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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 여름의 낯선 손님, <비거 스플래쉬>
[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 여름의 낯선 손님, <비거 스플래쉬>
  • 최재훈(영화평론가)
  • 승인 2020.03.02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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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 스플래쉬' 오리지널 포스터
'비거 스플래쉬' 오리지널 포스터

자연의 풍광과 계절은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의 분위기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캐릭터이다. 모두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계절은 가장 노골적으로 제 속셈을 드러내는 등장인물인 셈이다. 겨울을 거쳐 뜨거운 여름을 관통했던 <아이 엠 러브>와 달리 <비거 스플래쉬>는 뜨거운 여름 한복판으로 계절을 불러온다. 그리고 여름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4명의 등장인물을 엮는다.

감정은 복잡하지만, 스토리는 단순한다. 이탈리아 남부, 판테레리아라는 섬에서 목소리를 잃은 로커 마리안과 다큐멘터리 감독 폴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지중해의 낭만적인 풍광, 개발되지 않는 섬의 풍경, 별장 한가운데 수영장은 야만적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일도 하지 않고 권태에 가까운 휴식의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마리안의 옛 애인이자 프로듀서인 해리가 1년 전 찾았다는 딸 페넬로페와 방문하면서 평온한 일상은 뒤흔들린다.

평온한 삶 속에 들어온 이방인이라는 이물감은 <비거 스플래쉬>의 주요한 화두이다. 해리는 마리안에 대한 노골적인 호감을 숨기지 않고, 마리안보다 훨씬 젊고 예쁜 페넬로페는 자신의 젊은 육체와 폴에 대한 욕정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폴은 해리를 질투하지만, 질투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오히려 마리안과 해리 사이에 오가는 묘한 기류를 모르는 척 한다. 마리안 역시 확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에 가장 솔직한 인물은 페넬로페다. 해리와 부녀 사이라고는 하지만, 그 자체도 확실하지 않고 마리안과 폴과 어떤 인연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가장 완벽한 이방인이다.

 

'비거 스플래쉬' 스틸 컷
'비거 스플래쉬' 스틸 컷

<아이 엠 러브>에서 신흥 귀족이라 불리는 재벌의 이야기를 담은 것처럼 <비거 스플래쉬>에는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예술가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난민을 함께 배치한다. 귀족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비거 스플래쉬>는 신흥 귀족인 척 하는 예술가들을 등장시켜, 그 여린 듯 저열한 속내를 노출시킨다. 목소리를 잃은 마리안은 휴양지에서 우아하게 귀족적인 풍모를 보이지만, 록커였던 시절 그녀는 거칠게 행동하고, 마약을 일삼으며 방탕한 생활을 누렸다. 조용히 속살거리면 말을 할 수 있지만, 마치 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속이는 마리안의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알려진 것처럼 <비거 스플래쉬>는 자크 드레이 감독의 작품 <수영장>(La Piscine, 1969)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가 프랑스 남서부의 여름 휴양지에서 벌이는 은밀하고 위험한 관계를 드러내는 영화인데, 우아하고 귀족적인 스릴러 영화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이다. 부르주와의 숨겨진 욕망과 섹스를 탐구하는 감독으로 불리며 많은 후배에게 영감을 주었다. 프랑스와 오종 감독의 <스위밍 풀>(Swimming Pool, 2003)은 자크 드레이 감독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명백히 <수영장>을 인용했음을 알 수 있는 오종의 작품을 리메이크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원작의 이미지 이외에 대부분을 크게 바꿨기 때문이다.

반면 <비거 스플래쉬>는 등장인물은 물론, 이야기 전개의 큰 줄기를 그대로 가져간다. <비거 스플래쉬>가 원작과 가장 큰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수영장>의 주인공 마리안과 폴이 파국을 맞이하는 것과 달리 <비거 스플래쉬>의 마리안과 폴은 비극적 결말 속에 던져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환하게 웃는 두 사람을 폭우 속에 두며, 해리의 죽음과 상관없이 이들의 삶이 이미 비극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남겨둔다.

 

문화 권력의 허위

수영장은 <아이 엠 러브>에서도 숨겨진 욕망과 비밀이 드러나는 공간이었는데, <비거 스플래쉬>에서 인물들의 욕망은 수면 아래도 아니고, 수면 위로 노골적으로 둥둥 떠다닌다. 안온한 일상 속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던 마리안과 폴, 그리고 그 속으로 파고든 침입자, 해리와 페넬로페는 수영장을 둘러싸고 기묘한 관계로 얽혀 있다. 일상이 뒤흔들린 후, 관계는 변화한다. 마리안과 해리는 이전에 프로듀서와 록스타로 맺어진 연인관계였다. 해리와 페넬로페는 부녀 관계라고 말하지만, 이들이 진짜 부녀관계인지는 의심스럽다. 그들이 부녀가 아니라, 자꾸 연인의 관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해리가 죽은 후 이를 증명하기는 더욱 어렵게 된다.

