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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의 문화톡톡] 하길종, 1970년대 코스모폴리탄 주체의 귀환
[박현선의 문화톡톡] 하길종, 1970년대 코스모폴리탄 주체의 귀환
  • 박현선(문화평론가)
  • 승인 2020.05.11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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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천재의 귀국

1970년 가을, 하길종은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다음 해 있을 국내선 청사 준공과 국제선 청사 확장공사를 위해 현장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던 김포국제공항에는 한국을 떠나는 이들과 다시 돌아오는 이들의 움직임이 부산했을 것이다. 하길종의 귀국은 1964년 이후 그가 미국에서 보낸 7여년간의 유학생활을 정리하는 마침표이자, 60년대의 황금기가 지나고 이미 그 한계에 도달한 한국영화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영일을 주축으로 학술적 영화운동을 주도했던 『영화예술』에는 하길종의 데뷔작인 <화분>이 개봉되기 훨씬 전부터 하길종 감독에 대한 소개가 영화의 스틸 이미지와 더불어 이루어진다.

 

하길종의 귀국을 다룬 전면기사, 『영화예술』, 1970년 12월호.
하길종의 귀국을 다룬 전면기사, 『영화예술』, 1970년 12월호.

"서울 문리대를 졸업한 후 도미 캘리포녀 대학 연극영화를 전공했으며 66년 <도큐멘터리 영화에 있어서 시적 영상에 대한 연구>로 MA를 획득한 하길종감독의 귀국 제1호 작품 <화분>(이효석 원작)이 곧 제작완료된다. 인간관계를 통한 범세계적인 테마를 추구한다고 선언하고 나선 하길종감독은 이 작품이 세계시장을 겨냥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국내에도 상영되어 절찬은 받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사랑은 기적과 함께>의 아더 펜 감독 밑에서 조연출을 하는 한편 언더그라운드 시네마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던 하길종 감독은 작품흥행 양면에 자신과 의욕을 가지고 있다.

심미문학의 대표적인 <화분>을 다루면서 스토리 테일링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집요하게 카메라에 담겠다고 연출 플랜을 말한다. 12월말 이전에 제작이 완성 푸린트가 나오리라고 한다."1)

그의 귀국은 어찌 보면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1968년 UCLA에서 MFA를 취득한 이후에 그에겐 미국대학의 강단에 서거나 할리우드 제작부에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다. 위의 기사에 언급된 대로, 하길종은 졸업작품인 <병사의 제전>(A Ritual for a Soldier, 1969)으로 MGM사에서 매년 4명의 학생에게 지급하는 메이어 그랜트(Mayer Grant)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졸업 후 아서 펜 감독의 연출부에 들어가 할리우드 영화제작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국내의 상황은 불확실한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오영숙은 유학시절 그가 LA의 한국 유학생 신문 발행으로 벌인 반정부활동이 빌미가 되어 정부의 감시와 압박을 피할 수 없는 처지였다고 설명하고2), 하길종의 동생이자 영화적 페르소나였던 하명중의 회고에 따르면, 하길종의 귀국은 죽음을 각오한 귀향이었다.3)

하길종의 데뷔작은 이효석의 원작을 영화화한 <화분>으로 이루어졌다.

"아직 저의 작품이 작업중이라 무어라 얘기하긴 곤란하지만, 서구의 경우를 보면 <토탈 시네마> 제일의 작가를 예를 들어 벨도루치나 앙드레 바쟁, 폴란스키 등 작가들의 작업이 오늘의 뉴 시네마, 언더 그라운드와는 또다른, <토탈 시네마> 특유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잖아요? 저의 작업은 역시 이런 영화 본연의 그 유일한 시정신을 찾는 <토탈 시네마>를 나름대로 한국의 스크린에 구축하고 싶은 게 지금의 꿈이예요."4)

 

그러나, 젊은 영화학도이자 유학파 감독의 자부심과 포부를 가지고 출발한 <화분>은 그 파격적인 묘사로 검열당국으로부터 30분 분량의 ‘가위질’을 당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비평적, 흥행적 실패와 맞닥뜨렸다. 찬반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화분>의 실험적 영상들은 주로 “불쾌하고 사디스틱”하다는 비난을 받았고 청룡 영화제 심사는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테오레마>(Theorem, 1968)의 표절을 문제삼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5) 1970년대 새로운 영상시대의 기수이자 천재적 영화작가로 기억되는 하길종의 사후적 평가에 비추어, 귀국 후 그가 헤쳐나가야 했던 한국영화의 환경은 결코 그에게 호의적이거나 순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2. <화분> 논쟁에 이어 또 다른 실패작 <수절>

