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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만화적 영화가 진단한 '포스트휴먼'의 존재와 윤리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만화적 영화가 진단한 '포스트휴먼'의 존재와 윤리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20.04.19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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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는 일본의 유명 만화가 오쿠 히로야의 만화 <이누야시키>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감독은 국내에 <아이 엠 어 히어로>의 연출자로 알려진 사토 신스케. 그는 앞서 오쿠 히로야의 세계적 히트만화 <간츠>(2011)도 영화로 만들었다.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의 국내 개봉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역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사토 감독의 <킹덤>이 곧 바로 국내 극장가에 걸린다. 한꺼번에 한 일본 감독의 두 영화가 동시에 개봉관에 걸리는 진풍경이 빚어진다.

 

만화적 세계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SF 액션물이다. 반면 주인공들은 일본 사회의 일상적 배경을 지닌 멜로적 인물이다.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굽실거리며 살아야 하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인간인 중년 남자 이누야시키 이치로’(키나시 노리타케). “행복은 꼭 나를 피해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불행한 일만 연속되는 고교생 시시가미 히로’(사토 타케루). 두 사람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두 사람 중에 이누야시키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화 <간츠>의 원작자인 오쿠 히로야 작가의 인기 만화 <이누야시키><간츠>와 마찬가지로 세계 속 인간의 변이를 통해서 존재와 선악을 다룬다. 사토 감독의 영화 버전에서도 윤리와 존재는 중심축이다. 이 주제를 등장인물들을 통해 나름 진지하게 그리지만 원작이 만화인 까닭인지 정색을 하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한국어 제목엔 원제에 없는 히어로 VS 빌런이 친절하게 추가돼 있고, 실제로 두 주인공은 선과 악을 대변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전형적인 영웅서사의 구조를 취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이누야시키가 영웅적인 활약을 보이지만, 평범한 것을 넘어서 빈한한 중년 남자에게선 애초에 어떤 영웅의 자질이나 가능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장소에서 어떤 만남을 통해 몸의 변화와 함께 괴력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치명적인 말기 암을 선고받은 이누야시키는 몸의 변화를 통해 암이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고, 자신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치유사를 자임한다. 나아가 일본 전체를 궤멸시키려고 하는 가공할 악당에 맞서 자신의 딸과 일본을 구한다. 그것도 남 몰래.

 

 

영웅서사는, 영웅적인 인물이 마땅히 요청받아야 할 곳에서 합당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비영웅적인 또는 누구라고 해도 좋은 평범한 인물이 우연찮게 엉뚱한 곳에서 자신에게 기대되지 않은 역할을 해내는 것의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굳이 따지면 이누야시키는 후자에 속한다. 후자의 영웅서사에서는 현실적 상황이 중요하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특정한 상황에 처한 평범한 인물의 비범한 결단과 비범한 성취를 흔히 보여주게 된다.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의 이누야시키가 후자의 인물처럼 보이지만 초반의 몸의 변화를 통해 이미 비범한 인물이 되었기에 그러한 변화를 기준으로 하면 전자의 인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결국 능력(또는 출신)이냐 상황이냐로 요약할 수 있다. 평범한 인물로 태어나 그렇게 살다가 중년의 나이에 암으로 평범하게 인생을 마쳤을 이누야시키는 갑자기 비범한 인물이 되어 자신에게 기대되는 결단을 내려 상응하는 성과를 이룬다. 리얼리즘을 떠난 만화적 서사에서 가능한 내러티브라고 하겠다.

동일한 어떤 만남에서 이누야시키와 같은 능력을 갖게 된 시시가미는 느닷없이 살인기계로 변신하며 악의 화신으로 폭주한다. 같은 계기를 통해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 두 주인공의 경로설정이 현실적인설득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시시가미가 빌런이 되는 과정의 개연성은 충분하지 못하다. 조금 더 개연성을 부여하는 방법과 아예 과정을 생략하는 두 가지 다른 경로를 예상할 수 있지만, 영화 제작진은 만화적 리얼리티에 기대 영화를 전개시킨 듯하다. 일종의 만화적 설득력?

극중 시시가미에서 드러나는 냉담한 악의 폭주는 동시에 따뜻한 악의 회피와 연결된다. 영웅과 악당의 대결 구도에서 격렬하게 대치한 양쪽이 나중엔 모두 인간다움으로 수렴되는 방식 또한 만화적이라고 불러야 할까.

