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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천천히 죽어갈 소녀를 요구하는 사회
[이병국의 문화톡톡] 천천히 죽어갈 소녀를 요구하는 사회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04.20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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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중에 어떤 냄새가 난다. 오랜 가뭄 후에 내리는 빗줄기 같은 냄새. 처음에는 한 명이, 다섯 명이, 오백 명이 되고 마을과 도시가 되었다가 나라를 이룬다. 새싹에서 새싹으로, 이파리에서 이파리로.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일의 규모가 커졌다.”(나오미 앨더만, 『파워』, 130~131쪽)

사진출처 - 민음사 홈페이지
사진출처 - 민음사 홈페이지

어느 날 전 세계이 10대 소녀들이 전기를 방출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니게 된다. 소녀들의 파워는 곧 성인 여성에게도 전해지고 세계는 바뀐다. ‘베사파라’라는 여성들의 국가가 생기고 ‘어머니 이브’가 이끄는 신흥 종교가 나타난다. 나오미 앨더만의 소설 『파워』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여성들에게 ‘파워’가 주어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종 성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그녀들은 ‘파워’를 통해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가부장제 사회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사진출처 - 황금가지 홈페이지
사진출처 - 황금가지 홈페이지

노르웨이의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1977년에 발표한 『이갈리아의 딸들』이 단순히 젠더 역할이 바뀐, 이른바 가부장제 사회를 미러링한 소설이었다면 『파워』는 전기적 힘을 통해 강해진 여성들이 기존의 체제를 전복시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도발적 시도를 감행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성역할이 역전된 사회를 통해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현실을 고발하고자 했던 『이갈리아의 딸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파워’를 지닌 여성이 다시 성차별적 억압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비판하는 지점은 성차별적 사회를 넘어 힘의 논리로 세계를 억압하는 구조에 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위계에 따른 억압과 차별, 폭력에 둔감한 세태인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구조를 내면화한 채 발생하는 문제를 특정한 개별 사안에 묶어 두고 사고하는 인식의 틀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문제를 어찌해야 할까. 최근에 발생한 n번방 사건은 단순히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착취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n번방 사건이란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이용한 대규모 성범죄 사건이다. SNS나 채팅앱을 통해 여성을 유인, 협박해서 스스로 성 착취물을 만들게 하고 이 영상을 유료회원에게 제공한 것이다. 가해자들은 텔레그램을 이용해서 1~8번방(일명 n번방) 및 거기에서 파생한 ‘박사방’ 들을 만들어 성 착취물을 유포 및 판매하여 수익을 올렸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단순히 단체 대화방을 통해 불법 촬영물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n번방 운영자가 미성년자를 포함한 수십 명의 여성을 ‘노예’로 칭하며 협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하게 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만 75명에 이르고, 이중 16명이 미성년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n번방을 통해 해당 성 착취물을 보거나 유포한 사람이 최대 26만 명이라는 사실이다.

 

사진출처 - 그래픽=안나경 기자_ 노컷뉴스
사진출처 - 그래픽=안나경 기자_ 노컷뉴스

지난 3월 16일 구속된 조주빈은 ‘박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여성들을 유인, 착취하여 신상정보를 알아내어 협박하는 한편,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회원(일명 ‘직원’) 들을 통해 피해자들을 직접 성폭행하라고 지시하거나 자금세탁, 성 착취물 유포, 대화방 운영 등의 업무를 맡기기까지 하였다. 그는 피해자 뿐 아니라 유료 회원들의 신상 또한 확인해 이를 협박 및 강요 등의 수단을 사용하기까지 하였다. 박사에게 협조한 다른 가해자들은 대부분 20대 남성이며, 미성년자도 있다. 또한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며 피해 여성들의 인적사항을 뽑아 유포한 이들도 있다. 피해 여성들은 자신이 사는 곳과 나이, 주소 등의 구체적인 신상정보로 인해 가해자들이 요구하는 가학적인 행위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수백 만 명이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들의 신상공개 및 그들을 포토라인에 세워 달라는 국민청원을 하는 한편, 국제공조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을 내기도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민의 분노에 공감,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를 한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기도 하였다. 경찰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조주빈이 소지하고 있는 성 착취물 영상 원본을 확보해 폐기하였다고 하지만 그 수법을 따라하거나 이미 유통된 영상을 재공유하는 ‘유사 n번방’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n번방을 처음 개설했다고 알려진 일명 ‘갓갓’을 포함해, 대부분의 n번방 운영진들이 아직 검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최대 26만 명이 넘는 인원이 n번방을 비롯한 성 착취물 공유 대화방에 참여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또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갔다는 말도 있다.

