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양근애의 문화톡톡] 문을 열고 나가면 다른 세계가 있다 - ‘우주마인드프로젝트’
[양근애의 문화톡톡] 문을 열고 나가면 다른 세계가 있다 - ‘우주마인드프로젝트’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20.03.16 1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로 인해 일상의 풍경이 달라졌다. 정부가 몇 년에 걸쳐 노력해도 이룰 수 없었던 ‘저녁이 있는 삶’을 코로나가 해냈다는 농담이 떠돌고 초중고 개학이 연기되면서 ‘학교란 무엇인가’ 하는 새삼스러운 질문도 하게 된다. 자영업자들의 고충 반대편에는 배달이 폭주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속속 취소되는 각종 축제와 공연 행사들을 대체하는 방구석 문화 경험이 SNS를 달군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이타적 행동’ 뒤에서 자행되는 각종 혐오의 담론들이 주는 피로도 만만치 않다. 가짜 뉴스와 이념적 충돌, 생존과 실존의 괴리를 목도하면서 이 사태가 상수를 위협하는 변수가 아니라 상시의 존재 조건을 묻는 비상시라는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위기라는 말로 포괄되지 않는 사회적 재난을 겪으며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2015년 메르스 사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6년부터 드러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2018년 미투 운동 등을 겪으며 세계의 균열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통치로서의 정치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환멸이 들끓고 그 자리를 일상의 정치가 대신하면서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해체, 재구성 되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언제 이렇게 심해졌는지도 모르는 병의 원인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아니라 ‘그때가 틀렸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라는 자각이 과거를 묻고 현재를 기만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불편하다는 느낌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된 시선이라는 의구심 속에서 판단하는 일, 더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로 위계화 하지 않고 양립 가능한 방식을 상상하는 일, 조직화 된 권력 기반 체제가 아니라 느슨한 연대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지켜내는 일. 그렇게 어렵지만 올바른 길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2014년 이후 연극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작 극장과 프로덕션 연극이 증가하는 가운데 일련의 사건이 도래하면서 ‘사회적 거울’이라는 연극이 과연 어떤 사회를 담고 싶었는지 아프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드라마나 재현의 문법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사회적 이슈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내는 연극이 증가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연극들이 모두 일정한 성취를 이루어 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후’ 연극의 몫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극장이라는 공간에 속박되지 않는, ‘탈극장’ 연극이 던진 질문들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17년 광화문 광장에 설치했던 ‘광장블랙텐트극장’에는 400여 명의 예술가가 총 72개의 공연을 올리면서 동시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연극적 행동의 물꼬를 텄다. 연극인들이 대학로를 벗어나 시민이자 유권자로서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아직 광화문 일대에 남아 연극적 행동의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탈극장’ 연극의 또 다른 성취를 보여준 팀이 있다. 2016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시작해 <잡온론(Job on loan)>(2017), <스피드. 잡스(Speed jobs): 질풍노동의 시대>(2019), <아담스 미스(Adam’s miss)>(2018)로 이루어진 ‘서민경제 3부작’을 선보인 ‘우주마인드프로젝트’가 그 팀이다. 실제 부부 사이인 김승언, 신문영이 쓰고 연출하고 연기하는 이 팀은 만리동 예술인주택, 문화비축기지,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로, DDP 어울림광장, 마로니에 공원, 청계천 광통교 아래,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등 객석, 조명, 음향 등 극장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공간에서 공연을 이어나갔다. 공연 장소가 극장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공연 시간도 자유로웠다. 만리동 예술인주택에서는 해가 지는 시간을 고려해 오후 5시에 공연했고 서울연극센터에서는 4시에, 청계천에서는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인 12시 15분에 공연하는 등, 평일 저녁 7시에서 어느새 평일 저녁 8시로 안착한 일반적인 극장 공연과 시간대를 달리했다.