등장인물 모두는 불편한 욕망을 지니고 살아간다. 말과 욕심이 일치하지 않고, 욕망과 행동이 겉돈다. 사건을 이끌고, 사건을 만들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인물은 해리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뭔가 허세를 부리는 해리의 이미지와 그 허세가 만들어낸 웃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해리의 레스토랑 장면에 베르디의 오페라 <팔스타프>의 음악을 넣어둔다. 팔스타프는 자기가 잘난 줄 아는 허세 가득한 인물이다. 마리안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어떤 이유에서 목소리를 잃었는지 모르지만, 그녀를 다시 세계적인 록 스타로 부활시키려는 해리의 허세는 폴을 불안하게 만든다. 폴에겐 마리안이 자신을 떠나지 않으리란 굳건한 믿음이 없다. 의심하는 순간, 감정은 지옥이 된다.

 

'비거 스플래쉬' 스틸 컷
'비거 스플래쉬' 스틸 컷

실제로 마리안은 폴의 몸에 난 흉터로 페넬로페와의 관계를 의심하지만 폴을 다그치지 않고 질문과 의심을 묻어둔다. 마리안은 과거 관객에게 침을 뱉을 정도로 과격한 성격의 마약중독자였지만 지금은 우아한 휴양객 같은 옷차림으로 살아간다. 실제로 별장에 나타난 뱀을 발견하는 것은 늘 마리안이다. 뱀은 소리소문없이 슬쩍 마리안의 별장으로 숨어들지만, 늘 마리안에게 들켜 쫓겨나고야 만다. 영화 속에서 뱀은 마리안의 욕망, 혹은 마리안을 향한 해리와 폴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리안은 귀족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노동하지 않는 그녀의 삶은 잉여처럼 보이지만, 늘 당당하다. 앞선 영화에서 권력과 계급의 이야기를 녹여내면서도 감독은 귀족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는다. 그는 사람마다 신분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허영이건 값싼 욕망이건 그 사이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수영장과 휴양지 사이를 오가면서 어떠한 노동도 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시간이 남아돈다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파티와 식사, 그리고 섹스, 그리고 질투가 그들이 하는 일의 전부다. 하지만 영화는 라디오와 TV를 통해 계속해서, 난민의 이야기를 덧입힌다.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는 신흥 귀족의 휴양지는 난민들에겐 생존의 공간이다.

그래서 폴이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정서를 만들어 낸다. 그는 난민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 공간에 있지만, 그들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는 법이 없다. 그의 카메라는 늘 자신의 연인 마리안을 향한다. 마리안은 시종 난민 문제에 무관심한 척 하다가, 살인사건 이후 난민들을 범죄자 집단으로 내모는 것에 적극적으로 변한다. 혐오를 감추고 있었지만, 자신의 이익 앞에서 혐오는 똬리를 풀고 이빨을 드러낸다.

살인을 은폐한 후, 마리안과 폴이 짓는 웃음은 그런 점에서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 이외에 어떤 것도 관심이 없다.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은 상관이 없다. 이들은 어쩌면 아버지일지 모르는 해리를 잃은 페넬로페의 상실에도 관심이 없다. 내내 이들은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기 자신의 감정뿐이다. 파국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리안과 폴은 안온한 자신들의 일상을 되찾았다. 침입자 해리를 죽음으로, 페넬로페는 해리의 죽음으로 쫓아내고 나서 마리안과 폴은 서로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인다. 사실 사랑이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감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비거 스플래쉬' 스틸 컷
'비거 스플래쉬' 스틸 컷

인물들의 감정에 동화하지 않고, 3자화 하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이야기 전개는 이전 영화보다 친절한 편이지만, 등장인물의 마음에 가닿는 법을 모르는 카메라는 여전히 관객들의 마음을 모질고도 거칠게 밀어낸다. <비거 스플래쉬>의 인물들은 결코 서로의 마음에 가닿지 않는다. 이를 통해 감독은 소통불능의 시대의 대화법을 보여준다. 혼자만 떠들어대는 해리, 목소리를 잃은 마리안, 궁금한 것을 물어보지 않는 폴, 감춰진 비밀을 끝내 털어놓지 않는 페넬로페는 소통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욕망만 들여다본다. 진심과 진실의 차이, 얕고도 어두운 사람의 맘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실 마음은 깊을수록 투명해지고, 많이 이해할수록 언어는 쉬워지는 법이다. 하지만 <비거 스플래쉬> 속 인물들의 마음은 수영장 표면처럼 일렁거리지만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얕고, 이들의 언어는 깊이가 없이 자신의 이야기만 내뱉는다. 그래서 불투명하고 난잡하다.

 

사진출처_imdb.com_A Bigger Splash

: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2019년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이보명화제 프로그래머, 3회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문화플러스 서울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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