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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신들의 황혼-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Redoubtable>(2017)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신들의 황혼-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Redoubtable>(2017)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0.03.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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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을 사랑한 이기적인 감독

2019년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가 죽었다.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Visages, Villages>(2017)을 기억할 것이다. 사진 작가와 같이 마을을 전전하면서 그 마을 사람들의 사진작품을 남기는 착한 아줌마 바르다. 그녀가 옛 친구 고다르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장면을 생각해 보라. 집안에 있는 거 다 아는데도 고다르는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문도 열어 주지 않고 모른 척 대꾸도 없이 바르다를 돌려 보냈다. 악독하고 잔인한 고다르 같으니. 그때 과거의 정을 생각하며 섭섭해 하던 착한 바르다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바르다는 죽고 고다르는 아직 살아있다.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 영화제목 ‘악당은 잠만 잘 퍼잔다’가 떠오른다. 지독한 이기주의자 고다르의 모습에 영화광들은 잠시 의아했었다.

아녜스 바르다의 죽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영화사에서 신으로 불리는 인물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의 위선을 말하고자 함이다. <아티스트 The Artist>(2011)를 만들었던 미셸 하자나비시우스(Michel Hazanavicius)감독이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Redoubtable(혹은 Godard Mon Amour)>(2017)를 통해 아직 살아있는 인물 고다르를 비판한다. 원작은 안느 비아젬스키(Anne Wiazemsky)의 소설 [일년 후 Un an après]다.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특기는 패로디다. <아티스트>는 헐리우드 무성영화를 패로디한다. 영국영화 ‘007’을 패로디한 ‘117’ 시리즈는 대히트했다. 헐리우드를 패로디해 자국영화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1959)로 데뷔한 고다르를 다시 풍자 패로디로 만든 이 영화의 인연은 우연치곤 얄궂다. 영화의 형식은 고다르 영화에 두루 나오는 기법들이다. 자막, 정면 응시, 롱테이크 평행 트랙킹 숏, 음향과 영상의 불일치, 소위 헐리우드를 해체하기 위해 브레히트식의 소외효과(Fremdungseffekt)로 차용된 고다르 기법을 패로디해 이번 영화는 헐리우드식의 코믹 멜로 장르 영화다. 헐리우드를 전복했던 고다르는 자신의 혁명을 헐리우드언어로 의역한 풍자기법으로 철저히 모욕당한다.

영화의 구조는 과거에서부터 연대기적으로 서술된다. 첫 장면은 <중국여인 La Chinoise>(1967)의 촬영현장이다. 주인공 안느 비아젬스키와 감독 장 뤽 고다르는 사랑에 빠진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흘러 나오는 가운데 연출하는 고다르의 모습이 보이고 안느의 나레이션으로 고다르가 묘사된다. 사랑에 빠진 그녀는 고다르가 영화를 변혁시킨 위대한 점과 젊음, 열정을 찬미한다. 이어 안느의 모습이 나오고 고다르의 나레이션이 흐른다. 사랑에 빠진 그는 안느의 관능미와 자신을 따르는 수동성을 예찬한다. 영화의 과정은 1년을 경과하면서 둘은 사랑에서 혐오로 종지부를 찍는다. 마지막 장면은 <동풍 Vent d'Est>(1970)의 촬영현장에서 고다르 혼자 배우들과의 논쟁으로 곤욕을 치른다. 배우들과 매일 토론을 행하는 특별한 이 영화에서 고다르는 여전히 전제적인 방식으로 임한다는 배우들의 비판에 직면한다. 배우들을 설득시키지 못한 채 불확실한 모순상태에서 그는 정면을 보며 자신을 위안하는 말을 남긴채 끝난다. 이때 안느는 없고 고다르의 모습만 있다. 둘이 즐겁게 시작한 영화는 마지막에 혼자 외롭게 끝난다. 영화는 고다르의 외로움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안느가 바라본 고다르의 위선과 몰락이다. 그는 신의 경지에서 문제적 인간으로 전락한다.