하길종의 두 번째 장편극영화이자 그가 ‘세상과 타협하여’ 만든 혼성장르영화, <수절>(1973)은 <화분>에 비하여 큰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필자는 <수절>이야말로, 한국영화와 서구영화의 경계, 지역과 세계의 경계, 개인과 사회의 경계에 서서 한국영화의 미학적, 윤리적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던 하길종의 시도를 잘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길종 영화의 국내 모색기에 해당하는 1970년대 초 만들어진 <수절>은 이후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평가받았던 ‘청춘’의 영화도, 1970년대의 시대상을 담은 현대물도, 뉴 시네마나 서구모더니즘의 실험정신을 표방한 작품도 아니다. 흔히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했던 실패작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길종의 영화세계와 작가적 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작품이 지닌 맥락적 그리고 텍스트적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다. 여기에는 하길종 개인의 경험에서부터 특유의 미학적 추구, 그리고 당시 한국의 지역적 특이성에 이르기까지 중층적 차원에서의 이유들이 몇가지 존재한다. 첫째, <수절>은 하길종의 유학 경험과 트랜스내셔널한 궤적을 자기반영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둘째, 이 영화의 스타일에는 하길종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두 가지 모티프들, 알레고리와 리듬의 변증법적 시학이 정초되어 있다. 셋째, 현대물이 아닌 시대극을 통해서 하길종은 역설적이게도 코스모폴리탄 세계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펼쳤다. 이런 맥락에서 본 논문은 <수절>이 그의 어떤 작품보다도 야심찬 기획이었으며 미학적, 정치적, 윤리적 도전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하길종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코스모폴리탄 디아스포라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고향의식도 거부하고 익명의 도시생활에 익숙한 다문화주의 코스모폴리탄 주체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고립과 개입이 지닌 동시성을 의미한다면, 지역적 코스모폴리탄 주체는 특정 장소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생기는 정치적 윤리적 책임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온 장소에서 외부 타자와의 관계를 외면하지 않으며 내부 주체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코스모폴리타니즘으로서 ‘지역적 코스모폴리타니즘의 귀환’을 이해할 때, <수절>은 코스모폴리탄적 개인 의식과 특수한 지역성, 그리고 보편적 세계성이 절합된 흥미로운 텍스트로 재평가할 수 있다. 영화에 나타난 고향과 장소에의 정박, 그리고 회귀성이 지역적 특수성을 향한 감독의 애착을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 공간 속에 산포해있는 여러 미학적 정치적 알레고리들은 세계영화언어의 형상화로서 글로벌 보편성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운동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돌아온 장소에서 외부 타자와의 관계를 의식한 채 내부 주체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시대극에 담긴 세대 의식과 코스모폴리탄 감각의 교차

<수절>은 4.19 세대 의식과 코스모폴리탄 개인의 감각이 만나 형성된 하길종 영화의 독특한 감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것은 저항하는 감각인 동시에 타협하는 감각이기도 하고, 코스모폴리탄적 이상세계와 파시즘적 현실정치 사이에서 그가 취한 독특한 선택점이기도 하다.

<수절>은 한사군 시대, 주인공 유신이 나라를 위해 싸운 후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대극이다. 표면상, 영웅의 귀환이다. <수절>의 유신은 위의 세대와의 단절을 형상화한 인물로, 마을 수장 격인 지가도사의 촉망을 받던 제자였으나 지가도사가 마을 여인들을 유린하는 모습에 분노를 느껴 결국 고향을 떠나게 된다. 이런 배경은 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고향에 다시 돌아온 그가 지가도사의 부하들과 마주치게 되면서 플래쉬백 구조로 설명된다. 돌아온 유신은 중국의 통치를 받았던 한사군 시대에 고구려의 자치를 위해 싸우고 큰 공을 세운 장군으로 표상되는데, 비록 그의 귀환이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홀로 고향의 품을 돌아온 자의 모습이기는 하나, 그의 세운 공로는 영화 초반에 반복해서 강조된다.

사실 귀환의 문제는 서사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대적 폭력은 유신이 고향이 되돌아와 발견하는 비극과 폭력, 그리고 이에 대한 복수로 알레고리화되고 귀환의 모티프는 차이의 리듬 속에서 점점 더 유령적인 운동으로 되어간다.

