. 실재 사건에서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부분만을 가져오고 필요한 경우 각색과 변형을 했다. 돈과 권력에 집착하는 보스 박통(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박통은 이발을 하고 있다. 박정희와 그의 이발사가 등장하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2004)가 생각나는 설정이다), 박통에 대한 충성이 부질없다는 걸 깨닫고 배신하는 이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 박용각이 밀려나자 더욱 충성을 맹세하면서 김규평 마저 밀어내려는 경호실장 곽상천, 박용각의 몰락을 보고 충성심이 흔들리면서 혼란에 빠지는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보스를 중심으로 권력투쟁을 벌이는 심복들이라는 구도 속에서 역사의 인물들은 장르영화의 캐릭터가 되고 역사적 사실은 채용되거나 각색되거나 사라졌다. 이 영화의 박통은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주문을 걸면서, 부하의 손에 피를 묻히게 만든다. 그런 다음 자신의 이익에 따라 가차 없이 그 심복을 내친다. 박통은 김규평과 곽상천의 경쟁을 은근히 부추기면서, 김규평에게서 마음의 동요가 엿보이자 “김 부장도 내가 그만두기를 바라나?”라며 떠보기도 하고, “나 다음은 임자가 (대통령) 해”라며 구슬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김규평은 “제가, 각하 옆을 지키겠습니다”라고 하며 충성심을 보인다. 이렇게 박통은 돈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부하들의 권력투쟁을 노회하게 이용하면서 따로 개인 비밀정보대도 운영하는 보스로서 재현된다.

 

반면, <그때 그 사람들>에서 할아버지로 불리는 박통은 18년 동안 장기집권을 한 무시무시한 독재자라기보다 외로운 노인처럼 그려진다. 그는 주로 음담패설을 즐기고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엔카를 좋아하고 엽색행각에 빠져있는데, 이것은 박정희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한 것이다. <남산의 부장들>의 박통은 일본어를 사용하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에서 묘사된 것 같은 장면은 없다. 궁정동 만찬 장면에서, 여자 가수는 엔카도, 실재 그 현장에 있었던 가수 심수봉의 노래(예를 들면 ‘그때 그 사람’)도 아닌, ‘황성옛터’를 부른다. 이때 박통은 옆에 앉은 젊은 여성의 손조차 잡지 않는다. 조직의 보스처럼 박통을 묘사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그런 장면들이 불필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4.

그런데 갱스터/조폭영화의 주요 인물들이 처음 조직을 결성할 때부터 함께 하는 것처럼, <남산의 부장들>의 박통, 김규평, 박용각, 곽상천은 역사적 사실과 달리 5.16쿠데타를 함께 일으킨 것으로 설정된다. 박용각은 워싱턴으로 찾아온 김규평에게 “우리가 목숨 걸고 왜 혁명을 했냐?”고 묻는다. 박용각이 집필한 회고록의 제목은 ‘혁명의 배신자’이다. 나중에 김규평은 박통에게 총을 쏘기 전에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계속 반복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정말 궁금했지만, 김규평도 박통도 침묵할 뿐이다. 인물들이 직접 답하는 대신, 영화는 김규평이 박통의 암살을 결심하는 대표적인 장면을 통해 유추하게 만든다. 김규평이 밤중에 헬리콥터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시위 현장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이다. 이때 불타는 빌딩이 부각되면서, 수행비서는 ‘시위가 부산에서 마산으로 급속하게 번지면서 4.19 때와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보고한다. 김규평의 얼굴이 점점 클로즈업 되면서, 다시 ‘우리가 혁명을 왜 했냐’는 박용각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회 혼란을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장악한 정치군인들이 아니라, 사회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구국의 결단으로 목숨을 걸고 혁명을 일으킨 애국자들로 자리매김한다.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이 장르의 틀 속에서 각색되면서, 쿠데타가 혁명으로 미화되어 버린 것이다.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전두환은 ‘김재규가 대통령의 경호실장에 대한 편애에 불만을 가졌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허욕에 빠져 내란 목적의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발표한다. 박용각이 데보라 심을 통해 ‘박통을 제거하고 권좌를 차지하라’고 부추기는 장면, 미국 대사가 ‘박은 끝났으니 다음을 준비하라’고 말하는 장면 등과 더불어 김규평이 박통을 저격할 때까지의 심리적 갈등을 보면, 전두환의 발표가 오류라고 할 수 없다.

전두환의 발표 다음 장면에서 김재규는 ‘10월 26일의 혁명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회복과 국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고 최후진술을 한다. 김규평이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자’는 곽상천의 의견에 반대하는 장면 등은 이 최후진술과 일치하는 점이 있다. 그가 “각하를 혁명의 배신자로 처단합니다”라고 외치며 두 번째 총을 발사하는 장면도 이 최후진술과 부합되는 점이 있지만, 이것은 5.16쿠데타가 진짜 혁명일 때 성립될 수 있는 설정이다.

 

5.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인물은 비밀리에 박통의 신임을 받는 전두혁 보안사령관이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전두혁은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실존 인물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얼굴을 보면 다른 사람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등장할 때마다 야비한 표정에 은밀한 눈길을 보내는 그는 ‘내가 바로 전두환이야’라고 안달하는 것 같아 코믹한 느낌까지 준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박통의 집무실에 몰래 들어가 캐비닛에서 스위스은행 계좌거래내역서와 금괴 그리고 돈다발 등을 훔친다. 그런 다음 의미심장한 눈길로 대통령의 책상을 바라본다. 이 장면의 자막에서 “대통령 암살로부터 47일 후 신군부 세력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고 설명한다.

다음 장면에서, 박정희의 장례식 사진이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 사진으로 오버랩 되면서 넘어간다. 그런데 역사는 자막의 설명이나 두 장의 사진처럼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쿠데타’와 ‘정권 장악’ 사이에, 그 두 장의 사진 사이에,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광주시민에 대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무자비한 학살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집무실에서 금괴 따위를 훔쳐갈 정도의 비열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의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잔인무도한 인간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전두환은 희화화해도 괜찮은 존재가 된 것처럼 보인다. 반면, 그 이름이 끝내 등장하지 않는 박정희는 여전히 우리에게 어떤 공포를 자아내고 있는 것 같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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