1967년에서 시작하여 1968년으로 관통해 나오는 이 시기는 프랑스 현대사에서 중요한 시점이다. 소위 68혁명으로 불리는 학생, 노동자 시위는 프랑스의 모든 것을 바꿨다. 그 중간에 고다르도 자신이 사회와 혁명에서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분명히 자각했으며 사랑하던 안느 비아젬스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영화는 촬영현장에서 시작하여 촬영현장으로 끝난다. 고다르는 영화가 곧 정치고 혁명이고 싶어했지만, 그는 변함 없는 영화인이었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직업인이었을 뿐이다. 이 영화의 평가는 찬반이 명확히 엇갈린다. 고다르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견해 차이다. 그런 평가를 떠나서 고다르가 영화를 보는 시각을 바꿔놓았고 영화언어와 예술성에 기여한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단지 이 영화를 통해서 그의 인간관계, 사회적 위상, 철학에 대해 의아함이 노출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차별적인 여성관

안느 비아젬스키는 고다르의 두 번째 부인이자 1966년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의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 Au Hazard, Balthazar>의 여주인공으로 데뷔했고 이후 고다르의 많은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다. 그녀는 고다르와 <중국여인>을 찍으면서 주연을 맡았고 결혼하여 1979년까지 부부로 살았다. 그녀는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로 1967년과 1968년 1년간을 다루고 있다. 소설형식의 회고록인 셈이다. <중국여인>을 찍으면서 사랑하고 1년후 <프라우다 Pravda>, <동풍>을 찍으면서 고다르와는 별거상태에 들어갔다. 이혼은 1979년으로 되어 있지만 둘의 사랑은 결혼 일년 후 종지부를 찍었다. 영화는 그들의 사랑이 왜 깨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그린다. 물론 안느 비아젬스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고다르를 비판한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책에서,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한 마디로 고다르는 상종 못할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관점은 안느의 입장에서 서술되다 보니 여성입장에서 바라본 고다르일수 있다. 고다르의 여성관은 어떠했을까. 당시 고다르의 나이는 37세. 비아젬스키는 19세. 무려 18살 차이다. 비아젬스키는 고다르와 별거에 들어간 1971년 ‘343선언’에 참여한다. 343명의 프랑스 여성이 국가에 낙태금지법폐지주장 청원을 했다. 그녀는 생식권리(reproductive rights)운동에 참여하는 의미로 낙태를 공개한다. 당시만 해도 이 운동은 프랑스에서 불법이었다. 생식권리란 개인이 생식을 하거나 생식건강에 대한 판단을 갖는 권리를 말한다. 가족계획, 낙태, 피임, 학교성교육, 생식건강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까지를 포함한다. 형사처벌을 받을수 있는 이러한 시민불복종운동은 이후 1974-75년 보건성장관 시몬느 베이유(Simone Veil)가 제정한 낙태허용법 ‘베이유법(Veil Law)의 모태가 될 정도로 중요한 운동이었다.

고다르는 영화 만드는 것으로 혁명을 논했으나 비아젬스키는 실제 사회운동의 전면에서 투쟁한 여성이었다. 영화에서 고다르는 비아젬스키를 한없이 모독하고 비난한다. 그는 배우에 대해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바보들이라고 비난하며 가만히 받아들이는 형편없는 것들이라고 가차없이 그녀 앞에서 비아냥 거린다. 이때 카메라는 고다르의 말하는 입을 중심으로 얼굴 전체를 정면 클로즈업 시킨다. 고다르 위선의 상징인 지식인의 입을 부각시킨다.

영화는 고다르의 가치관을 은유화시키고 강조하면서 관객들의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고다르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그녀의 누드는 화면을 가득 채우며 마치 누드 모델처럼 그녀의 나체를 강조한다. 그녀는 자주 벗은 채 등장한다. 침대에 누워있거나 휴양지에서 독서를 할 때도 벗고 있다. 실내에서도 상반신을 벗고 있으며 관객들의 시선은 그녀의 나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아자나비시위의 고다르 패로디 기법이다. <경멸 Le Mépris>(1963)에서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의 나체 및 고다르 영화의 무수한 나체를 인용한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시선을 대변할까. 패로디라는 형식을 빌어 또한 고다르의 여성에 대한 의식을 대변한다.

고다르는 자신의 뮤즈인 여배우를 소모시킨다. 비아젬스키와 결혼하기 2년 전 5년간 결혼 생활을 하며 그의 작품에 고정출연했던 여배우는 안나 카리나(Anna Karina)다. 비아젬스키든 카리나든 사랑 보다는 영화를 빛내줄 상품으로 취급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자들의 거래에 의해 상품으로 희생되는 창녀를 그린 <그녀의 생을 살다 Vivre Sa Vie>(1962)는 어쩌면 고다르 자신이 여자를 소비한 관계를 투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혁명과 영화 혹은 혁명영화, 영화혁명의 헷갈림