 

유신의 귀환은 매우 때늦은, 지연된, 유령적 귀환이다. 그는 제 때 돌아오지 못했다. 먼저, 그는 모든 이의 기억에서 지워졌을 무렵에 돌아온다. 그가 마을 어귀의 장터에 들어섰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다가 “도대체 누구야? 혹시 10여년 전에 고구려로 간 유신이 아니야?”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유신은 전쟁터에서 죽었다든데?”라고 서로 반문한다. 죽은 줄 알았던, 혹은 죽은 자의 귀환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변형시킨다. 언캐니(한(uncanny) 순간들이 영화적 테마로 살아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유신이 돌아온 마을은 결코 평화롭고 전원적인 산골마을이 아니며 헐벗고 폭력에 얼룩진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는 손으로 깨진 수박덩이를 짚어먹는 벌거벗은 아이들이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그는 두 개의 죽음과 마주친다.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는 한 오랑캐 악당의 죽음과 그에게 능욕당한 원으로 강물에 투신한 처녀의 죽음. 이런 곳에서 그의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어두운 밤이 되어서 드디어 유신은 자신의 옛집에 당도한다. 문창호지 위로 여인의 물레돌리는 모습이 그림자로 비치고,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의 상봉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카메라는 그림자와 유신의 모습을 한컷씩 보여주고, 둘이 만나는 세 번째 쇼트를 뿌연 이미지 위로 간접적인 시점쇼트를 제시한다. 유신을 따라온 패거리들의 제3의 시선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 만남이 지닌 비-현실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와 훌쩍 커버린 딸 용분이의 환영(歡迎이자 幻影) 속에서 하룻밤을 보낸 유신은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폐허더미 위에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유신을 쫓아오던 지가도사의 수하인은 시체가 되어 누워있고 그 위에 검은 고양이가 앉아 있다. 어젯밤의 모든 것이 꿈과 환상이었다는 각성(disillusion)의 상태가 찾아온다. 충격 속에서 유신은 아내의 환영과 딸의 환영을 쫓아 숲을 헤매인다. 이 때 카메라는 숲속을 헤매는 현재 유신의 모습과 과거 행복했던 이들 가족의 모습을 교차편집해보여줌으로써 현재와 과거, 기억과 환상, 그리고 객관세계와 주관세계 간의 상호뒤엉킨 관계를 보여준다.

 

4. 폭력의 시대, 귀환하는 유령들과 영웅

귀환의 모티프를 이중 반복하면서, 유신은 자신의 집에 두 번 돌아온다. 그리고 이 두 번째 방문은 그가 아내와 딸의 죽음을 깨달은 상태에서 또 한번 시도하는 귀향의 순간이기도 하다. 숲 속을 헤매던 그날 해가 저물고, 무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본다. 집이 다시 세워져 있고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만, 이 때 아내의 형상은 전혀 과거의 모습이 아니다. 하얀 소복과 검게 내려뜨린 머리, 그리고 가리워진 머리는 <수절>의 괴기적 장르요소를 전경화하며 1970년대 ‘가부장제 가족관계나 유교질서에 의해서 희생된 여성이 여귀로 돌아오는 플롯 구조’와 유사한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수절>의 여귀 모티프는 여성의 정조를 둘러싸고 벌어진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한국 고전 공포영화의 원형들과 맞닿아 있다.

환영에 의해 세워진 집, 혹은 밤의 시간이 지배하는 집에서 무사는 아내가 남긴, 혹은 아내의 유령이 남긴 편지를 발견한다. 3개로 나눌 수 있는 서사구조의 2막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회한과 분노 속에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남편의 모습과 아내의 보이스-오버를 통한 과거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는 아내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과거가 두 번의 회상 시퀀스를 통해서 삽입되며, 탈락된 유신의 시간적 간극들을 채워넣는다.

 

