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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 <당신의 사월>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 <당신의 사월>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0.04.13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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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기: 지금 여기 '나의 기억'에게 말걸기

4월은 잔인한 달이다. 4.3항쟁, 4.19혁명 그리고 4.16 세월호 참사까지 더해졌다. 곧 세월호 참사 6주기이다. 코로나19라는 역대급 재난 상황이 현재진행형인 터라 과거사를 좀체 조명하기 힘든 요즘이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권력이 비호하지 않는 사건은 이어지는 사건 사고에 떠밀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충분한 사유없이 묻혀지고 잊혀진다. 그러나 잊으면 반복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억’하고 ‘애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4월은 애도의 달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 마다 4월에는 그날의 진실과 상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사건 당해 제작된 <다이빙 벨>(2014, 이상호. 안해룡)에서 부터 <나쁜 나라>(2015, 김진열), <업사이드 다운>(2015, 김동빈), <망각과 기억>(2017), <그날, 바다>(2018, 김지영), <로그북>(2018, 복진오), <부재의 기억>(2018, 이승준), <생일>(2019, 이종언), 그리고 이번 주 개봉 준비 중인 <유령선>(2019, 김지영)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작품이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이러니임과 동시에 인과 관계이기도 하다. 사건을 밝히기 위해 영화는 계속 제작될 것이고, 진상규명이 된 이후에도 영화는 또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아직도 아우슈비치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잊지 말아야할 역사는 계속해서 기억을 일깨워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월> (주현숙, 2019)는 지금까지 세월호를 다룬 작품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사건의 진실과 상실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과는 달리, 영화는 침몰하는 배를 망연자실 보고 있어야 했던,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참사의 방관자이자 목격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평범한 오늘의 일상을 담고 있다. 사건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날 그 사건을 함께 목격하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주인공인 영화이다.   

영화는 경쾌한 라디오 음악과 아나운서 목소리로 시작한다. 아침 출근길, 사람들은 신호등을 건너고, 버스를 기다리고, 지하철을 타고, 아침 식사 설거지를 하고, 가게 오픈을 준비하며 여느 월요일 아침을 연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가 5년이 지난 현재,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출발한다. 세월호 사건 당시 고3이던 유경, 통인동에서 커피공방을 하는 철우, 중학교 교사인 수진, 인권연대 활동가인 주연, 미역 멸치 양식을 하는 어부 옥영은 모두 이름을 가진 독립적 개인이자 동시에 그날의 우리이다. 여기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유가족 지성 아버지도 묵묵히 함께한다.

 

영화는 현재의 일상을 담는다. 지금 여기서 ‘나’의 그날의 기억을 하나하나 열어간다. 사고 소식을 들은 그 시각의 기억, 바다 위 배 선수를 바라보고 있던 기억, 여의도에서 청와대로 시위하던 유가족을 대면하던 기억, 세월호 특조위의 이해불가 행동으로 대통령의 7시간을 되물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 잠수사의 자살로 그의 고통을 공감하며 국가의 무책임에 분노한 기억, 촛불 집회 때 기억... 수많은 나(들)의 기억(들)이 펼쳐진다. 신파나 비극적 정서 혹은 추론과 고발과는 무관하게, 담담하고 차분하고 때론 따스한 웃음이 머무는 평범한 우리들의 기억 서사이다. 

영화는 일상 속에 흐르는 라디오 뉴스 소리를 지표 삼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일련의 사건들과 그에 맞물린 개인의 기억을 이어낸다. 뉴스의 목소리는 영화가 선택한 미디어의 목소리이자 집단 기억의 형상이다. 영화는 미디어를 통해 각인된 집단 기억과 경험에 기반한 개인의 기억을 동등한 무게로 짚어낸다. 이때 개인은 기억의 장소이자 동시에 역사의 주체이다. 영화가 동시대 새로운 역사쓰기 방식과 닿아있는 지점이다. 거대 역사 속에 개인을 가두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 흐르는 역사를 짚어낸다. 다시말해 역사와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를 외부와 내부로 가르거나 혹은 거시사와 미시사로 분리하지 않고, 나의 바깥이라 간주했던 일이 나의 내부의 세계와 일치하는 경험을 담고 있다.

 

영화는 기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개개인의 기억을 통해 국민 모두가 겪고 있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만히 짚어낸다. 트라우마를 설명하거나 직접 언급하는 대신, 영화는 말하는 이들의 눈빛과 표정에서 트라우마를 포착한다. 그날의 기억으로 생겨난 불신과 상실, 무엇보다 국가와 나에 대한 질문들이 가득하다. 그로 인해 관객인 나의 트라우마와 마주한다. 그러나 영화는 역사적 트라우마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트라우마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주목한다.

각자 자리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는 고정된 고체가 아니다. 영화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실천을 묵묵히 실행하면서 회복하고 애도하는 여정을 담는다. 고 3이던 유경은 기억교실에 자원봉사를 하며 기록학을 전공하고, 통인동 커피공방을 하는 철우는 동네와 가게에 묵묵히 세월호 리본을 붙이고, 중학교 교사 수진은 학생들과 함께 올해도 세월호 추모 행사를 기획한다. 올해는 특히 연대를 제안해온 교사들이 있다. 기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녀는 깨닫듯 말한다. 인권 연대 활동가 주연은 작화하는 짝꿍과 손을 마주잡고 동네 산책을 하며 세월호 기록팀에 연대하고, 지성이를 바다에서 건져올린 어부 옥영은 오늘도 부지런히 미역을 말리며 지성 아버지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보통 사람들의 소리없는 일상 투쟁을 담는다. 세월호 사건을 겪은 후 우리는 여전하지만 여전하지 않다. 현재의 기억과 경험은 역사를 인식해가는 과정이자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당신의 사월>은 사건이 아닌 기억과 트라우마 그리고 애도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 만큼, 사람과 눈을 보고 마주하듯이 직접 대면해야만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개봉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현재로는 세월호 기획전과 5월 개최 예정인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 예정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주현숙 감독

글: 이승민

영화평론가. 현장 비평가이자 기획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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