고다르를 한마디로 쉽게 평가한다는 건 모순되고 복잡한 일이다. 그는 영화인이면서 정치를 주장했고 정치영화를 찍었지만 부르조아의 삶을 살았다. 비아젬스키가 대학에 가서 정치를 공부했으면 한다고 말하며 그의 외할아버지 작가 프랑스와 모리악(François Mauriac)을 드골파라 하여 비판하면서 그녀가 자신과 같은 혁명가를 사랑하는 건 오히려 보수주의를 극복하는 일이라고 합리화시킨다. 그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그날 영화관에 가서 진 켈리(Gene Kelly) 주연의 헐리우드 오락영화를 본다. 도피주의, 자본주의의 첨병이라고 헐리우드영화를 비판하면서 한편으론 부르조아의 삶을 구가한 모순적 인간이다. 그의 삶은 이렇듯 위선적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고다르는 중국의 문화혁명에 고무받아 모택동주의에 경도된다. 그래서 만든 영화가 <중국여인>이지만 중국에서조차 그를 혁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감독으로 폄하했고 영화평론가들은 그 영화가 “부르조아적, 정치적 사춘기에 해당하는 어리석은 영화, 딱하도록 진부한 이야기. 계급론에 대해서만 끝없이 강의하는 지겨운 영화”였다. 극장에서 행사주최자는 꾸벅꾸벅 졸고 일부 관객들은 도중에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고다르는 실패를 자인한다.

68년 노동자, 학생운동의 시위현장에 항상 있었지만 사이비로 낙인 찍혔다. 한 학생은 “고다르 감독은 자본주의의 소비재일 뿐이다. 당신은 코카콜라고 미키마우스다”라고 비난한다. 그는 유태인은 현재의 나치라는 식의 무리한 얘기를 함으로 결국 ‘스위스 모택동주의자 꼴통’이라는 비난에 직면한다. 이때 화면은 네거티브로 변한다. <알파빌 Alphaville>(1965)에서 사용된 네거티브기법을 인용한 것이다. 여기선 고다르 내면의 좌절과 혼돈을 묘사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공산당에서 전향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감독 앞에서 “당신이나 나나 자본주의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나는 좌파의 길을 간다. 당신과 나는 이제 적이다”라고 말하자 베르톨루치는 다음과 같이 욕을 해댄다. “넌 말끝마다 노동자를 언급 하는데 노동자를 모르는 놈이 그런 말을 하니 기가 막힌다”. 영화<동풍>을 찍으며 민주적인 방식의 영화제작이라 하여 아침에 토론하고 오후에 촬영하는 방식을 채택하지만 그는 배우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관습적인 영화처럼 연출했다가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그는 좌충우돌한다. 그에 대한 경멸과 몰락은 권위의 상징인 안경이 벗겨져 사람들의 발에 밟혀 깨지는 장면의 반복으로 코믹하게 연출된다.

 

독선, 자가당착, 위선, 모순의 고다르

이 영화 자체가 모순이다. 지금까지 고다르를 대가로 키워온 나라가 프랑스고 칸이다. 그런 프랑스가 고다르를 비판하다니. 이 영화는 고다르의 다른 측면을 이해하게 한다. 지금까지 고다르가 현대 영화를 새롭게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들이 다 허물어지는 건 아니다. 그가 했던 많은 영화적 실험들이 송두리째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그가 주장 했던 많은 이론들이 현대영화의 토대가 된 건 말할 것도 없다.

단지 고다르는 자기 만이 옳다는 지독한 독선과 지식인으로서의 위선적 도피주의를 갖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된다. 그가 왜 자신의 과거 영화를 부르조아영화라고 스스로 비판하며 새로운 정치영화를 해야겠다고 변신했는지 의아했었다. 영화를 통해 보면 심오한 이유가 아니라 그저 위선이었을 뿐이다. 그는 영화인이 아닌 정치인으로 활약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만을 사랑했고, 끝없이 감독하면서도 영화는 죽었다고 외치는 자가당착과 모순의 인간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더욱 아이러니 하다. 정면을 보며 중얼거리는 고다르의 모습 위로 <네 멋대로 해라>의 테마음악이 감미롭게 흐른다. 그 음악은 곤경에 빠진 고다르를 구원하는 듯 동정적이다.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정치영화보다 초기 고다르의 센티멘탈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고다르의 본래 모습은 어쩌면 비판적 지식인 부르조아 영화감독일지 모른다. 그의 본령은 민중영화, 정치영화감독이 아니다. 나이 80이 넘어서 여전히 고다르는 원점에 서있다. 그동안 거침없던 행동들은 위선이었고 헛된 야망이었다면 오직 첫 영화만이 정직했고 진실했다고 말하는 듯 하다. 아무리 부정해도 말이다. 어리석게도 영화가 지식인을 위함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매체라는 사실을 잊으려 했던 게 아닌가. 

 

 

글: 정재형

동국대교수이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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