회상들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폐허가 된 마을에 겹친 지독한 가뭄으로 거의 정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사막화된 풍경을 보여준다. 밭은 이제 자갈밭으로 변해있고 마을의 이미지 역시 숲과 계곡의 모습이 아니라 갈색 황무지와 사막과 같은 모래밭의 풍경으로 변해 있다. 롱테이크와 롱쇼트 속에서 기갈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고 그러한 풍경의 한쪽에는 뜨거운 태양볕 아래 하얗게 바랜 백골이 한편의 초현실주의 회화의 오브제처럼 놓여있다. 결국 회상 시퀀스는 지가도사 일당에게 살해당하는 아내와 딸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카메라는 다시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읽는 유신의 모습으로 교차편집되고 이어 화면은 비가 내리는 빈 집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적 공간과 시간은 더욱 더 폐허의 그것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수절>에서 하길종의 영상미를 포착하고 있는 장면은 사실 영웅의 귀환도, 그 가족의 수난도, 남자의 복수도 아니다. 그것은 다 낡아 쓰러져가는 폐가의 공간을 계절이라는 시간의 순환 속에서 잡아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복수의 모티프가 전경화되는 무사와 지가도사의 대결은 어떻게 보면 <수절>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후렴구에 해당한다. 영화는 정오의 강변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대결을 무협영화의 전통적인 미장센 속에서 보여준다. 각각 칼과 철봉을 든 두 사람의 대결이 트래킹과 핸드 헬드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긴박감있게 전달되기도 하고 미디엄 쇼트와 풀 쇼트, 롱 쇼트의 혼합 속에서 싸움의 어려움을 지속하기도 한다. 관객의 예상과는 달리, 승부의 여신은 지가도사에게 미소짓는다. 대결하는 가운데, 유신은 팔을 잃고 두 눈에 상처를 입는다. 영웅적인 해결을 위한 숭고한 승리는 처음부터 보장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유신의 상처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듯이, 화면 위에는 피가 흐르고 이 붉은 피의 선율들은 스크린의 물질성을 전경화하며 그 위에 흔적들을 만든다. 결국, 이 마지막 순간에 유신은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 지가도사는 쓰러진다. 시체를 전경에 두고 유신은 마침내 황혼 속으로 걸으며 멀어지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그는 돌아왔으나 결국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5. 하길종의 코스모폴리나티즘

귀국 후 짧지만 눈부셨던 9년의 시간 동안, 하길종은 지역적 문화실천을 외부의 문화대상과 문법을 통해서 변형시키고자 했으며 동시에 그 외부의 파워에 지역의 헤게모니를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종족중심적인 민족주의와 서구에 대한 모사적 강압주의 사이에서 하길종은 특정성에 뿌리내린 코스모폴리타니즘이란 새로운 정치적 미학을 발견했을 것이다. 자아와 세계의 관계가 재정립되는 ‘귀향’의 순간,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서 지각되는 세계의 경험들이 그에게 중요한 만큼, 그는 이 경험들을 한국영화의 영토 안으로 끌어와 변형시키고, 그 자체로 한국영화의 풍토를 재지역화시키려 했다.

 

유학시절의 하길종

결론적으로, 하길종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코스모폴리탄 디아스포라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고향의식도 거부하고 익명의 도시생활에 익숙한 다문화주의 코스모폴리탄 주체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고립과 개입이 지닌 동시성을 의미한다면, 지역적 코스모폴리탄 주체는 특정 장소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생기는 정치적 윤리적 책임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수절>은 분명 이러한 요청을 성공적으로 성취한 작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보여지는 고향과 장소에의 정박, 그리고 회귀성은 분명히 특수성을 향한 그의 집착을 보여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 속에 산포해있는 여러 미학적 정치적 알레고리들은 글로벌 보편성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있다. 다시 돌아온 장소에서 외부 타자와의 관계를 외면하지 않으며 내부 주체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코스모폴리타니즘. 이것을 보편성과 특수성의 변증법적 시학으로 “세계”라는 문제를 풀어보려 했던 하길종의 독특한 시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출처>

이 글은 필자가 쓴 아래 논문을 수정, 축약한 것이다.        

박현선, 「코스모폴리탄 주체의 귀환」, 『한국극예술연구』, 52, 2016.

 

<각주>

1)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영화예술』, 1970년 12월호. 48쪽.

2) 오영숙, 「하길종 영화의 불온성과 세대의식」, 『하길종 전집2: 사회적 영상과 반사회적 영상』, 한국영상자료원, 2009.

3) 하명중,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한국일보』, 2008년 2월 17일.

4) 「인터뷰: 하길종 감독」, 『영화예술』, 1972년 1월호, 75쪽.

5)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하길종 감독의 데뷔작 <화분>은 이번 청룡영화상의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석화촌>, <소장수>와 함께 본선에 올랐으나 한국영화답지 않다는 이유로 논외에 붙여졌다.” (「한국영화계 보수성의 단면도」, <동아일보> 1972년 3월 9일자) 이 기사를 촉발로 당시 심사위원이자 시나리오작가, 평론가였던 유한철의 반론과 하길종의 재반론, 그리고 하길종의 편에서 평론가 변인식이 청룡영화제 심사문제를 거론하면서 <화분>의 작품성 및 표절 논란은 당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강성률, 『영화는 역사다』, 살림터, 2010. 97-103을 참조하라)

 

박현선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 『문화/과학』 공동편집장, 한국영화학회 상임이사로 현재 활동하고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게스트 프로그래머,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영화의 모더니즘과 정치적 미학에 관한 연구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얼바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아시아 냉전의 문화정치, 한국영화의 정치적 미학, 기억과 정동 연구, 여성과 도시의 관계 등을 중심으로 출판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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