이 사건을 단지 남성들의 잘못된 성인식과 여성에 대한 혐오와 피해의식, 혹은 적개감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어쩌면 사회적으로 용인된 가부장적 권력 구조와 위계에 의해 지배 체계가 내면화된 문화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불법 음란물을 다운로드한 토렌트 사건이나 각종 성폭력 사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그것이 지닌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식의 성별 위계를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도록 한 점도 또 다른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용어가 지닌 성착취의 은폐도 한 몫 한다. 이별의 앙심을 품고 상대를 모욕하기 위해 혹은 돈을 노리고 유포시킨 영상에는 ‘리벤지’란 없다. 그럼에도 리벤지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건 남녀 관계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지위를 남성에게 부여함으로써 가부장적 권력 구조를 은폐하는 역할을 부여하기 위함은 아닐까.

 

사진출처 - 걷는사람 홈페이지
사진출처 - 걷는사람 홈페이지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품이 큰 잠옷을 입고 강가로 간다

쉽게 찢어지고 쉽게 갈라지고 쉽게

입을 다무는 물속 세상으로 들어간다

 

소녀는 나로 살기 위해

가랑이 밑에서

햇빛 좋아하는 사자使者를 부른다

 

저 물 밑 세상으로 건너가고픈 마음이

몸을 입는다

강물은 빛을 집어먹으며

그늘을 지배하고 있다

 

물 밖 어둠이 멀다

종탑의 종소리

어깻죽지 위에 걸쳐 입은 밤은 물빛으로 사라지고

 

죽기 직전의 소녀는

강물이 움켜쥔 그것이

자신의 속옷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없지도 있지도 않은 세상이, 밑에 있다

밑은 이토록 낮은 곳에 있어

물 위에서 일렁이는 검은 얼굴이

물 밑에 있다고 쓴다,

흘러가고, 흘러가고, 하나의 그림자가 번져간다

- 이소연, 「밑」(『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전문.

 

이소연의 시 「밑」에서 말하는 것처럼 권력과 위계에 의한 폭력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한 지도 모른다. “강물은 빛을 집어먹으며/ 그늘을 지배하고 있다”는 표현처럼 피해자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개별적 사건으로 전유하여 굳건한 폭력적 카르텔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까. “강물이 움켜쥔” “자신의 속옷”을 알아보며 세상의 “밑”을 감각해야 하는 “소녀”는 “나로 살기 위해/ 가랑이 밑에서/ 햇빛 좋아하는 사자를 부”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죽음을, 성적인 유린을 감내해야만 하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개인이 찾기는 어렵다.

이미 너무 많은 폭력을 경험했다. 아니, 경험하고 있다. 여전히 피해자는 양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폭력적 구조는 고착화된 채 개별적 양상으로 표면화되어 한바탕 논란을 일으키는 한편에서 “흘러가고, 흘러가고, 하나의 그림자”로 침잠하고 안착할지도 모른다. 당연하지 않음에도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된 것들에 분노해야만 한다. 당위적 이야기이겠지만 이러한 잘못된 사회적, 문화적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다. 권력이란 것이 쉽게 전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천천히 죽어갈 소녀’를 요구하는 사회는 전복되어 마땅하겠지만 권력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요구는 반복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연기의 불꽃으로 저녁의 묘비가 빛날 수 있”(이소연, 「쿠마리의 역사」)게 하기 위해서라도 권력을 남용하는 이들을 응시하고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행동을 요구하는 지난한 실천적 투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언젠가 이 새로운 일의 규모는 반드시 커질 테니까 말이다.

 

 

참고자료

나오미 앨더만, 『파워』, 정지현 옮김, 민음사, 2020.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이갈리아의 딸들』, 히스테리아 옮김, 황금가지, 1996.

이소연,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걷는사람, 2020.

 

 

글: 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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