같은 공연이라도 매회 다른 하나의 공연이 되는 연극의 특징을 생각해볼 때,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의 공연은 그 날 그 때의 날씨와 관람객에 따라 결이 달라지는 유일한 연극으로 존재한다. 자연이 대도구이고 햇빛과 구름이 조명이며 바람이 음향이 되는 이 공연은 돈을 내고 극장에 출입하는 관객이 아니라 무료로 관객을 찾아가는 공연이라는 점에서도 차별화 된다. 영화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연극이 늘 관객개발이라는 문제를 숙제처럼 떠안고 있는 현실에서, 일상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공연 공간으로 만드는 힘을 의미 있게 기록할 만하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잡온론

 

‘서민경제 3부작’은 실제 부부가 생활하면서 느낀 경제적 문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잡온론>에서는 출근과 육아로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는 일을 토대로 빚(loan)에 붙들려 있는 직업(job)의 문제를 짚은 연극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와 『자본론』의 칼 마르크스를 불러와 논쟁시키면서 경제 문제에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비춘다. 만원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직장인이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지친 워킹맘들 뿐만 아니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수치화 된 경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쓸모를 인정 받아야하는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주마인드프로젝트’ 공연에는 언어유희가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아담’한 집을 사는 것이 꿈인 아담은 바코드를 빨리 찍어서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다”는 대사가 주는 재미는 곧바로 현실의 아이러니를 짚는 예리한 송곳이 된다. <스피드. 잡스(Speed jobs): 질풍노동의 시대>에 등장하는 언어유희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일하기 위해 살고 있는 현실을 풍자한다.

일 더하기 일은 투잡

일 더하기 일 더하기 일은 쓰리잡

일 더하기 일 더하기 일 더하기 일 더하기 일은 과로사

일 곱하기 일은 야근, 밤샘 근무

일 곱하기 일 곱하기 일 곱하기 일은 업무폭탄

일 나누기 일은 분업, 컨베이어 벨트

일 분의 일은 60초짜리 초단기 알바

리미트 일이 제로에 가까워질 때 일 분의 일 분의 일 분의 일은 쓸데없는 일이 잔뜩 쌓였네

리미트 일이 무한대에 다가갈 때 일이 끝없이 쏟아지는데 무슨 일부터 해야되는지 모르겠네

일 빼기 일은 해고, 실직

일 더하기 일 더하기 일 더하기... 더 일하기.

여행을 가고 싶어도 도저히 일의 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는 일을 더 많이, 더 빨리 처리해야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다. 성장 위주의 노동 환경 속에서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모순이 생겨난다. 노동을 하고 있지만 노동이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노동을 증명해야한다. 배우처럼 출퇴근 시간이 없고 시간강사처럼 실제 노동 시간과 시급을 받는 노동 시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동을 증명하는 자료는 정작 자신이 하는 노동의 가치를 위축되게 만든다. 두 배우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무대를 종횡무진 한다. 연극이라는 노동, 배우의 몸을 통해 나오는 진짜 에너지가 역동적으로 흐른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스피드.잡스: 질풍노동의 시대
우주마인드프로젝트-스피드.잡스: 질풍노동의 시대

 

<아담스 미스>는 아담 스미스를 다시 불러내며 경제 위주의 성장으로 인해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구분되어온 역사를 짚는다. “제1의 물결 농업혁명! 남자는 농사짓고 여자는 애 낳고 키우고 집안일 하고, 제2의 물결 산업혁명! 남자는 공장에서 일하고 애 낳고 키우고 집안일 하고, 제3의 물결 정보화 혁명! 남자는 아침부터 밤까지 밖에서 일하는 것도 모자라 집에 와서 바깥일 하고 여자는 애 낳고 키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서 일하는 것도 모자라 들어와서 또 집안일 하고”로 이어지는 “찬란한 인류 문명의 발전” 속에서 착취당하며 서로를 적으로 삼게 된 사람들이 조명된다. 이 연극은 무차별 경쟁과 경제력이 곧 권력이 되는 사회 속에서 남자로 살아가는 두려움과 여자로 살아가는 두려움을 포착한다. 힘의 논리를 배우고 폭력의 연쇄로 권력을 이양하는 남자들의 세계,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이 두려운 여자들의 세계가 두 배우의 경험을 통해 전달된다. (이 연극은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 참가작이었다. 당연하게도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익에만 골몰하는 이념이 아니라는 것, 사회의 모든 불평등과 올바른 권리를 위해 싸우기 위해 페미니즘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의 공연에는 악기들이 등장한다. 서민경제 3부작에서 김승언 배우는 기타를, 신문영 배우는 멜로디언을 들고 공연에 음악을 입힌다. 극장으로부터 해방된 장소에서 소리는 공간을 쌓아올리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관객을 집중시키는 음악소리, 움직임 사이를 유연하게 흐르는 악기의 선율은 극을 매끄럽게 진행시키고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극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배우들이 직접 악기 연주를 하기 때문에 음악이 연기의 일부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극장 안과 실제 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의 문제와 경제적 정치적 이슈를 만나게 하는 공연답게 연극의 비언어적 요소들은 언어적 요소들과 이격되지 않고 꽤 조화롭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이상한 나라의 홈리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이상한 나라의 홈리스

