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구매하기
[최양국의 문화톡톡] 교차로 - 선 그리고 물망초
[최양국의 문화톡톡] 교차로 - 선 그리고 물망초
  • 최양국 (문화평론가)
  • 승인 2020.04.06 1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명의 / 엇갈림 길 / 운명과 / 숙명의 점

지리산의 봄은 하동-구례-남원-함양-산청의 꽃잎과 삼신봉~노고단~반야봉~촛대봉~연하봉의 수술,그리고 천왕봉의 암술로 인하여 둥근 꽃으로 피어난다. 서편제의 구슬픔이 봄꽃 향기로 퍼져 나가는 진양조의 아름다움으로 무겁게 일어나는 것이다. 20과 20의 반복으로 시작한 2020년은 4와 4의 반복으로 돌아 온 4월 4일을 보내 온다. 경자년의 놀이터에 청명이 놀러 온 것이다. 숫자는 반복의 게임,언어는 운율의 놀이이다.

숫자를 상형의 측면에서 그려보면,우리들의 1년 12개월중 4월과 8월만이 한 점에서 만난다. 4는 두 개의 길이 수평과 수직으로 만나 교차점을 만들며 사라져 간다. 봄의 꽃 향기처럼 흩어져 간다. 무한히 반복되는 곡선을 가진 8과 달리 4는 지극히 인간적이다. 상승과 하강,그리고 머무름과 그 끝이 있는 직선이다. 유한의 교차로인 것이다.

춘분 이후 보름이 지난 첫 일요일은 부활절(Easter Day)이다. 인간적인 4는 부활절과 만나 십자가로 다가온다. 예수가 인간들의 원죄인 십자가(†)를 지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Golgotha) 언덕 까지 약 800m가량을 걸어간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에서 인류 구제를 위한 희생인 그리스도 수난의 상징 또는 죽음과 희망의 상징을 본다. 상승의 교차로이다.

*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Google
*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Google

이후 11세기가 지나서 등에 짊었던 고난의 십자가는 ‘십자가의 길’을 확장하며 또 다른 길로 들어선다.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한 십자군(Crusades)들에 의해 발생한 세계 2대 종교간 격돌이다. 인간 군상들의 신앙적 광기와 잡다한 동기가 버무려져 인류 역사상 가장 긴 200여년 동안 치러진 십자군 전쟁이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는 교황의 한 마디는 햇살과 바람,구원과 사랑을 어둠과 탐욕의 길로 가게 한다. 하강의 교차로이다.

교차로는 우리에게 상승과 하강을 위한 의지를 요구 하며,이는 운명과 숙명으로 갈라서는 출발역(驛)이 되고 결국은 우리가 선택한 종착역이 된다. 운명과 숙명은 언어의 놀이를 할 때 동서양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우리 어휘 분류중 하나인 한자어 기준에 의하면 운명(運命)은 동태적인 것으로서 역동적이며 자유 의지에 의해 바꿀 수 있지만, 숙명(宿命)은 정태적인 것으로서 정적이며 어떤 의지에 의해서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교차점에서 우리는 운명과 숙명중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역에서 말(馬)을 바꿔 타고 갈 것인지, 그대로 갈 것인지 기로에 있는 것이다.

청명(淸明)이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하지만 올해의 청명은 언어의 놀이에서 패배자이다. 그래서 우울할 뿐이다. 1948년의 청명은 푸르렀으나, 성기는 우울했다.

“~ (중략) 성기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것은 이듬해 우수(雨水)도 경칩(驚蟄)도 다 지나, 청명(淸明) 무렵의 비가 질금거릴 무렵이었다. 주막 앞에 늘어선 버들가지는 다시 실같이 푸르러지고 살구,복숭아,진달래들이 골목사이로 산기슭으로 울긋불긋 피고지고 하는 날이었다.”

 

우리들 / 가는 길은 / 찍힌 점과 / 선의 선택           

교차로는 새로운 점에서 출발한다. 이 교차점을 떠나면 선이며 가보지 않은 길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시간과 공간상에서 점이 움직인 자취로서 선인 것이며 동태적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자취에는 실선,점선,쇄선(점과 짧은 선분을 교대로 배열한 선 Dot-and-Dash Line)이 있다. 실선은 직선 또는 곡선으로 끊어짐이 없이 그린 선으로서 여백의 공간이 없다.우리의 걸어 가는 길이 실선 이라면 욕망과 의지로 쉬임 없이 이동하며, 중간 중간의 명상과 숙고를 위한 비움이 없는 정주행의 길이다. 사건과 결과,그리고 이루어낸 욕망들로만 가득 채워져 역참(驛站)이 사라져 버린 길이다.

