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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남성이 만들어낸 이름 ‘요부’ - <레이디 수잔 Love and Friendship>(2016)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남성이 만들어낸 이름 ‘요부’ - <레이디 수잔 Love and Friendship>(2016)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0.05.18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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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시각의 악녀, 여성 시각의 인간

조선 시대에는 신부나이가 신랑 보다 많았다. 꼬마 신랑이 그때 생겼다. 어려서 정혼하고 합방은 나중에 한다. 몇 살 위 누나인 아내는 동생뻘인 남편을 키워서 데리고 살았다. 당시 농촌공동체에서 노동력이 필요했고 일할 여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일부러 결혼을 빙자해 성인여자를 데려다 일을 부려 먹었던 관습에서 기인한다. 현대에 와서 꼬마 신랑 관습은 없어졌고 자유연애까지 겹쳐 손위 여성과 결혼하는 관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상적인 결혼은 여자 연상이 좋다고들 말한다. 그 이유를 성적인 부분에서 찿는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 보다 연상인 것이 더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걸 싫어하는 이유는 남성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이 더 어른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닐까. 집안에서도 여성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수컷 본능이랄까. 실속은 별로 없는데 말이다.

영화속에 중년의 레이디 수잔이 20대 잘 생긴 남자 레지널드와 산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연상아내 연하남편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의 판타지 중 최고의 장면일 것이다. 레이디 수잔은 남편과 사별한 상황에서 같은 또래의 돈 많고 지체 높은 유부남 맨워링경과 관계를 갖다가 부인 때문에 쫒겨난 상태다. 그녀는 거리끼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활동하는 여성이다. 그 장면은 레이디 수잔의 머릿속 그림일 수 있다. 그녀는 레지널드를 취하고 싶어한다. 그녀는 19세기 여성이지만 하는 행동은 21세기 현대 여성의 원조격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당시 레이디 제인 같은 개방적이고 주눅들지 않는 여성은 악녀의 전형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Jane Austin)은 레이디 제인을 통해 악녀지만 동시에 남성들을 조롱하고 불합리한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분명 여성시각이다. 여성 시각에서 보면 악녀는 다 인간적이다.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성취하려고 온갖 권모술수를 구사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악녀로 평가받게 된다. 계략, 음모, 거짓말 등 수단 방법에 구애 받지 않고 원하는 실리를 취한다.

레이디 수잔은 돈 많고 멍청한 제임스경을 딸 프레데리카와 엮기 위해 계략을 짠다. 대신 그녀는 잘 생긴 청년 레지널드를 갖으려 한다. 이런 여성을 남성 시각에서 바라 보면 천하의 음탕하고 발칙한 여자라고 낙인 찍을 만하다. 그렇지만 그게 바로 남성의 질투라는 것이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중시한 인간의 속물근성이 있다면 바로 질투심이다.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은 레이디 수잔을 현대적 여성으로 바라봤고 그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악이란 본래 없는 것이다. 인간에겐 생존과 본능과 성향만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도덕과 선악개념이 들어간 것은 그 시대를 끌고 가는 권력층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악녀, 광녀, 등의 별칭은 남성들이 만들어낸 여성의 호명이다. 남성의 질투심이 빚은 여성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레이디 수잔은 여성 억압적인 시대를 자유분방하게 살아갔던 어쩌면 현대 여성의 시초였던 셈이다.

 

운명의 반전의 반전

 

레이디 수잔이 아무리 자기 마음 대로 했어도 결과적으로 레지널드와 재혼하지 못했다. 그녀는 딸에게 여성의 이상형인 부자이며 바보 제임스경을 소개한다. 부자인데다 멍청하니까 여자면 다 좋아한다. 딸은 조신한데다 신부감으론 그만이다. 그녀는 엄마의 강압에도 불구하고 제임스경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녀는 엄마가 좋아하는 젊은 레지널드를 동시에 좋아하고 있었다. 모녀는 레지널드를 가운데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딸을 이기는 엄마가 없던가. 결국 레이디 수잔은 제임스경과 재혼하는 이변을 연출한다. 레이디 수잔은 처음도 딸을 위해서고 두 번째 결정도 딸을 위해서 자신을 양보했다. 처음엔 딸에게 재력을 갖춰주려고 제임스 경을 소개했지만 두 번째는 사랑을 선택한 딸을 인정한다. 딸을 위해서 자신이 추구하는 사랑의 욕망도 포기한 것이다. 그녀는 제임스경과 재혼함으로써 가장 속물적인 여성의 길을 현명하게 선택한다. 물질적 지원을 받으며 자기 마음대로 연애 할 수 있는 길. 레이디 수잔은 제임스경과 재혼한 후 많은 귀족남자들과 염문을 뿌리며 다녔겠지만 영화속에선 나오지 않는다.

 

 

글 : 정재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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