 

올해 새로 선보인 <이상한 나라의 홈리스>는 신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월 둘째 주, 주택가 옥탑을 공연장으로 개조해 만든 신촌극장에는 관람 당시 마스크를 낀 몇 명의 관객만이 전부였다. 취소되는 공연들이 생겨나고 있었지만 두 명의 배우는 공연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공연 후에 마련했던 관객들과의 파티는 취소되었지만 어느 주말 관객과 함께 하는 음악회는 예정대로 진행했다. “있는데 없네.”라는 의미심장한 언어유희로 시작되는 이 공연에서 피아노, 기타, 아코디언, 멜로디언, 실로폰, 리코더, 하모니카 등의 악기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이 연극은 하우스푸어, 젠트리피케이션, 재개발난민 등을 다루고 있지만 재미있게도 낙원상가에서 돈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악기들이 악기집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상황을 먼저 보여준다. 신문영 배우는 아코디언을, 김승언 배우는 기타를 연기하는 우화적인 상황 속에서 ‘우주마인드프로젝트’ 특유의 언어유희가 쏟아져 나온다. “가방은 있는데 가망이 없어!”, “레미파솔라시 도를 지나쳤어. 도가 지나치네, 도를 넘어섰어.”, “어! 지금 ‘미’ 칠 뻔 했어!” 등의 말장난들은 결국 “집이 있는데, 집이 없네.”로 수렴된다.

빈 집이 많다고들 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내 집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은 “꿈이 있는데 꿈이 없는” 상황과 병치 된다. 많은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꿈꾸고 있는 팍팍한 현실에서 이러한 상황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연극은 수학의 순열을 이용해 ‘이상적 이사’가 가능한 경우의 수를 따지기도 하고 할베르트의 무한호텔의 예시를 가져와 무한대의 방에서도 방을 구할 수 없는 역설을 꼬집기도 한다. 결국 이사를 왔지만, 아이들은 자라 어린이집에 가고 어른들도 일터로 가고 텅 빈 집만 남게 되는 마지막 장면. 집이 있는데, 집이 없는 아이러니.

탈극장 연극을 추구하는 ‘우주마인드프로젝트’에게 집은 거주처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보다 좋은 조건의 극장을 찾아 공연을 틀 지워야 하는 연극의 고민이 거기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집을 구하기 위해 비상식적인 노동을 하고, 집을 꿈으로 삼아 일상을 갈아 넣는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 좀 더 확장해보면 목적과 수단이 전치된 사태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으면서 묵묵히 달리고 있는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이 떠오른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 공연은 두 배우가 닫힌 문을 열고, 혹은 문을 여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저 너머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오후 4시 3분의 햇살을 만끽하게 된 부부가 만리동 길을 멀리 뛰어가는 장면은 뭉클하고 아름답다. 월드컵경기장의 육중한 철제문을 여는 소리는 날카롭지만 후련하다.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의 커튼을 젖히고 쏟아지는 빛 속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은 말갛고 개운하다. 환원적인 이 세계의 구조에 갇힌 우리는 문을 여는 방법을 잊은 채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 기억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문을 열고 나가면 여기보다 힘들어도 여기보다 더 나은, 다른 세계가 있다.

 

* 사진 출처

<잡온론>, <스피드.잡스>, <이상한 나라의 홈리스> : 우주마인드프로젝트 ⓒ 황가림

 

글 : 양근애(문화평론가)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연극평론가. 드라마터그. 2016년 방송평론상 수상. 역사, 기억,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있음.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