점선은 짧은 선들이 연속되며 동일한 간격으로 이어짐과 끊어짐이 번갈아 나타난다. 연속된다는 점에서는 실선과 같으나 중간 중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린 공간이 있다. 결과를 내지 못한 사건들과 미처 이루지 못한 욕망들이 역참에 갇혀 있는 길이다.

쇄선은 점과 짧은 선분이 머무는 들숨과 이동하는 날숨으로 함께 나타난다. 중간 중간에 여백의 공간과 또 다른 선분을 만들어 가기 위한 숨고르기를 한다. 결과를 내지 못한 사건들과 차마 이루지 못한 욕망들이 역참에 머물러 있는 길이다.

우리들의 삶이란 매일 매일을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자신만의 선을 선택하며, 좌표를 찍어가는 행위의 궤적이다. 수직선(數直線 수:직썬)은 숙명적인 시간 좌표이며 수직선(垂直線 수직썬)은 운명적인 행위 좌표로서,우리들의 매일 매일은 하나의 점으로 찍힌다. 세상과 자연에 긍정의 가치를 주거나 자신에게 진화를 보여준 날은 1상한(+,+),그렇지 않은 경우는 3상한(-,-) 그리고 기타는 2와 4상한으로 찍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은 둥글기만 한 지구에서 모바일폰,TV,아파트등 네모에 둘러 싸여 대부분을 살아낸다. 이들에 의해 깊숙이 중독되어 있는 우리의 마음까지도 네모인 듯하다. 네모 안에 그 보다 작은 네모가 양파처럼 들어차 간다. 최근 뉴스에서 들어야만 하는 봉쇄나 제재(Lockdown)는 우리들을 더욱 네모 안에만 오롯이 갇히게 한다. 양파의 속으로 더욱 깊게 들어 가게 만든다. 지금 우리들에 의해 찍히는 점들은 네모라는 면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대부분인 것이다.

우리들은 엇갈리는 교차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그 선택된 길을 걸어 가야 하는 것일까?

“~ (중략) 그의 발 앞에는, 물과 함께 갈려 길도 세 갈래로 나 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 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 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역참(驛站)에 / 여백이 있는 / 쇄선의 길 / 걷는다

우리의 삶을 마치고 우주 여행을 떠나기 전, 숙명적이기만 했던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운명적인 행위 좌표들을 각 상한에서 끄집어 내어 조합하여 이어 보자. 지금의 우리들을 갇혀 있게 만드는 네모이길 바라지 않는다. 선의 양끝들이 서로 만나는,지리산의 꽃과 같은 둥근 원(圓 Circle)이어야 한다. 이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원의 크기는 원점으로 부터의 거리와 정의 상관관계 이나,사회적 거리와는 역의 상관관계 이다. 우리들 사회적 거리가 길면 길수록 우리들 원의 크기는 작아지거나,아니면 부풀어 오른 풍선 같은 원이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제 힘에 못이겨 터져 버린다. 우리들은 혼밥이나 혼영만에 익숙해지며 서로 멀어져 가는 것이다.

그러나 원은 크기로 비교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조화로 그 가치를 전하는 것이다. 우리들 삶에서 작은 원이든 큰 원이든 숙명적인 시간 좌표에서 그 시작과 끝은 같다. 가지고 있는 시간이 같다는 것이다. 우리들 관점에서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유한하다는 것이다. 긴 역사의 시간에서 보면,우주의 먼 행성에 사는 외계인의 시각에서 보면 동일한 하나의 점인 것이다.

시작과 끝이 같다는 것은 작은 원 일수록 속도를 늦추어 여유롭게 만나야 하고,큰 원 일수록 속도를 빨리하여 만난다는 것이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실선,점선 그리고 쇄선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대한 결과값의 차이일 뿐이지 그 가치의 우열은 없는 것이다.

전염성 탐욕이 넘쳐나는 월스트리트와 그 아류들은 역참이 사라져 버린 그 길에서 사건과 결과,그리고 욕망만을 위한 골든 크로스를 외친다.

하지만 이제는 차마 이루지 못한 욕망들이 역참에 머물러 있는 쇄선(鎖線 Chain Line)의 길을 택해야 한다. 이제는 중간 중간에 숨고르기를 하는 여백의 공간이 필요할 때인 것이다.

코로나는 지구가 숨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자신들의 재생을 위해 보낸, 어쩔 수 없는 백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중략)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 해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 김동리, 「역마」(1948년) -

성기가 화갯골을 뒤로 한 채 하동 방향으로 운명을 위해 떠나 가는 5월 즈음에, 물망초가 피어 난다. 왕관을 버리고 떠나는 그들이 사라져 가며 우리들에게 전하는 말.

“Forget-Me-Not”

* 물망초(勿忘草 Myosotis), Google
* 물망초(勿忘草 Myosotis), Google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