마지막 수렴을 포함한 극의 전개가 멜로적 동력으로 추진된다. 몸의 변화라는 발상이 흥미롭긴 하지만 실제 액션에선 공중을 날아다니는 격투 정도로 화력이 자제된다. 시시가미가 많은 사람을 죽이며 사용하는 살인기술 또한 대체로 손가락질에 국한된다. 이러한 지시관계를 통한 인간들의 물리적 파괴를 일본식 디테일로 보아야 할까. 아무튼 악당이 악을 실행하는 수단이 검소하게 설정되어 이것을 만화적 상상력이라고 할지, SF의 빈곤이라고 할지 관객에게 고민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싶다.

 

포스트 휴먼의 즉자적 이해

특별한 계기로 두 주인공은 초인적 능력으로 무장된 기계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두 사람 모두 변해버린 신체의 비범한 능력에 눈을 뜨고, 능력의 범위를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인간 존재와 본성에 대한 즉자적인 질문을 수행한다. 상반된 길을 걷는 두 주인공이 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는 방식은 그러나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누야시키는 차가운 길바닥에 죽어가며 누워있는 비둘기를 회복시키면서 자신이 누군가를 도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치료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을 찾아 남몰래 도움을 주며 보람을 느낀다. 반대로 시시가미는 날아가는 새를 죽이고,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차들을 이리저리 움직여 충돌시키는 등 파괴적인 능력에 관심을 보인다.

같은 능력을 지닌 두 사람의 상반된 정체성 추구는 기존의 인간존재론과 윤리로 해명할 수 없는 난제를 낳는다. 시시가미가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평가하듯, 이 기계인간은 인간이 아닌 전혀 새로운 존재일 수 있다. 따라서 몸도 인간이 아니고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고 믿는 이에게 과연 인간의 윤리가 유효할까. 시시가미는 인간 존재를 벗어난 순간 인간 윤리를 벗어난다.

반면 이누야시키는 기계인간 안에서도 아버지와 남편, 가장이라는 가족 내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막강한 능력을 사용한다. 기계인간이지만 인간이기를 원하고 인간윤리를 지켜나가는 이누야시키와 초인 혹은 신이 되어버린 시시가미 사이의 표면적 선악의 대결 이면에서 우리는 다가올 세계의 인간 존재론과 인간 윤리를 상상하게 된다. 소위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은 이러한 만화적 서사 안에서 사유의 단초를 찾게 된다.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과 같은 만화적 서사가 주는 해맑은 시사는, 이누야시키에게는 연결과 유대가 남았던 반면 시시가미에겐 모든 연결과 유대가 끊어졌다는 차이가 어쩌면 앞으로도 존재와 윤리의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너무 명랑만화 같은가.

 

만화영화가 아닌 만화적 영화에 능한 감독

사토 신스케 감독은 실사화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던 만화 원작들을 훌륭하게 영화화한 것은 물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흥행에 연속적으로 성공한 감독으로 평가된다. 제작자인 카지모토 케이는 원작의 세계관을 영화로 만들면 제작비도 많이 들뿐더러 어려우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토 신스케 감독이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토 감독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사토 감독은 두 명의 주인공이 변해가는 과정을 인간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인물 간의 대치에 집중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치밀한 CG를 만들어내기 위해 촬영 전 세계에서 몇 대밖에 없는 장비를 사용하고, 전신 스캐닝을 하는 등 최신 기술로 작품을 완성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고 전했다. ‘인간적인 묘사와 인물 간의 대치라는 연출방향은 앞서 언급한 영웅적 만화서사의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된다.

CG와 관련하여 사토 감독은 작품 속 두 주인공의 몸은 기계로 되어있어서, ‘디지털 휴먼이 아니면 불가능한 장면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디지털 휴먼기술은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 사용되는 기술로, 고인이 된 스타와 스타의 젊은 시절을 CG로 표현하는 데 많이 활용되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디지털 휴먼기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쓰였다고 제작진은 밝혔다.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의 클라이맥스인 일본 도쿄의 신주쿠 거리 공중전은 CG 기술의 총화이다. 사토 감독은 신주쿠 거리는 완전히 CG로 만들었다. CG로 만들면 영상 자체는 훌륭하지만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현실의 신주쿠와 얼마나 근접하게 만들지 조율하는 부분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현실감 있는 CG는 두 주인공의 날아가는 속도를 화면에 다르게 표현하는 데에도 적용되었다. 이누야시키의 캐릭터가 나는 능력을 포함하여 자신의 능력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그를 시시가미와 대비시키면서 굼뜨고 어색한 그의 동작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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